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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Feb 06. 2022

지옥으로 가는 논문 급행열차 출발합니다

벼랑 끝에 매달려서 논문 쓰기 1

내 인생의 구원자. 한예종


 바야흐로 6년 전, (feat. 사회생활 5년 차) 적당히 머리가 굵어진 나는 회사 생활에 신물이 났다. 마치 출구 없는 투명 감옥에 갇혀 이곳에서 꼼짝없이 내 모든 청춘을 난도질 당하는 기분이었다. 남들 보기엔 번지지르한 대기업이니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혼자 속앓이를 했다. 방황하는 마음과 흔들리는 눈빛이 정점에 달했던 바로 그때, 내 인생에 기적처럼 새로운 문이 하나 열렸다. 바로 그토록 원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전문사(석사) 과정에 합격한 것이다.


 당장이라도 시원하게 사표를 날리고 이 지긋지긋한 밥그릇 싸움판을 ‘이제 니들끼리 싸워라’라며 쿨하게 떠나려는 찰나, 갑자기 태도를 바꿔 골치 아픈 문제아에서 하루아침에 일류 인재 취급을 해주는 회사와 그만한 직장이면 학업과 병행했을 때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교수님들의 말씀에 그만 설득당해 버렸다. 잠을 쪼개고 지하철 플랫폼 한 구석에서 차가운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수업 자료를 가득 담은 가방을 메고 다니는 닌자 거북이 라이프가 시작됐다. 돌이켜보면 외관이 상당히 추례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동안 진학하기 위해, 취업을 위해, 대부분 남들의 시선과 부모님의 기대로 점 칠 된 공부에서 해방되어 난생처음 드디어 내가 진짜 해보고 싶었던 분야를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신이 나 낯빛은 해사했다. 그러니 평소 한 줄기 찬바람만 불어도, 스치듯 떨어지는 낙엽만 밟아도 콜록거리는 저질 체력임에도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2년을 다녔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관문. 대학원생들이라면 입학 시점부터 저어어기~ 마음 한 구석에 싹터서 시간이 갈수록 숨 막히게 커지는 바로 그 불안의 씨앗. 논문의 'ㄴ'자만 들어도 뒷골이 뻐근해진다는 석사 학위 논문 패스만 과정만 남았는데 아무리 용을 쓰고 회사와 학교를 같이 다녔어도 한 번에 논문까지 통과할 기력도, 능력도 없었던 나는 필요한 학점 이수만 완료한 전문사 수료 연구생 신분이 되었다. 그래도 넉넉잡아 1년이면 충분히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아~주 패기롭게 지도교수님께 바로 논문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당당히 말씀드리고 그렇게, 첫 출사표를 던졌다.



 삼고초려.
한국인라면 삼 세 판이지


 늘 그렇듯, 인생은 본인 뜻대로 1도 되지 않는다. 어쩌다 착착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아도, '어쭈, 방심하네~' 싶어 괘씸죄로 바로 처단당한다. 1년을 염두에 둔 내 논문 계획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듯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논문이 필수가 아니었던 학과를 졸업했던 나는 엄청난 의지에 상응하는 실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 결국 방대한 선행조사 늪에서 허우적 거리다 연구 주제조차 제대로 픽스하지 못한 채 유야무야 세월을 보냈다. 엎친데 덮친 것으로 당시 몸담았던 회사는 엄청난 격동의 시기였다. 변화의 정점에서 밀려나지 않고 원하던 포지션으로 이동하려다 보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았다. 결국 원하는 바를 얻었지만 그로 인해 계열사를 이동해 근무지도 옮겨야 했으며, 전혀 다른 업태에서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며 소위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길 바라'까지 시전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낯선 이해관계들이 얽히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결국 논문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런 내 상황을 누구보다 공감해주고 늘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은 흔쾌히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보자고 말씀해 주셨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동기들이 하나 둘 논문 패스를 하고 석사모를 쓰자 다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얼마 후 두 번째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도 의지는 충천했으나, 아뿔싸. 건강이 문제였다. 그동안 꾹꾹 참았던 울분과 묵혔던 독들이 콸콸 쏟아져 나왔는지 당시 내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극한의 고통이라는 대상포진에 걸리고 나서야 또다시 백기를 들었던 나는 그 더 이상의 최악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덜컥 암에 걸렸다.


 다행히 초기였지만 수술 후 망가진 육체와 정신을 부여잡는데 또 일 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졸업 연한이 1년밖에 남지 않아, 2022년 올해 안에 논문을 패스하지 못하면 학위는 물 건너가고 수료생 신분으로 대학원 생활을 끝내야 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수료만으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마치 그간의 고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같아 이번에야말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배수진을 치며 지난주에 대망의 세 번째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 청했듯이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한가득 담아 조심스럽게 지도 교수님께 다시 연락을 드렸다.


 자애와 같은 마음과 그동안의 투병 생활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던 교수님은 참 다행해도 이런 모지리 제자를 다시 한번 품어주기로 하셨다. 졸업 연한이 1년 남았어도,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마음으로 올 상반기. 2022년 6월까지 기어이 논문을 완성해 보려고 한다. 결연한 의지로 학사 페이지에서 행정 처리도 마무리하고 곧바로 계획 수립 단계에 착수했다.


 오 마이 갓. D-160


 학위 논문 제출일을 기준으로 역산해보니  마이 . 역시 일정이 빡빡하다.  와중에 올해 새롭게 맡은 글로벌 업무와  공사가 다망한 개인사들이 오버랩되면서 '제기랄 망했다'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이제 정말 물러날 곳이 없기에 오래간만에 브런치에도 이렇게 마지막 출사표를 박제한다. 일주일 단위로 빼곡한 계획표를 보면 여전히 한숨이 나오고 차주까지 연구계획서 초안을 교수님께 보내 드리기로 했지만 아직 정신을  차린건지 새로 개봉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가 너무 보고 싶다. 친구들이랑 맛집과 핫플도 너무 가고 싶고  와중에 끊었던 인스타그램도 너무 하고 싶고 지인들의 오만 일상이 전부 궁금하다.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주제에 아직 여유가 넘치나? 싶지만 벼랑 끝에서 뭐 상쾌한 공기도 맛보고! 아찔한 스릴감도 맛보면서 일단 한 번 매달려 보는 거지 뭐! 미리부터 떨어질 걱정이랑 접어두고 올 상반기를 '대롱대롱 매달려 짜릿함을 즐기며 애쓰는 시간'으로 명명하기로 한다. 간간히 논문 진척사항과 신변잡기들도 콘텐츠 삼아 새로운 브런치 매거진으로 발행할 생각에 조금 신이 났다면 드디어 내가 실성한 것인가?


 Anyway, 일단 패는 던져졌다.

 지옥으로 가는 논문 급행열차.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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