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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Sep 17. 2021

작은 일에 화가 나는 부끄러움

집 가까이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다. 부담스럽게 큰 도서관에 비해 마음 편히 갈 수 있고, 노트북을 하는 자리가 편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요즘 자주 가는 곳이다. 내부에선 커피를 마실 수 없기에,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주차장에서 잠시 홀짝홀짝 마시고 들어가곤 한다.


미라클 모닝까진 아니어도, 아침에 소소하게 나를 위한 일렬의 일들을 의식처럼 치르고는 건강한 한 끼를 만들어 먹는다. 살짝 여유롭게 배를 채우고, 집 앞 편의점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아와 주차장에서 홀짝 거리는 그 시간을 휴식인 동시에 오후 스케줄을 잘 해내겠다는 다짐의 시간으로 보낸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들 만큼은 아니더라도, 계획적인 하루 속에서 미루지 않고 일을 해보자 다짐한 후 갖게 된 도서관 루틴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주식 관련하여 간단한 질문을 던졌고 1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미루지 않고 지금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분명 내가 할 때는 1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전화를 통해 엄마에게 지시하는 일에 총 15분이 들었다. 엄마가 스피커폰을 한 채로 주식 앱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3분을 버리고, 왼쪽 베너에서 찾아야 하는 포인트를 엄한 곳에서 찾느라 5분을 버렸고, 또 그 문제를 내게 알리기 위해 캡처하는 방법을 찾느라 나머지 시간을 버렸다. 그리고 나는 화를 삭히고, 분노를 떨쳐내느라 오후 시간을 버렸다. 엄마에게 매번 알려주는 캡처 방법도, 주식 통장 비밀번호도, 쿠팡 비밀번호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기억하려 노력하기는커녕 메모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또 화가 났다. 그 후는 내가 엄마에 관해선 아주 작고 사소한 것 까지 다 화를 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화가 났다.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 남자 친구에게도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하면 쉽게 화를 냈던 것 같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보 같을 때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똥 멍청이가 바로 나다.


"사랑은 오래 참고"를 세 번 외치고, 식어 빠진 커피를 홀랑 털어놓고, 씩씩거리며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나플라의 노래를 듣고, 책에 집중해도 화를 냈다는 부끄러움이 쉬이 가시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일에 화를 내고, 예민하다는 것은 사랑이 없고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특히 엄마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울 때는 하는 일이 안 되거나, 헛 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초예민 상태일 때 그렇다. 엄마는 희생양일 뿐. 사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도 화가 나는 걸 어떡해. 자는 시간 빼고는 좀처럼 눕지 않는 내가 침대에 대자로 뻗었다. 거북한 기분을 그대로 안고 침대에 누웠더니 잠이 내게 딱 필요한 것이었단 걸 깨달았다. 눈이 스르륵 감기고, 몸이 따뜻해졌다. 뭐지 싶어 일어나 거울을 보니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피곤한지도 몰랐는데, 피곤했나 보다. 그래도 밥을 먹은 후라 잘 순 없고. 모로 누워 옆에 같이 누운 강아지를 지겹게 쓰다듬고 나서야 일어났다. 저녁 7시였다.


모녀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과 없이 다른 화젯거리를 던지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엄마가 썰어 놓고 간 당근으로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카톡을 보냈고, 엄마는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퇴근한 엄마에게 표고버섯까지 넣어서 김밥을 만들어줬다. 엄마는 감동이라며 사진까지 찰칵찰칵 찍었지만 나의 부끄러움은 여전했다. 오늘은 엄마의 두 어깨를 감싸고 ‘엄마 정말 미안해! 우리는 왜 미안하단 말을 잘하지 않을까? 덮어 놓고 없었던 척하는 일들이 우리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라고 외치고 싶었다. 정말 그런 상상을 저녁 시간 내내 했다.


그러다가, 이러한 일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 있는 장편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벌새의 감독님이 영화를 준비하는 3년 가까운 시간 내내 가족들과 피 터지게 싸우고, 끊임없이 도대체 왜 그랬냐 질문했다는 내용이 담긴 책을 읽었다. 나도 그렇게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영화에 녹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금요기도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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