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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Aug 04. 2023

계획 빠진 여름휴가는

23.08.02



올해 여름휴가도 특별한 계획 없이 보내고 있다. 집을 근거지로 남편의 하루 시작은 조금 늦어졌고, 나는 남편출근을 배웅하던 마음이 느긋해지니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은 같아도 괜스레 여유롭고 편안하기만 하다.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이 있으면 찾아 나서는 것이 특별한 일이라면 일이랄까. 그리고 해가 지면 나타나는 모기 때를 찾아 호들갑스럽게 처치하고서는 모기와 열대야 속에서 가능한 편안한 잠을 취하려는 남편의 적극성과 노력이 평소보다 특별하다면 그렇달까. 왜냐면 어쩐 일인지 모기가 남편방과 거실에만 출몰 중이기 때문이다.




베란다와 연결돼있는 남편방은 빗물이 내려오는 배수구가 있는데 혹시 그쪽에서 모기가 생기는 게 아닐까 그런 얘기를 하기도 하고, 욕실청소를 하다 발견한 물이 고이기 쉬운 배수구조를 두고 둘이 세탁실과 베란다와 욕실 배수구를 점검하며 새로운 발견처럼 아~, 어! 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남편은 배수구조를 개선할 제품을 구매해 교체하기도 했다.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남편은 쪄서 얼려둔 옥수수 4개를 꺼내 찜기에 쪄 먹고는 심지를 펼쳐 말리기를 휴가 내내 반복 중이다. 며칠 보고 있으니 그런 줄을 알고 많이 쪄두기는 했지만 정말 옥수수구신이다 싶다. 옥수수시즌이 끝나기 전에 더 삶아둘까, 그냥 그런 생각이 지나가기도 했고.




에어컨을 잘 켜지 않는 탓에 이번주 휴가에 들어서야 두어 번 켜기 시작한 에어컨은 거실과 남편방에 있는데, 남편은 오늘 아침 일어나기 전 본인방에 에어컨을 켰다 끄고는 방문을 계속 닫고 들락거리며 시원하니 들어가 보란다. 냉기가 빠지지 않은 방에 선풍기를 켜두니 춥지 않고 꽤나 쾌적하길래, 좋은데~ 했더니, 낮에 너무 더우면 거실 말고 방에 에어컨을 켜고 들어가 있으면 되지 않겠냐는데 좋은 생각이었다. 넓은 거실보다는 작은 방이면 잠깐만 에어컨을 켜두어도 금방 시원해지고, 어차피 각자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노트북을 들고 각자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 책을 보던, 모아둔 구멍 난 양말을 꿰매던, 빨아놓은 셔츠를 다리던 하면 될 일이니까.




특별할 일 하나 없지만 문득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시답잖고 별스럽지 않은 농담과 얘기를 주고받고 각자의 볼일들을 보고, 시간은 평소주말과 다름없는 듯하지만 '여름휴가'라는 말 때문인지 계획이 없는 올해 여름휴가는 나름 소소함이 주는 특별함을 남기며 지나가고 있다.  




나가서 밥을 사 먹고 다시 움직여 팥빙수를 한 그릇 먹고 집에 왔는데 하루가 다 지나가있다. 이런 날은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져서 이럴 바엔 어디라도 갈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무계획으로 휴가를 보내게 된 데는 지나간 2년 동안 휴가라는 것이 고생이라는 기억으로 남아 계획한 시간마저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별히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이 남고, 막상 휴가를 가서는 무더위와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집에 가고 싶으니 이게 무슨 장난 같은 마음인가. 가도 부족하고 안 가도 부족한. 반대로 가도 만족스럽고 안 가도 만족스러울 순 없을까.




지금은 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다. 휴가시작 하루이틀은 계획이 없는 이 안에서도 괜한 걱정이 있긴 했다. 일주일이 이렇게 지나고 나면 1년 후에나 돌아올 여름휴가를 이렇게 보낸 것을 후회하진 않을까. 자유로움이란, 그러니까 늘 그래오고 그렇다고들 의식하고 있는 것에서 한 발짝이라도 빠져나와봐야 다른 맛을 볼 수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 맛이 더 좋다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다른 맛이라는거다. 좋은지 덜 좋은지는 각자가 느낄 몫이겠지만, 긴 노동시간과 여름휴가라는 것을 통해 노동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장시간 벗어날 수 있는 그래서 목메어있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여름휴가는 어떤 휴가보다 특별하다.




올해 여름휴가가 그런대로 부족보다는 만족에 추를 더해가고 있다. 그게 삶으로 연장되어 가겠지 하는 기대감과 함께. 앞으로는 얼마나 만족지수에 추를 더해가면 살아갈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거꾸로 불만족에 추를 더하는 삶은 살지 않으리. 어떤 하루라도 보통과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의식에 얽매어 맞추려 하기보다는 오늘 나의 삶이 무엇과 비교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자유롭길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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