네바다에서 쉬다가 밤에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그냥 캘리포니아까지 와 버렸다. 도너 고개(Donner pass) 때문이다. 하필 비구름이 서쪽에서 몰려 왔는데 월요일 오후나 되어야 지나갈 예정이다. 날씨가 따뜻하지만 도너 고개에서는 눈이 내릴 가능성이 크다. 기온이 내려가는 밤에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도너 고개는 눈으로 자주 통행금지됐다. 기회 있을 때 넘어야 한다. 주차 걱정은 나중이다.
도너 고개를 넘은 것은 오랜만이다. 이번 트레이닝을 시작한 이후로 워싱턴주만 두 번을 다녀왔고, 캘리포니아는 처음이다.
겨울철에 i-80번 도로가 막혀도 와이오밍 구간이나 그렇지, 도너 패스가 막힌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달랐다. 캘리포니아에 눈이 많이 내렸다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도너 패스를 넘으며 놀랐다. 홋카이도도 아니고 무슨 눈이 트럭 높이만큼 쌓였다. 휴게소와 비스타 포인트 모두 눈에 덮혀 폐쇄됐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낮이라 그런지 다행히 도너 패스 정상을 지날 때도 화씨 33도 정도를 유지했다. 간간이 눈발이 날렸지만 대부분은 비였다.
무사히 도너 패스를 넘은 후 배달처까지 달렸다. i-80번 도로로 캘리포니아에 들어서면 쉴 곳이 마땅찮다. 몇 안 되는 트럭스탑은 주말에는 자리 잡기가 별따기다.
배달처는 산타 클라라에 있는데 샌프란시스코와 가까운 산호세 권역이라 길거리 주차는 거의 불가능하다. 곳곳에 주차는 커녕 트럭은 정차도 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흉흉하다. 배달처에 도착하니 비좁아 돌리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오늘도 일을 했는지 사람들이 퇴근 중이었다. 내일 오전 6시 30분에 다시 연단다. 혹시 주차가 가능하냐 물으니 한쪽으로 세우란다. 다행이다. 업무가 끝나서 오가는 트럭이 없으니 통행에 지장 줄 일은 없다.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었다. 트럭을 안전하게 주차할 수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트럭에서 맘 편히 먹고, 자고, 쉴 수 있다.
오면서 보니 곳곳에 홍수다. 캘리포니아는 근래 지독한 가뭄으로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잔디밭에 물도 주지 말라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홍수가 날 정도면 저지대에서의 채소 농사를 망쳤을 가능성이 높다. 한참 딸기와 채소를 실어날아야 할 시기에 화물이 확 줄어든 것은 그 때문인 모양이다.
이번 겨울 얼마나 눈비가 많이 왔으면, 유타주 소금 평원이 호수로 변했겠는가. LA에서도 40년만의 폭설이라고 했으니 이상 기후는 틀림 없다. 미국인의 식탁을 책임지는 캘리포니아 채소 농사를 망쳤다면 멕시코에서 수입산으로 대처한다고 해도 채소 가격이 오를 것은 뻔하다.
C와 트레이닝 이후 매주 눈을 만났고, 두 번이나 스노우 삭스를 타이어에 감았다. 그것도 3월에. 가뭄에 시달리던 캘리포니아에 눈비가 많이 온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