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사관학교 입학준비, 어떻게 했을까

by 운서
그렇게 공부란 탈출구로 나의 실력을 쌓아가고 있던 어느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께서 신문에서 특별한 공고를 하나 발견하셨다.


그 공고라고 함은, 사관학교 측에서 1차 시험 전에 항상 발행하는 광고였다. 그 광고는 군인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혹할 만한 제복사진의 생도들로 장식되고 있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군인에 대한 꿈이 있어서뿐만 아니라, 평범하지도 못한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집안의 부모님들에게도 아주 현혹될 만한 문장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 문장에는, '학비 전액 무료, 노트북 무료 제공, 입학부터 졸업까지 0원'과 같은 문구가 쓰여있었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5000원이 되지 않던 시절이기는 하나, 100만 원 안팎의 빠듯한 살림으로 4인 가족의 생계를 고민하고 계시던 부모님에게는 아주 좋은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에 나는 꽤 운동도 잘하는 편이었으며, 성적도 꾸준하게 오르고 있는 편이었으니 당연히 사관학교라는 교육기관이 나에게 어울려 보였음은 당연해 보였다.


따라서 부모님께서도 해당 광고를 보시고 자연스레 1차 시험을 권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가 부모님께서 나에게 사관학교 입학을 권유하게 된 계기인데, 이제는 나의 관점에서 해당 권유를 어떻게 보았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사관학교를 지원하기까지, 나에게는 군인의 꿈이란 추호도 없었다.


심지어 어릴 적부터 삼국지와 각종 영웅담,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군인들이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축구를 상당히 좋아했던 터라, 쇼맨십과 멋진 퍼포먼스로 세계 축구인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축구선수들을 슈퍼히어로처럼 동경하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어릴 적 꿈은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그 꿈은 초등학교 때 접게 되었다. 왜 그 꿈을 접게 되었는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해당 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다. 항상 방과 후에 축구를 하고 늦게 귀가했으니, 어느샌가 축구부 코치가 지나가다가 나의 발놀림과 체력을 보고는 축구부 입단을 권유하였다. 당시에는 아버지께서도 권유하셨으나, 장기적으로 직업으로 갖기에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하고 입단은 거절하였었다.


그렇게 동경하던 꿈은 과감히 접어두고, 취미로 생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학창 시절 내가 갖게 된 꿈들은 다양하였다. 변천사를 살펴보자면, 축구선수-CEO-회계사 정도가 되겠다. 축구선수라는 꿈이야 어릴 적 남자아이들이 워낙 동경하는 꿈 중 하나이기도 하기에, 한 번쯤 가져볼 만한 꿈이다. 그렇지만 CEO와 회계사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도 모르고, 정장을 입고 서울 한복판을 누비는 상상을 하며 '꿈'이라는 항목에 적기 위해서 마련한 꿈이었다. 꿈을 위한 꿈이랄까..?


그렇게 나의 꿈속에는 군인은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는데, 갑자기 군인이 되는 학교에 가는 시험을 치라고 하시니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저 환경에 잘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며, 또 생각해 보니 운동을 좋아하고 바쁜 생활을 좋아하는 나에게 사관학교란 곳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부모님의 권유로 1차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1차 시험은 여름 즈음에 열리게 되는데, 이 시험은 수험생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시험인 10월 모의고사 전 시험이라 상당한 허수지원자가 몰리는 시험이었다. 또한 사관학교 1차 시험의 문제가 다소 독특하면서도 수리영역 같은 경우에는 다소 난이도 또한 있다 보니, 학업성취도가 높은 많은 수험생이 몰렸다. 나 또한 학업성취도가 낮은 편은 아니었고, 부모님께서 혹시 모를 기대를 품고 있었으므로 1차 시험을 본 셈이다.


아주 무더웠던 어느 날, 1차 시험을 호기롭게 치러 갔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서는 나만 혼자 시험을 본 게 아니었다. 바로 이과/문과 심화반 중 이과 2명, 문과 1명의 친구가 같이 시험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중 나와 같은 이과 심화반에 속했던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눈이 상당히 좋지 않은 편이라, 사관학교에 입학하려면 정책자원으로 시험을 쳐야만 했다. 당시 공군사관하교 정책자원의 입교 성적은 중경외시를 가볍게 뛰어넘고, 서성한 급 또는 그 이상의 입결을 자랑했으니 상당한 실력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공군사관학교 입학을 정작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희망하고, 공군 조종사로서의 꿈을 꾸었던 친구는 1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반면에 군인에 대한 꿈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 친구를 통해 오히려 많은 정보를 얻어 공부를 하게 되었고 1차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1차 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마치고 나서,
2차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2차 시험은 수능을 보기 전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2차 시험에서는 신체검사/체력검정/면접이 과목이었다. 나는 2차 시험에 대비하여 1차 시험 이후 한 달 내로 사랑니 2개를 뽑았다. 사랑니가 수직으로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누워있어 잇몸을 절개하여 뽑아내는 작업이 필요했었는데, 신체검사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사랑니를 한꺼번에 2개나 제거하였다.


또한 2차 시험에서 있을 체력검정에 대한 준비도 나 스스로 마쳤다. 이미 1차 시험을 붙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2차 시험에 대한 공감대를 얻은 상황이었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기 직전에 30분 미리 나가서 달리기를 하였다. 또한 집에서는 옷장 아래에 이불을 욱여넣고 윗몸일으키기를 하였으며 평소에 안 해보던 팔굽혀펴기도 시작했다.


면접에 대한 준비도 했었는데, 면접에 대해서는 잘 나와있는 서적이 없었으므로 인터넷에서 사관학교 면접에 나올 만한 정보를 물색하거나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또한 시사적인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신문을 보며 어떤 내용들이 군인들에 대해 다뤄지고 있고, 군사적인 이슈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고 예상질문과 답변을 만들어보았다.


1차 시험을 볼 때만 해도, 군인에 대한 것이란 꿈은 있지도 않았던 나라는 사람이 갑자기 그 누구보다도 공군사관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조종사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숨어져 있었다.


2차 시험은 공군사관학교에서 보게 되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신체검사를 위해 모든 옷을 탈의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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