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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May 23. 2022

오후 세시의 인생철학

 별일이 없는 날은 자기 전에 꼭 팟캐스트를 틀어 놓는다. 잠자기 타이머를 이용해 10분 알람을 맞춰 놓고 침대에 눕지만 늘 잠들기 전에 10분이 지나버린다. 뚝 하고 끊기는 엠씨들의 다음 말이 궁금해도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들어 올리지 않는다. 그럼 잠들고 싶은 의지를 확인한 듯 그제야 잠이 든다. 웃기거나 유익한 대화가 이어지면 참지 못하고 10분 연장을 해버리는데 그런 날은 잘 자기는 글렀다. 자려는 의지보다 강한 게 없어야 한다. 잘 자기 위해서는.


 요즘은 프로 봇짐러로 살고 있다. 자취방과 집을 왔다 갔다 하며 3일에 한 번씩 가방을 쌌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혼란이 찾아왔다. 좋아하는 가구와 물건, 식물이 있는 공간에서도 왜 3일 이상 혼자 있지 못하는지. 외롭다 외롭다 말만 들어봤지 정말 이토록 외로울 줄이야. 방음도 잘 돼서 정말이지 말소리 하나 없이 혼자인 그곳에서 나는 4개월이 지나도록 적응을 못했다.


 외로움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오후 3시쯤, 의식처럼 티비를 틀었을 때 재방송으로 방영 중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됐다. 이미 봤고, 대본도 읽었고, 몇 개의 독백도 외웠던 나의 아저씨지만 늘 그렇듯이 틀어놓고 귀로 들었다. 자기 전 팟캐스트를 듣듯이.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몰라."


 내력이 세 보이는 사람이 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의 부류 중 하나인데, 초등학생 때 영어 단어 시험을 걱정할 때 옆에서 묵묵히 단어를 외우던 친구도 그중 하나였다. 적절한 매를 고르던 염라(수학 과외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식은땀을 흘릴 때 무덤덤하게 손바닥을 펴내던 친구도, 카펫 위에 쏟은 커피를 보고 후들후들 거리는 나에게 일단은 침착하라고 카펫은 카펫일 뿐이라고 말하던 사람도. 사소한 문제 앞에서 숨 멎을 것처럼 구는 나는 내력이 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면 반대지. 내력이 센 사람은 숨길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속으론 욕망과 결핍 덩어리라 할지라도 겉으로 보기엔 숨을 두배는 느리게 쉬는 듯한, 인생을 2회 차로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행동이 부러워서 따라 하다 보면 결과는 늘 자책으로 끝났다. '난 글렀구나. 태생이 다르구나.'


내력이 세질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노란빛이 베란다로 들어오는 시간에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여유로운 백수인 나는, 매번 토끼 같은 목숨으로 자잘한 일에 놀라고 큰일에 짓이겨져서 살아야 하는 걸까. 시간이 자원이라는 한 부동산 유튜버의 말마따나 이 시간을 그 고민을 하며 보내보기로 한다.


계단식 성장을 주장하는 나로서, 넘어지며 생기는 상처가 새살보다 단단할 테니 자꾸자꾸 넘어지다 보면 단단해질 거라고 정리하면 될까. 아니면 책을 읽고 지혜를 얻으면 될까. 그도 아니면 인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큰 사건을 만나서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양갈래 길을 만나야만 '살기'를 택한 후 자질구레한 일들 정도는 발끝으로 치워버리며 걷는 걸리버가 되려나.


 답을 내리지 못하고 며칠이 지난 오늘, 친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나 친한가 하면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언니. 지금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자주 카톡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언니. 가끔 기도하고, 전화로 우는 언니. 오늘은 웃는 얘기를 나눴다. 너의 힘듦의 원인을 알겠다며 갑자기 전화를 건 언니 덕에 인생의 내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인생의 내력은 혼자 쌓지 못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위로와 소중한 관계를 경험한 사람에게 쌓이는 거 아닐까. 짜증 나리만큼 방음이 잘 되는 자취방에서 연락도, 만남도 없이 사는 거라면 그 누구라도 절대 내력이 셀 수 없다. 누구라도 무너져 내릴 것이다.


 내가 포함된 모든 관계를 천천히 생각해본다. 버티지 못해 튕겨져 나간 관계가 가장 먼저 떠올라 날 아프게 하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까지 하나하나 느긋하게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까지 도달해서야 마무리되는 생각들 끝에 감사가 남았다.


오늘 인생의 내력이 한 뼘 두터워진 기분이다. 오랜만에 값없이 쓰는 이 글도, 누군가에겐 한 뼘의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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