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23.03.14
습관이란 걸 만들어갈 땐 역시나 혼자 하기보다는 같이 하는 순간부터 자세가 달라집니다. 나의 말에 책임을 지기엔 선포하고 지켜봐 줄 대중만큼 좋은 에너지가 없습니다. 지지난 달인가. 3주간의 환경학교에 참여했는데, 첫 시간에 본인이 실천하고 싶은 환경실천을 자유롭게 정했습니다. '물 받아 설거지 하기' 나는 이렇게 자원을 절약해 보자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최소한 나의 삶 안에서는 가치롭고 소용이 있으니까요. 졸졸졸 흘려버리고 말았던 설거지물. 마음의 켕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매일 하는 설거지만큼이나 매일의 켕김은 내성이 생기는지 그 마음에도 무던해져 갔습니다. 그러니 이 굳어져가는 무던함을 깨울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음날부터는 각자의 실천인증을 소통방을 통해 했습니다. 잘 되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물론 있습니다. 이쯤에선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것만도 용기 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했으니까 말입니다. 태풍 같은 나비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존의 일상이 아무렇지만은 않았던 각자의 삶은 이로 인해 용기든 보람이든 뿌듯함이든 혹은 정반대의 무엇이든 의미를 찾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음날부터 인증사진 때문이라도 큰 볼에 물을 받아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차 애벌을 하고 세제로 닦아낸 것을 싱크대 한쪽으로 몰아놓고 볼에 물을 받아 헹구었습니다. 일단 틀어놓은 물소리가 나지 않아 조용해서 좋았습니다. 늘 물소리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물을 틀어놓으면서 설거지를 빨리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사라졌습니다. 이 조바심은 설거지라는 행위보다 이 감정을 끝내버려야 한다는 데 더 에너지를 쏟았다는 걸 물을 받아 설거지 하면서 알았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비누칠할 순서를 정하고 쌓기 쉽게 그릇의 크기와 종류별로 모아 차곡차곡 쌓고 있었습니다. 다시 쌓기 좋게 헹구는 순서를 두고 천천히 그릇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이렇게 설거지를 하고 나니 마치 설거지가 수행과 같았습니다. 설거지 하는 매 순간순간에 천천히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그릇이 닦이는 것은 물론 감정에도 얼렁뚱땅하고 있었구나 알았습니다. 물론 닦을 그릇이 적을 때는 물을 받아 씻기보다는 졸졸졸 틀어놓고 씻는 게 합리적일 때도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설거지도 매일 일어나는 일상인만큼 늘 상황이 한결 갖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는 또 상황에 알맞게 대처합니다.
저수지가 말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어느 섬은 식수를 일주일에 한 번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보았습니다. 가뭄과 고온으로 산불은 재난의 수위가 상당해졌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현실입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임을 두말할 나위 없이 명확하게 보여주는 재해들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입니다. 우리 집 수도꼭지에서 지금은 물이 콸콸 넘칠지 몰라도 언제까지 나의 일상이 지금처럼 편하기만 할지 알 수없고, 불편이 찾아오기를 기다려 맞이하기만 해야 할지 생각합니다. 현실에 탄식만 하기보다 약간의 불편을 스스로 선택하는 쪽으로 살아보겠습니다. 미래에 뭐가 오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