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우(flow): 불행의 틈을 타 행복이 흘러 들어올 수 있게
딸아, 우리 이제 쫌 같이 행복해지면 안 될까?라는 엄마의 질문에 엄마, 우리 각자의 방법대로 행복해지면 안 될까?라고 반문했다.
그래,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지. 딸의 행복이라면 무엇이든 했지. 그런데도 왜 딸이 행복하지 않는지가 의문이라며 괴로워했지. 하지만 딸도 못지않게 괴로웠단 걸 알아. 엄마는 딸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었지만, 딸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셨으니까. 엄마를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어서 참 많이도 힘들었겠다 싶어.
요즘 들어서야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고 했지?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느껴서 생긴 변화려나? 그동안의 고민의 결실이려나? 변화의 계기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어. 행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 사람이었잖아. 그저 불행을 피하기만을 바랐던 가여운 사람이었잖아.
다들 “이렇게 하면 좋던데?” 싶은 것들이 다 좋지가 않으니까 힘들었다고 했지? 학창 시절 하하 호호 거리며 생각 없이 먹는 떡볶이, 엄마가 가라고 하는 교회, 대학교 가서 하는 미팅, 클럽, 연애, 돈 벌며 하는 쇼핑. 그 어떤 것도 행복을 주지 않았는데, 다들 같이 그러자고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며. 그래 맞아,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의 행복은 때때로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지.
하지만 더 깊게 생각을 해봐도, 생각할수록 오히려 정말 이상하다. 특히,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 그런 것들이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게 가장 이상하다. 어떻게 그 무수히 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이 단 하나로 귀결될 수 있는 걸까?
어릴 때부터 행복이 어려운 아이였다는 걸 알고 있어. 남들이 즐거워하는 순간에도 네 마음속에는 어딘가 낯선 이질감이 떠다녔겠지. 그래서 한때는 궁금했을거야. ‘왜 남들처럼 즐기지 못할까?’ 하지만 이제는 알아. 남들과 다르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도 진짜로 행복했던 순간들은 분명히 존재했을거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어떤 일에 깊이 몰두했던 순간들 말이야. 그게 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어. 어떤 책을 읽을 때일 수도 있고, 글을 쓸 때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때일 수도 있겠지.
사실 그게 바로 *플로우(flow), 몰입의 순간이야. 플로우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개념으로,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 감각조차 사라지고, 그 자체로 충만함을 느끼는 경험을 의미해.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했어.
행복한 사람들은 플로우 경험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왜 그런 적 있지 않아? 무언가 몰입하게 되면 출처모를 활기가 내 안에 퍼졌던 경험. 그런 순간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줄 알았던 몰입의 순간들이 행복의 순간들이었나 봐. 덜 불행하기만을 바랬는데, 그건 오히려 행복보다도 어려운 일이더라. 차라리 불행의 틈을 타고 들어오는 몰입이라는 행복의 경험들을 쌓아두는 게 낫겠더라고.
요즘 연애도 하고 있다 했지?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를 버는지보다도 그 사람이 네 다름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궁금해. 같은 방법으로 같이 행복하자고 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야겠다. 행복이 어려운 사람이란, 오히려 더 깊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거나, 혹은 완벽한 순간이 찾아와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 같기도 해.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순간이 와도 만족은 오래가지 않지 않았어? 마치 남의 물건을 잠시 빌려 쓰는 것처럼.
근데 플로우, 즉 몰입이 넘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깨달았어. 행복의 키는 결국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던 거구나. 자신의 삶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는가, 그게 행복을 결정하는 거였어.
편지를 쓰다 보니 그동안 행복을 위탁하며 살았던 건 아닌가 싶네. 말을 너무 쓸데없이 어렵게 했나? 그냥 그동안 너무 바깥을 향해 손을 뻗고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는 뭐 그런말이야. 그럼, 일주일 또 잘 지내다가 무심코 편지 한 장 보내보도록 할게.
삶에 더 깊이 빠져들기 위해
손을 안으로 뻗기 시작한 나로부터,
P.S. 악몽을 일주일째 꾸고 있다고 했지. 전임자도 경력도 없는 고등학교 상담교사라는 게 너무도 불안한가 보다, 아무래도. 이런게 한 때면 그래도 괜찮을텐데, 왜 악몽과 불안만의 순간들만을 살아가는 것만 같은지. 그래서 늘 이 악몽이 끝나기를 남몰래 기도했단걸 알아.
하지만 삶은 그런 게 아니었어. 악몽을 꾸지 않는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은 악몽을 꿔도 또 살아내는 사람이었어. 악몽을 꿨어도 순간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불행해도 행복할 수 있는 거였어. 그러니까 완벽한 불행도 행복도 없는 거야. 그저, 불완전한 우리의 하루하루를 그저 사랑해야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면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