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으면 더 외로운 나에게,

실존적 외로움: 외로움이 내게 어디로 가고 있냐고 물었다

by 틈새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다. 어쩔 때는 혼자 있을 때보다도 더.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나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들 때 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공허가 몰려왔다.


집에 돌아와 괜히 연락을 돌려봐도 그 허전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더라. 결국 SNS를 켜고, 스토리를 올리고, 누가 반응했는지 확인하며 잠시나마 연결된 기분을 느끼려 하지만 새로고침을 반복하는 손끝에는 묘한 초조함이 남았어. 이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잔뜩 쌓인 카톡방을 보면 즐겁기도 하지만 피곤하고, 텅 빈

카톡방을 보면 편안하면서도 허전해. 사람들과 어울리면 관계의 피로가 밀려오고, 혼자 있으면 깊은 고독이 찾아와. 괴롭거나 외롭거나, 우리는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기까지 했더라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깊은 절망을 느낀다. 너무나도 외롭고, 내가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나는 웃고 대화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안에서는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절망이 흐르고 있다. 때때로 나는 권총을 들고 끝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어쩌면 사람들과 함께하면서도 외로운 이유는, 단순히 타인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하는 나’ 때문일지도 몰라.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결국 ‘나’라는 존재는 온전히 혼자일 수밖에 없잖아. 내가 느끼는 감정, 나만이 감당해야 할 선택과 책임 앞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어.


이러한 감정을 *실존적 외로움(existential loneliness)이라고 해. (실존적 외로움은 단순한 사회적 고립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본질적인 고독이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용기”를 강조했어.


타인의 시선과 기대 속에서 나를 찾으려 하기보다, 스스로를 마주하고, 내면의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NS 속 반짝이는 알림이 나를 증명해주지 않고, 많은 대화가 나의 존재를 채워주지 않아. 실존적 외로움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이야.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외로움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대하고 살아갈 것인가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지금의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 방향을 잃은 상태에서 오는 감정 이상의 무언가 인건지도 모르겠네. 한편. 키르케고르는 이런 말도 했어.


절망은
자기가 자기 자신이 되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즉,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고 고정된 정체성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계속 변화해야 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야.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


때로는 ‘이게 맞나?’ 하는 의심도 들 거야. 하지만 그 불안을 견디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바로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진짜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용기인 거지. 그러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보다, 조금은 이 상태를 지켜봐야 해. 외로움을 애써 없애려 하지 않고, 그냥 그 감정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내 할 일이었어.


어쩌면 외로움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너는 어디로 가고 싶어?” 그런 맥락에서 어쩌면 외로움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느낄 때,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들여다보면, 자기 이해가 더욱 깊어질 테니.


아마 각자의 외로움의 시작점은 다를 거야. 삶의 의미, 관계, 혹은 자기 자신. 나의 외로움의 근원지에 무엇이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의미 있고, 베풀며, 정의로운 삶을 살고 싶었으나 요즘 그러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어. 나이가 들면서 부쩍 돈과 결혼에 대한걱정이 많아졌기 때문이야. 어느새 나는 많은 부와 명예 이런 것들을 질투하며 부모님이 열심히 사랑으로 키워주신 있는 그대로 가치 빛나는 나를 부끄러워하는 못난 어른이 되어 있었어. 이 어긋난 가치관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 걸까. 다른 이들의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만 이런 걸까.


그러나 결국 외로움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될 거야. 부와 명예와 상관없이 그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외로움을 느낄 때면, 이제 이렇게 생각하려 해. 그 질문에 답해야 할 때라고.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외로워도 행복할 수 있단걸 알게 된 나로부터.


P.S. 늘 애인이 없어서 외롭다는 말이 나한테는 와닿지 않았어. 연애를 하든 안 하든, 언제나 외로웠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애인이 없어서 외롭다’고 말하지만, 사실은누군가가 있어도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외로운 게 아닐까? 연애를 해도, 친구가 많아도, 가족이 곁에 있어도 여전히 텅 빈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아?

이처럼 외로움은 잊기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일 정도로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지도 모르기에 중요한 영역이야. 그걸 알아도 물론, 여전히 외로워.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어. 이제는 그 외로움을 알아가보고 싶어졌다는 것. 어쩌면 외로움을 알아간다는 것은 결국 보다 더 깊은 나와 마주하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이 여정을 우리가 함께할 수 있어 기뻐,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