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언니 Dec 03. 2021

쓸데없는 것들의 집합체

쓸데없는 것, 짓, 관계 그리고 공부

 



"쓸데없는 것 좀 사지 말아라"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아라"


 이제껏 살면서 심심치 않게 들은 말이다. 최근 모처럼 신간 구경이나 할 겸 서점에 들렀는데 책은 고사하고 정작 발길이 닿은 곳은 안쪽 문구 코너다. 빼곡히 진열된 펜들 중 마음에 드는 것 몇 개를 뽑아 들고 돌아서니 너무나도 앙증맞은 연필들이 반갑게 '까꿍!' 손을 흔든다. 홀린 듯이 또 상큼 발랄한 디자인의 연필들을 몇 자리 쥐고 계산대로 향하는데 순간 귓가에 벌써 "쓸데없는 것 좀 사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 쓸데없는 것들

 

 문구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학생 때 문구류에 '꽤' 집착했다. 정확히 초등학교 때에는 '필통'에 집착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펜'과 '노트'에 집착했으며 대학생 때는 '파일'에 집착했다. 쓰고 보니 변화무쌍하고 버라이어티 한 애정의 대상에 웃음이 좀 나는데 일단 꽂힌 아이템이 있으면 책상 서랍 한 칸을 가득 매울 정도로 사재 꼈다.


 엄마는 매번 있는 물건들을   사냐고, 제발 쓸데없는 것들  그만 사라고 성화였지만  시절 그것들은 분명 내겐  쓸데가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각자 아이템들을 서로 자랑하 비교하며 조잘조잘 대화의 물고를 틀어준 매개체였으며, 정말 하기 싫은 과목들을 새로  물건들을 써보고 싶어서라도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게  원동력이었다.


 집과 학교, 학원을 뱅뱅 맴돌던 내게 취향대로 마음껏 소유해도 되는 자유로운 품목은 문구류가 전부였다. 작고 소중한 용돈 안에서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성인이 되어 누릴 수 있는 것들과 즐길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확장되자 놀랍게도 문구류에 대한 집착이 줄었다. 간혹 눈에 띄는 필기류를 발견하면 하나씩 사기도 하지만, 어릴 날 온종일 시내 대형 문구점들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비교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구매했던 노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2. 쓸데없는 짓들


 '학생 때 쓸데없는 짓'은 '공부 외 모든 것'을 의미했고 '성인이 되어 쓸데없는 짓'은 '돈이 되지 않는 짓'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어릴 때는 만화책은 물론이요, 소설책을 읽는 것도 쓸데없는 짓 카테고리에 들어갔는데 최근에는 가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쓸데없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만으로는 수익 창출 활동이 되지 않는다. 만약 책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해서 이 쓸데없는 창작활동을 계속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차라리 그 시간에 투자 공부나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지름길이었을까?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더 이상 공부 이외의 활동들을 섣불리 쓸데없는 짓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달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트에 허구한 날 그림만 그리던 아이들이 웹툰 작가로 대박을 쳐 영 앤 리치가 되고, 역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핸드폰만 가지고 영상을 찍던 아이들이 틱톡커로, 혹은 유튜브로 부와 명성을 얻는 세상이다. 과거 그들의 활동들이 타인의 시선에는 싸그리 쓸데없는 짓들로 여겨졌지만 진짜로 쓸데없는 짓은 남에 인생에 대한 참견뿐 것 같다. 설령 그것이 부모 자식 간이라도 말이다. 부모들이 규정한 쓸데없는 짓으로 훗날 장성해 성공한 자식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다시 돌아와 나만해도 어릴 때 쓸데없는 짓으로 치부되던 행동들. 틈 날 때마다 소설책들을 읽고 어딘가에 깨작깨작 글을 쓰던 일들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작가 타이틀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3. 쓸데없는 관계들


 성인이 되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인간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운명의 단짝 같았던 친구들과 점차 소원해져 인연이 끊어지고, 반대로 첫 만남에서 '이 사람이랑은 가까워질 수 없겠다' 고 생각한 사람들과 영혼의 동반자처럼 안부를 묻는다. 단 하나의 사랑이라 생각했던 사람과도 하루아침에 남이 된다. 현재까지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과거 지나간 모든 관계들은 쓸데없는 관계일까?


 간혹 "쓸데없는 관계들 새로 맺으려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자" 혹은 "애매하면 애써 유지하려 하지 말고 깔끔히 정리해 버리자"라는 생각이 날카롭게 마음을 후빈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결국 모두 쓸데없는 관계 맺기로 귀결되는 헛수고인가? 싶어 공허한 순간들이 온다. 그럴 때는 정말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고 꽁꽁 집에만 숨어 있고 싶다.


 비록 지금은 유지되지 않는, 쓸데없는 관계라 결론지어진 인연 속에서도 분명히 무언가 배우고 느끼는 시간들이 있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유산으로 남는 것을 바로 이 쓸데없는 관계들이지 않을까 싶다. 


 4. 쓸데없는 공부들


 신촌의 모 대학에서 '의류 환경학'을 전공한 나는 그럼 디자인을 하는 것이냐, 왜 의류업계에 종사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아직도 꼬리표처럼 달고 산다. 나름대로 실용학문이라고 생각해서, 또 내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해서 선택한 전공이다. 감사하게도 원하는 곳에 바로 합격했지만, 문과계열의 메이저라 할 수 있는 상경계, 법학 같은 분야가 아니어서 다니는 내내 부모님께 Y대생 이상의 자랑거리가 되진 못했다. 심지어 아직도 친척 어른 중에는 생활과학대학이라는 정식 명칭에도 불구하고 '아, 그 가정대 나온 애'라는 말로 후려치기를 당한다.  


 학부 때 전공이 사회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매칭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얼핏 보면 나 역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다가도, 과연 정말 하나도 연관성이 없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때 배웠던 기본 지식들과 관련 업계에 대한 이해, 학과 특유의 감각과 센스가 없었다면 결코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 같다. 오히려 유니크함, 희소성을 강점으로 전쟁 같았던 취업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예종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도, '그거 공부해서 어디가 쓰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언젠가는 인생에서 예술경영 분야에서 활약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선명한 핑크빛 미래를 생각하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 살면서 꼭 한 번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였고,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내 기질과 적성에 맞는 옷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학부 전공과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공부'로 매도되기 딱 좋은 카테고리였지만 알다시피 요즘 산업의 대세인 콘텐츠 창작 활동과 파생 사업들은 광의로 모두 예술 활동이요, 경영활동이다.  



 5. 쓸데없는 것들의 집합체


 결국 그 쓸데없는 것, 짓, 관계, 공부의 집합체가 지금의 나란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것들을 사모으며 취향과 안목을 키웠고 그것들을 매개로 순간순간 삶의 의지를 다졌다. 쓸데없는 짓들을 한 덕분에 작가가 됐고 쓸데없는 관계들은 내면의 성숙을 도왔으며, 쓸데없는 공부를 한 덕에 밥벌이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오는 2022년에는 더 격렬히, 더 열심히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에 매진해 보려 한다. 


 쓸데없는 모든 것들이 모여, 결국 현재의 쓸데 있는 내가 되었으니 이런것이 바로 아이러니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워라밸에 대한 짧은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