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이사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3.06.22


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사한 곳은 아파트이고 게다가 첫 입주, 새 아파트다. 집안의 모든 것이 누구의 사용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새것'천국이다. 새것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는 전단지들이 엘리베이터벽을 도배하고 있다. 아직 입주가 끝나지 않은 지라 매일같이 이사사다리차가 굉음을 내고 이사가 들어오면 올수록 쓰레기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쌓이고 있다. 물론 사용이 불가능해 바꿔야만 하는 세대도 있겠지만 새집과 상반되는 헌 가구들과 생활흔적 가득한 생활집기들이 버려지고, 새 가전제품을 싣고 들어오는 대형트럭이 하루가 멀다 하고 단지로 들어와 큼직한 새 가전들을 나르고, 온갖 종이박스와 스티로폼과 일회용 플라스틱이 쌓이고 있다.




그게 어떤 욕망인지 나도 안다. 나도 이전의 집과 구조가 다르니 가구들도 재배치가 필요했다. 책장도 커튼도 이불도 새로 사고 싶었다. 하도 창가의 빛에 색이 바래 회색인지 아이보리인지 모를 거실 커튼, 결혼할 때 해온 꽃무늬이불, 금색의 목화이불과 보험회사에서 고객선물이라며 나눠줬던 또 큼직한 꽃무늬 여름용 홑겹 이불이 영 하얀 새집에 어울리지가 않았다. 껍데기에 나를 맞추고 싶은 마음, 욕망이었다. 다른 집도 그러는데, 뭐.




어쨌든 나는 나와의 타협을 하고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 헌것을 보며 불평하는 마음만 늘어놓을 수도 없지 않은가. 내 일상을 그런 마음으로 채워갈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헌 것도 새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처럼 나의 마음도 새것에 설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헌 것이 되어버린 물건들과 함께 익숙함으로 변할 것이다. 어느 때엔 괜히 샀다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짐정리를 해가며 '필요한가'에 우선을 두어 보자 했다. 불쑥불쑥 '갖고 싶다'와 싸우는 것은 감내해야 했다. 것도 하다 보면 해볼 만하다. 밖의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와의 대면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책장이 필요하기도, 갖고 싶기도 했지만 기존의 큰 하얀 앵글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일부는 책장으로, 일부는 선반으로 쓰임이 가능했다. 오호, 시선을 약간 달리하고 연구하니 책도 잘 보이게 정리하면서 책장이 필요하지 않아 졌다. 남편이 '아하, 이렇게' 라며 추임새를 더하니 자신감이 더해졌다. 이미 달아버린 헌 커튼은 색이 바랜 채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기능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디자인적으로 일단 꽃무늬가 아닌 민무늬였다. 나만 아니라면 누구도 커튼에 시비할 사람은 없었다. 이불은 수년동안 바꾸기를 고민했던 마음속 애물단지지만 올해 초에 해질 때까지 써보기로 마음을 먹은 뒤라 더 이상 스스로 혼란스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도 새하얀 집안의 큰 덩어리인 침대이불의 꽃무늬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불평거리, 애물단지는 아니니 이게 누구에게 좋겠나. 결국 나에게 좋은 일 아니겠나. 편안한 나의 집이 불평거리로 채워지지 않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좋았다. 그래도 금색의 무거운 목화이불세트는 새로 틀어 침대생활에 편리한 형태로 바꾸기로 했다. 있어도 사용하기 어려웠는데, 때마침 시누이도 이불이 필요하다고 하니 틀어 두 집이 잘 사용하면 될 일이다. 경제적으로는 저렴한 이불을 사는 것에 비하면 비효율이지만 버리지 않고 새활용한 것에 의미를 둔다면 경제적인 효율만 우선할 수는 없겠다.




정리의 힘을 믿는다. 쓰고 제자리에 두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래서 하기 어렵고 하고 나면 생활의 편리뿐 아니라 소비의 관점에서도 변화를 이끌며, 무엇보다 내가 함께 정리되고 정돈된다. 잘 정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 힘을 알게 되었다. 오늘 부족했다면 내일은 조금 더 바지런해보려고 한다. 이 또한 나를 위해서다. 나를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위하는 방향이라면 이 얼마나 보람된가 말이다. 글을 남기며 한결 더 욕망은 가라앉고 나는 정돈되어 간다. 그렇게 이사를 핑계로 욕망의 전열을 갖추고 충실해보려고 했으나 이렇게 (여느 때의 이사보다) 조금 더 무해하게 이사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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