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나에게,

자기복잡성: 바쁘게 사는 것은 도피인가? 확장인가?

by 틈새


나는 취미가 많아야만 살 것 같다.


약 30년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몰랐는데 작사와 작곡, 뮤지컬, 익스트림 스포츠, 독서, 글쓰기, 운동, 요리… 등등 쉬지 않고 무언가를 늘 배우고, 경험하고, 만들어내며 살아왔더라고?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 ‘대단한 게 아니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안이 쌓이면 우울감에 휩싸일까 봐 그러는 건데.’ 맞아,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살기 위해 그랬던 거였어.


어떤 일이든 한 가지에만 기대고 살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봐. 심리학자 린빌(Linville, 1985)의 *자기복잡성(self-complexity)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을 정의하는 영역이 많을수록 심리적 안정성이 높다고 해. 쉽게 말해,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면, 그중 하나가 무너져도 나는 온전히 설 수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기둥을 늘리려 했다. 단단한 기둥 하나에 기대 사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둥을 세워서 나를 버티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그 기둥들은 과연 튼튼한가? 아니, 정말로 지탱해주고 있는 게 맞을까?


취미는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하잖아.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드니까. 하지만 때때로 취미는 성장보다는 도피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아. 문득 어떤 취미를 즐기든, 그것이 우울감을 피하기 위한 방편은 아닌지 되돌아봤어. 바쁘게 움직일수록 불안감이 가려지는 기분이 들었어. 마치 고요해지는 순간, 뒤덮을 감정을 미리 막기라도 하듯.


하지만, 취미를 하나둘 쌓아올릴수록 안에는 또 다른 감각도 싹텄어. 그것들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삶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감각. 나는 단순히 불안을 감추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담아 곡을 만들고 싶었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순간을 좇아 익스트림 스포츠를 택했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썼지. 어쩌면,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여유가 있을 때 불안을 느끼곤 했다. 할 일이 없을 때불현듯 찾아오는 감정들, 커지는 감정들만큼 뜯게 되는 손톱, 끝없이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걱정하는 습관. 그래서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바쁨과 여유, 확장과 도피, 즐거움과 불안감. 삶은 그 경계 어딘가에서 늘 출렁인다.


그리고 올해 3월부터 우여곡절 끝에 집 근처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 집과는 멀지만 상담 세팅이 잘되어 있고 편해보이지만 급여 인상률이 낮고 방학에 근무을 해야하는 곳과, 집과는 가깝지만 상담 세팅이 전혀 되어있지 않고 힘들어보이지만 급여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방학이 있는 곳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는데 여전히 잘한 결정인지 잘 모르겠어. 이에 더해 학창시절 늘 겪었던 신학기 증후군을 곧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를 먹고도 되풀이되고 있는건지 뭔지 마음이 참 바빠. 작은변곡점 하나하나에도 늘 우왕좌왕하던 나였으니까.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제발 담대해지라고 하셨어. 물론 담대함은 좋은 단어이긴 하지만, 내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가봐.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직장 스트레스에 압도될 수도 있고, 혹은 바쁜 삶 속에서 오히려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게 될 테지, 늘 그래왔듯. 난 그저 이제는 그 순간들이 나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하는 길이 되기를 바랄뿐이야. 담대하게는 아니더라도 휘청이며 나를 확장할 수는 있지 않을까. 예전에 한 지인분이 나를 보고 물 위에 떠다니는 돛단배 같다고 하신 적이 있어.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휘청이면서도 어떻게든 자기 길을 가고 있다고. 그때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아.


불안을 숨기던 천막을 뚫고

피워낸 것들의 아름다움을

응원하는 나로부터.


P.S. 많은 취미 중 가장 스스로를 확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운동과 글쓰기였어. 둘을 모두 하면 심신단련의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지. 그래서 요즘 영화와 책 그리고 심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며, 스쿼시와 풋살을하는 이 삶이 제법 만족스러워. 반면, 공허를 채우기 위한 연락이나 SNS 또는 약속들은 일시적으로는 좋아도 장기적으로는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깨달음이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확장시키는 취미와 도피 역할을 하는 취미를 구별할 줄 안다는게 중요하다는 사실만큼은 절대적이지 않을까 싶어.

생각해보니 이제 불안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자신만의 것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 그러니 우리의 불안을 사랑하고, 응원해보자. 내가 찾은 그 방법은 글쓰기와 운동이었는데, 아마 그 방법은 무궁무진할거야. 불안에 도피하는데에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그 방법 찾기 위해 에너비를 생산적으로 써보는건 어떨까? 같이 해보자. 내가 도와줄게, 언제나! 다른 사람는 몰라도 나만큼은 항상 내 편이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