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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Aug 07. 2021

진상 보호자와 환자의 속마음

대체 왜 저럴까.

 




요즘 삶의 기쁨 중 하나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보며, 매우 흥미로운 변화를 캐치했다. 시즌1이 방영했을 때만 해도 내 마음은 주로 주인공 5인방의 시선과 일치했다. 의사로서 그들의 고민과 애환, 그리고 빽빽한 라이프스타일에 공감하며 그 안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들에 주로 공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병원의 핵심 인물인 주인공들을 둘러싼 주변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새로 시작한 시즌2를 보면서 문득 내 안에 무언가 바뀌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변화 포인트를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는데 시즌 중반부가 지난 요즘,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바로 시선이었다.


 과거에는 의료진으로서 환자를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을 바라보듯 드라마를 보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환자이자, 보호자이면서 때로는 비중이 적은 제3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의료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쫓는다. 그 변화의 원인은 시즌1이 종영하고 시즌2가 다시 시작하기 전, 공백기에 위암 수술을 받으며 인생에서 큰 변곡점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나름대로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기업에 취직했고 주변에는 늘 비슷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나의 스몰 월드는 대부분 특정한 전문 지식을 제공하는 자들로 구성된 세상이었다. 비록 내가 '사'자 전문직은 아니었어도 지근거리에 늘 '사'자 지인들이 존재했으며 꼭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사회 각 분야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지인들이 넘쳤다. 사회 지도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엘리트 계층이라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그룹 속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은 늘 의사 5인방과 일치했다.       


출처: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 포스터




 지난 슬의생2, 7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의료진들에게 무례하게 굴고, 어찌 보면 진상 떠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보호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주치의에게 수술 경험이 많으시냐고 면전에서 선을 넘는 질문을 하며, 반드시 수술을 성공해야 한다며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무례한 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응급실에서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며 의료진에게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고만 할 것이냐며. 지금 당장 뭐라도 조치를 취하라고' 한바탕 난리를 치기도 한다. 의료진의 시선으로 본다는 그들은 참을성 없고, 무례하며, 어쩌면 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 주제에 감히 전문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영락없는 '진상들'이다.


 그 진상 보호자가 내 주변에도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아빠다.


 몇 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엄마는 발병 후 3년 만에 암이 다시 재발하여 1차 때보다 더 큰 수술을 받으셨다. 당연히 재수술의 난이도가 더 높았고, 1차 수술 후 항암치료로 취약해진 몸 상태에 무리가 됐는지 첫 수술에 비해 회복이 더디어 엄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또다시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부터 충격이 컸던 아빠는 괴로워하는 엄마를 돌보며 빡빡한 스케줄로 환자 1명 1명 성심성의를 다해 케어하기엔 적합지 않은 대학병원의 시스템과 당신 생각에 의료진들의 충분하지 못한 설명과 퉁명스러운 태도에 결국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폭발하셨다. 결국 병실 복도에서 한바탕 큰 소동을 피웠다는 사실을 나중에 엄마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진 않았지만 아빠의 평소 성정으로 봤을 때 충분히 예상되는 그림에 '그러다 환자인 엄마가 의료진한테 찍혀서 더 홀대받으면 어쩌려고 그런 경솔한 행동동을 했을까, 분명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도 다 있었을 텐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교양 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다니! 창피해서 앞으로 엄마 담당 선생님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작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극 중에서도 이제 막 인턴으로 의사 가운을 입은 윤복은 강성 클레임을 하는 보호자에게 몰래 눈을 흘기기도 하고, 그의 밉살맞은 언행에 대놓고 겉으로 싫은 티를 팍팍 내기도 한다. 그런 윤복에게 익준은 왜 보호자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가벼운 어조였지만 진중한 메시지를 던지며 깨달음을 준다. 익준의 대사를 100% 재현할 순 없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곳은 3 병원이고, 그들은 이곳에서 물러나면  이상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호자들도 의료진들에게 그들의 무례한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만큼 보호자로서 환자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크고 간절하기 때문에 의료진들에게 잠시 교양 없는 진상 보호자 따위로 비치는 것쯤은 안중에도 어서다. 그만큼 환자를 위하고 걱정하니까. 그런 마음들을 의료진인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윤복처럼 나 또한 입을 막고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환자 대신 아파도 좋을 보호자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혀 관련 없는 제삼자의 눈에는 '대체 왜 저럴까' 싶은 선을 넘는 행동으로 비치는 것이다. 아마 나의 아버지도 그런 마음으로 과거 소동을 피웠을 것이다. 본인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뻔히 알면서도,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에 남들 시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어 눈물이 차올랐다. 비단 우리 아빠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남들 눈에 예의 없고 몰염치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을 수많은 보호자들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또 큰 수술을 받고 환자가 되어 의료진들을 마주한 경험을 해보니 이제야 극 중에 등장하는 환자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떨리고 절실한 마음으로 의료진들에게 한 마디, 한 마디를 건네는지 공감된다. 워낙 배테랑 연기자들이 등장해 몰입감이 굉장하긴 하지만, 환자들의 사연과 그들의 눈빛, 작은 손떨림 같은 몸짓 하나하나가 요즘 내 눈물주머니다. 만약 암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의료진의 시선에 멈춘 채 세상의 또 다른 방향의 시선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술 후 육체적인 회복보다 정신적인 회복에 더 많은 시간이 들었던 내게, 어쩌면 그 암흑 같은 시간들이 작가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작품을 쓰는데 더 큰 발전을 이루게 해 줄 것이라던 은사님들의 말씀들이 이제야 조금씩 납득이 간다.


 한가지 더,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를 위해 기꺼이 진상을 떨어줄 존재가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수많은 예비 진상 보호자들의 주변인들이여, 그들에게 무턱대고 눈을 흘기지 말고 따뜻하게 감싸주자. 그들의 소란은 간절함의 또다른 표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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