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가 부끄러운 나에게,

차가운 인지: 뜨거운 질투를 차갑게 해부하다

by 틈새


내 질투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


예전에 얼핏 보았던 청춘과 관련된 드라마의 한 대사가 요즘 자꾸 머릿 속에 맴돌아. 질투심에 휩싸인 드라마 속 인물이 너무 못나서 보기가 싫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인물이 내레이션을 들으니 조금은 그녀가 이해 가는 구석이 있더라고. 실은 내 질투도 못지않았거든. 어쩌면 그녀가 보기 싫은 것도 그녀를 닮은 내 모습이 보여서였을지도 몰라.


가끔 가다 보면 열등감과 질투 모두를 솟구치게 하는 인물들이 삶에 등장하곤 했어. 내 질투의 대상은 보통 마르고 화장기 없는 얼굴의 예쁘장한, 가난에 대한 큰 걱정이 없으면서도 능력 있는 여성이었고. 타고나기를 마른 애들을 도저히 내겐 이길 길이, 타고나기를 똑똑하고 부유한 애들을 내겐 이길 길이, 타고나기를 단아하고 어여쁘게 생긴 애들을 내겐 이길 길이… 없는 것만 같은 그 뭐 같은 느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는 왜 이들에게 질투를느낄까? 단순히 그들의 외모와 능력이 부러워서일까? 감정의 흐름을 조금 더 냉정하게 들여다보기로 했어. 심리학에서는 감정을 분석하는 방식 중 하나로 *차가운 인지(cold cognition)라는 개념을 이야기해. 이는 감정이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사고 과정을 의미하지. 감정이 뜨겁게 요동칠 때, 우리는 그것에 휩쓸리기 쉬워. 하지만 감정을 한 걸음 물러서서바라보면, 질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고 과정의 결과라는 것이 보였어. 한편, 이와 대비되는 개념인 *뜨거운 인지(hot cognition)감정이나 동기(motivation)가 개입된 사고방식이야. 질투를 예로 들면, 뜨거운 인지는 “나는 저 사람보다 부족해, 그래서 불행해”라는 감정적 반응으로 이어지는 거지.


차가운 인지는 “내가 질투를 느끼는 이유는 상대와 나를 비교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나의 자존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그 전에는 몰랐었는데 질투의 대상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었더라고 내가. “나는 저 사람보다 부족하다.” “나는 타고난 것이 없으니 노력해도 저렇게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질투는 비교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과정에서 증폭되는 것 같더라.


그렇다면 이 판단이 정말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틀 안에서만 유효한 생각일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기가 좋지 않아서 질투가 극심해졌다고 나름의 가설을 세웠어.이어서 그 가설을 기반으로 미숙해서 부끄럽다고 여기는 질투라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봤지.


조금 뜬금없이 고백하자면 나는 임용 시험에 떨어진 지 아직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슬프고, 앞으로 계약직으로 학교 전문상담사 일을 하게는 되었지만 미래는 여전히 막막하고, 공무직의 친구들의 적은 월급 때문에 아사할 것 같다는 뼈 있는 농담만이 선명하고, 사회의 기준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자꾸만 들려와 거슬리고, 사회의 기준에서 못 나가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못난 안도를 느끼는 내가 우습기를 반복하고 있어. 이것이 내 질투의 실체였고, 이에 나는 차가운 인지를 되새기며 감정을 억누르려 했어.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만같더라. 내 경험을 미루어 보았을 때, 마음의 가난이라는 것은 물질적 가난보다도 무서운 것이었거든.


아차차, 얼핏 보면 차가운 인지가 감정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저 그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구나.


질투를 느끼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그 질투가 어디에서 오는지 분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감정에 덜 휘둘릴 수 있었어. 질투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임용 실패의 충격으로 인해 생긴 작지만 깊은 마음의 구멍이 있었고. 질투라는 감정이 부끄러워서인지 뭔지 구멍은 작았지만, 구멍이 작아서인지 뭔지 오히려 구멍은 깊었어. 그 깊이를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어. 내가 많이 힘들었었구나. 성취와인정의 욕구가 좌절되어 마음에 구멍이 났는데, 힘들어하는 모습조차 자존심이 상해 숨기느라 애쓰고 있었구나. 질투라는 감정이 길을 잃어 더욱 강렬해졌던 것이었구나. 나는 그 감정의 길을 찾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구나.


질투에 휩싸여 놓쳤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 부모님과 친구들의 응원과 지지, 어렵게 얻은 학교에서의 일자리, 어쩌다 보니 급격히 빠진 살, 공무직 교사라는 새로운 가능성, 일과 다양한 취미에서 오는 보람과 성취감까지.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또 내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개개인은 각자가 가진 각자만의 빛이 하나 정도는 다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교와질투라는 것이 참으로도 헛되다는 생각을 했다. 안정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일시적으로 좌절된 것인데도 뿐인데도 난 이 좌절이 평생 그럴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던거야.


질투가 나면, 질투가 난다 하고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더라고. 질투가 내는 불보다도 내게 주어진것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내는 빛이 더 강렬할 것이라고 믿고 꿋꿋이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 빛은 외모나 능력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은은한 빛이 될 거야. 언젠가, 그 빛이 누군가에게 작은 귀감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빛이 비교의 불씨가 아니라 연대의 빛이 되어주기를 바라.


각자의 은은한 빛을 응원하는 나로부터.


P.S.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고, 그러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 했어. 질투와 관련해서 읽었던 한 책에서 보았듯, 실로 질투에 대한 내성은 개성화에서 오는 것이 맞는구나 싶었지. 나만의 색이 짙어질수록 타인과 비교 불가한 나만의 영역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럼에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거야. 하지만 내면의 힘을 길러, 그 감정에 휩싸여 우울해지지 않을 수는 있겠지.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빛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야. 우리는 너무 쉽게 그걸 잊곤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 빛을 함께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살아내려 해.

올해는 일단, 학교상담사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라 믿어. 그렇게 나만의 축을 살아내야지. 각자의 축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의 빛나는 부분만 보고 행하는 어중간한 비교의 지옥행 버스에서 하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하차했을 때 분명 더 풍요로운 세계가 펼쳐질거야. 함께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