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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Jul 19. 2023

다시 흙으로, 없는 것으로.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3.07.19



한 달 전부터 다시 음식쓰레기 흙퇴비화를 하고 있다. 나의 집에서 최소한 내가 먹는 행위로부터 발생한 쓰레기를 나의 집안에서 처리해 보는 것이다. 집 밖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묻혀 버린 음식쓰레기는 어쩌다 볼 수 있는 쓰레기 발생량으로, 환경오염의 심각정도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먹고 남기고 버리는지의 실태를 보여줘야만 잠시잠깐 '아차, 내가 버린 쓰레기'하고 의식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이유로 갖는 불편한 마음을 음식쓰레기봉투를 버리면서 함께 처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사실 그렇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음식쓰레기를 버릴 때 무게를 달아 처리비용을 후불정산하고 있다. 세대별로 별도의 카드를 발급해 음식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카드사용법을 모르고 있다. 일부러 카드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이 집에 사는 한은 이 카드를 꺼낼일이 없기를 소망하며 말이다. 




뭘 그렇게 애쓰는 마음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매일 세수하고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하고 꾸준하고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단번에 환경의 위기 속에 처한 게 아닌 것처럼 어떤 일상화보다 일상화되야 함을 아마도 지난 한 주의 장마 아닌 폭우도 경고해준건 아닐까. 위기경고는 점점 이렇게 잦아지는데. 자연재해 끝엔 기후위기가 늘 따라붙고 있는 현실에 적응이라는 걸 해서는 안 될 텐데. 




'이제서, 혼자서'라는 회의적인 표현은 이미 잊었다. 결과는 미래일 뿐, 오늘의 위기에 눈감고 싶지는 않다. '이제라도, 혼자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편하다. 물론 세상엔 더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변화를 위해 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지구전체를 통틀어 보면 비록 다수 아닌 소수일지라도, 세상은 소수로 인해 끊임없이 자극되고 작은 걸음 나아지고 변화한다는 걸 안다. 나도 그런 이들의 영향을 받았으니 나는 또 나로 끝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모르겠다, 내일은. 그냥 밥 먹듯 자연스럽게 오늘 나의 주방에서 나온 채소꼭지와 감자껍질을 흙에 묻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과일껍질, 채소꼭지와 뭐가 다를까. 언젠가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흙으로 돌아갈 나는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면서 '인류'가 되어 해치고 싸우고 욕하고 무겁고 찡그리고 욕심내며 살까. (물론 인생에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무엇이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생이란 것이 오늘 내가 먹은 감자와 다를 게 있으려나. 그러니까 나는 흙이 되기 전 그냥 어떤것으로든 오늘을 톡톡히 살아가는 것으로 모자람없는 하루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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