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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Oct 16. 2021

경력직 나부랭이의 삶(1)

이직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대학 졸업 후 바로 입사한 첫 직장을 8년 조금 넘게 다니고 퇴사했다. 바로 연이어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다. 새로운 공간에서 어색함을 티 내지 않고 애써 견디던 내 모습이 벌써 희미해질 만큼, 이곳에서도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첫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여기에 뼈를 묻을 것 같았는데 정말 놀랐다'며, 심지어 업무 중에 나의 퇴직 인사 메일을 받고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는 다소 격렬한 반응들이 N극.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정말 오래 버텼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S극의 반응들 사이에서 손 때 묻은 노트북을 반납하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사실 계획적인 퇴사는 아니었다. 이직하려는 회사와 처우 협의가 완료되고 최종 계약서에 양쪽 모두 '쾅쾅' 도장을 찍는 전까지, 속된 말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판이 바로 이직 시장이다. 중간에 자칫 한쪽에서 수가 틀리면 고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엎어져 모든 것이 무효화되기도 하는 살벌한 이직 시장에서 나는 무리수를 두는 선택을 했다. 최종 채용 확정 사인과 그 후 수반되는 과정들이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나는 8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회사 지하 카페테리아의 커피 맛과 그곳의 공기마저 익숙한 첫 직장을 퇴사했다. 여차하면 백수가 될 수도, 나라는 존재보다 소속된 회사의 신용을 믿고 땡겨온 대출금을 회수당해 어쩌면 '마이 코지 하우스'를 비워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닦칠지도 모르는데 별 대책없이 그곳을 떠났다. 아니 더 이상 한 단 순간도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쳤다.  

 

 열정과 패기, 그리고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신입사원 공채 면접과는 경력직 면접은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그동안 해왔던 업무들을 기반으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질문들이 다소 날카롭게 오고 가는 경력직 면접. 그 끝트머리에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경력 이직자들이 받을 것 같은 파이널 관문 같은 질문이 있다. 인사총괄 임원분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 역시 피해갈 수 없었던 바로 그 질문.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왜 이직하려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특히 OO님처럼 이전 직장이 좋으신 분이 왜 저희 회사로 이직하려고 하시나요?"


 예상했던 질문에 답변할 내용도 이미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해봤기에 망설임 없이 입을 뗐다. '평소 귀사에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더 늦기 전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라고 생각했다.'라는 매우 교과서적인 대답에 약간의 살을 덧붙여 또렷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흔들리는 태도나 전 직장에 대한 비난은 절대 금물이다. 당연히 전 직장에서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이직을 시도하는 속내를 순도 100%로 투명하게 드러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로 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정말 그게 전부인가요?"


 함정이다. 아마 수없이 많은 면접에서 수없이 비슷한 답변들로 인이 박혔을 면접관들은 도돌이표처럼 같은 질문을 또 하며 마지막 덫을 던진다. 위험하다. 머릿속에 경고들이 '삐용삐용' 돌았다. 해사한 영업용 미소를 머금은 채, 마지막까지 걸려들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앞에서 대답한 내용에 더 살을 좀 붙여볼까 한 번 더 강조해 말해보려 하다가 갑자기 툭. 무언가 속에서 툭. 하고 핀트가 나갔다.


 "혼자 커피 마시고 싶어서요."


 이성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발동하기도 전에 입이 먼저 반응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 속으로 뜨악한 와중에도 머리속에서는 여전히 경고 싸인이 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대체 왜 하필 마지막 관문 앞에서 좌충수를 던지는 모험을 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동내 안의 바위처럼 단단하고 삐죽한 응어리가 송곳처럼 마음을 할퀴어 차마 입으로 뱉어내버리지 않고 품고만 있기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기여이 뱉어 버렸던 것 같다. 기왕 해버린 말,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라는 생각에 차츰 마음이 편해졌다. 내 답변이 매우 신선했는지 질문을 했던 인사총괄님도, 나머지 임원분들도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속으로 '그래, 어차피 패는 던져졌다.'라고 생각했다.




 "  직장은 제가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속해있던 조직입니다. 초등학교도 6년이면 졸업하는 마당에 8년이나 다녔으니 비록 퇴사했어도 앞으로  인생에서 지울 수도, 지워질 수도 없는 아주 중요한 곳이  겁니다. 평생 따라다니는 모교처럼요. 분명 다니는 동안 만족스럽지 못했던 부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 와서 그것들을 일일히 짚어가며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든 누구의 강요도 없지 제가 스스로 선택해 입사한 곳이고, 이제 대학 졸업한 햇병아리였던 저를 믿고 엄청난 기회들을 주었던 곳이니 고마운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저도 열심히 일해 성과를 냈고, 이제 서로 빚진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곳이  잘되고 승승장구해서 제가 그곳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이고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더 발전하고 좋아질 그곳에서 저는 더 이상 제 미래를 함께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받았던 많은 성장 기회는 그에 버금가는 아픔를 줬고, 그 과정에서 존경하는 선배도 의지했던 동료, 후배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8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망망대해에 저 혼자 서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연차가 높아지고 관여하는 일이 많아지니 업무 외적인 것들에 시달리는 시간이 더 커졌습니다. 잦은 조직 개편과 사내 정치 같은 부분이요.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저 역시 그 판에 장기 말처럼 매번 폭풍의 눈 한가운데 서있었습니다. 제 직무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데 그곳에 계속 서 있으면 업무에만 매진하며 도저히 외부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차하면 저까지 날아가겠다 싶은 순간들이 많았고 너는 대체 누구 편이냐는 원색적인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피했다, 다행이다 싶으면 여지없이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손 놓고 지켜봐야 했던 순간들이 매 순간 슬픔이고 상처였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그것들이 쌓여 더 이상 그런것들을 감당할 에너지가 제 안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저 역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그저 제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제 힘으로 판을 바꿀 수 없다면, 그 판을 벗어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제가 과거부터 관심이 있었던 인더스트리며, 앞으로의 저의 미래를 함께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판단되는 귀사에서 새로운 기회. 새 출발. 그것이 제가 바로 이곳으로 이직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말이 너무 구질구질하게 길었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면접장을 나와 '너무 투명하게 속마음을 말했나? 싶어 잠깐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봇물이 터진 것처럼 와다다 뱉어낸 말들이 머리와 마음을 맑아지게 했다. 그렇게 최종 면접장을 나와 전 직장에서 바로 퇴사했다. 혹 내 최종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직이 성사되지 않아 백수가 된다 한들 그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어디로 가느냐고' 새로운 거처를 묻는 동료들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동안 고마웠다는'말로, 어쩌면 이것이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을 얼굴들에 일일이 눈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집에 두문불출하며 잠만 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최종 합격 통보와 함께 적당한 처우 협상을 마무리하고 내 인생의 2번째 직장인 이곳에 근무 중이다. 입사 첫날, 나는 커피 한잔을 사들고 회사 중간에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실내 정원에 나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12월의 삭풍에 얼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펄펄 김이나는 아메리카노를 쥐고도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지만 서늘한 바람에 그동안의 아픔이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후련했다.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서울 풍경과 지금 여기서 내가 목청껏 만세를 부른들, 막춤을 추든 그 누구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속이 뻥 뚫린 것처럼 너무 시원했다.  


 해방감.


 내가 진정 이직으로 바랬던 것은 앞자리가 바뀌는 연봉 점프업도, 직급이 달라지는 드라마틱한 레벨업도 아니었다.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지난날의 추억과 아픔이 고스란히 섞였던 곳으로부터의 탈출. 사무동과 식당, 카페테리아, 회사 정원, 심지어 화장실 칸 하나하나에도 서린 기억들이 있는 공간들로부터의 간절히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들, 정확히는 그동안 내게 씌워진 프레임과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로이 해방되고 싶었다. 혼자 커피를 마셔도, 사내 식당에서 혼밥을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에서의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리셋. 친구들은 어디 신분세탁이라도 하느냐고 농담을 해대지만 어쩌면 그말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조직개편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곳, 나혼자 커피를 마시고 나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 내가 누구 편인지 굳이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곳. 가만히 있으면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으로 프레임이 씌워지는 곳에서 벗어나 그저 무색무취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결국 그토록 바랬던 것들을 이직을 통해 손에 쥐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 낯선 환경에서 일명 '경력직 나부랭이'의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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