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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Feb 17. 2023

안 편한 가족 이야기

01. 내가 될 이야기

 이번 설날에 제천까지 어떻게 갈 거냐는 오빠의 물음에 오빠는?이라고 물었다. 우리는 친하지도 않고 출발지도 다르지만 밀리는 차 안에서 심심할 거고, 혼자보단 둘이 낫겠다 싶어 같이 차 한 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설날 전날이 대목이라 계속 일해야 했던 아빠는 가족끼리 자리한 저녁 식사에 불참했다. 고로 작은 아빠, 작은엄마, 사촌 동생 둘, 할머니, 오빠와 나는 고깃집에서 데면데면한 식사를 했다. 오빠는 다이어트 중이라 먹는 둥 마는 둥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나에게 어른들의 시선이 쏠렸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밑반찬 앞에서 젓가락질을 열심히 했으나 할머니의 예리한 눈을 피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나와 오빠의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외우는 정도로만 기억력이 유지되는 치매 환자이지만 손주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으니 고기가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는지 연신 계란찜만 드셨다. 계란찜이 입에 맞으신 줄 알고 싹싹 긁어 밥공기 위에 올려드렸는데 모두가 배불러서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에, 아직 굽지 못한 생고기가 있는 것을 보고서야 타서 불판 구석에 치워둔 고기로 손을 뻗으셨다. 그 모습을 나만 보았고, 할머니를 위해 더 굽자 말했으나 할머니 배부르시다고, 아까우니 먹어치우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불판 앞으로 고기는 사라졌다.


 문제는 잠자리였다. 제천엔 할머니의 집과 아빠의 집이 있지만 시내 쪽 할머니의 집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시골에 있는 아빠의 집은 멀고 추웠다. 작은 아빠의 식구분들은 이미 숙소를 잡았다 하여 오빠와 나도 그 자리에서 고민하게 됐다. 어차피 사람 다 사는 곳인데 유난이라며 나무라는 아빠에게 우리는 미리미리 준비 좀 해주지 그랬냐며 도리어 아빠를 나무랐다. 자존심에 하는 말이 아닌 진심 어린 걱정과 아쉬움이었다. 멀리서 오는 가족들을 위해 집청소, 하다못해 보일러도 켜놓지 않은 아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도 준비를 못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설날인데. 모두가 무리해서 모인 날인데 아빠도 무리 좀 해주지. 나는 진심으로 서운해했다.


 오빠와 나는 결국 침대가 각각 있는 방 하나를 잡았다. 겁이 많은 나를 위해 결정해 준 오빠 덕분이었다. 군대와 유학, 이른 자취로 늘 떨어져 살았던 오빠와 오랜만에 같은 방에 누웠다. 같이 커피와 과자를 먹고, 아빠의 책임감 없음에 투덜대며.


 다음날 제사 후에 아빠가 할머니의 건강검진에 대해 말을 꺼냈다. 설날 이후 건강검진을 할 것이고, 문제가 발견되면 원주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해 정확한 검사를 하고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고. 이미 후의 일까지 대비하여 척척 준비한 아빠의 모습을 보고 이미 어떤 일이 할머니의 몸 안에서 일어났음을 짐작했다. 그로부터 2-3주 후 기다리는 내내 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몸에서 암이 발견됐다. 병원이 있는 원주로 향하며 아빠한테 필요한 것이 있느냐 물었다.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것이라고 아빠는 답했다. 할머니와 할머니를 보러 오는 가족들이 함께 드실만한 것을 고르다가 롤케이크를 샀다. 고작 롤케이크라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스스로를 이 가족의 게스트 정도로 여겼던 것 아닐까.


 현재는 암이 어디까지 전이 됐는지 검사하기 위한 입원이며, 추후에 치료에 대한 방법을 교수님께 들을 거라는 아빠는 밀려오는 걱정과 부담감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자리엔 안 계셨지만 고모와 작은 아빠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며 아빠가 삼 남매라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할머니를 위로하고, 검사할 때 먹어야 하는 약을 잘 드시라며 타이르고, 무뚝뚝한 아빠를 대신하여 간병인 분께 살갑게 감사를 표하는 정도였다. 많은 걸 하고 싶다거나,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빠, 작은 아빠와 작은엄마, 고모와 고모부가 할머니를 든든히 지켜주고 계셨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이 정도가 맞고, 또 나이가 들면 그때 해야 하는 게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아빠에게 틈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수시로 하루 안부를 묻는다. 그럼 아빠는 위로를 주려는 나의 마음을 알고 아빠의 하루를 들려준다. 하루는 택시에 탄 손님을 자꾸만 다른데 내려 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터미널로 가자고 했는데 시장에 내려주고. 시장에 가자고 했는데 역전에 내려준다고. 아빠도 치매가 아닐까? 하는 장난 섞인 아빠의 물음에 아빠의 마음이 콩밭에 있어서 그런 거라며 어색하게 깔깔깔 같이 웃었다. 그 후로도 이야기는 계속 오갔다. 아빠를 이렇게 온 마음으로 이해했던 때가 있었나. 이제 또 전화를 걸어 하루를 물어야지. 나의 하루가 될, 내가 될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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