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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품 Aug 18. 2023

Everybody

23.08.17



요즘 <알쓸별잡>을 애정하며 시청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서도 천문학자인 심채경박사가 신선했었다. 눈매는 어디 가도 욕먹기 힘들게 선하고 특히나 웃을 때는 백미터달리기를 마친 사람도 보고 있으면 금세 진정될 것만 같이 따뜻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자기애가 참 무해스럽고 사랑스러운 게 아닌가. 매력적이었다. 




이번 시즌에서는 지난주에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이 출연해 출연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다. 출연진이 질문을 하고 놀란감독이 답하는 형식이었는데, 기억하는 심채경박사의 질문 중 하나의 요지는 이랬다. 영화를 통해 인간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고 싶은 것인지, 복잡성을 더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은 건지, 감독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 기억이 맞다면 이랬다. 내 기억이 좀 맞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나에겐 질문보다 이후가 더 중요하니까. 놀란감독은 답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물론 본인도 그렇다." 혹시 교만해 보일까 그랬을까. 본인도 완벽하지 않다는 덧붙임과 함께 가로저으며 겸연쩍은 표정이라고 나는 느꼈다. 물론 나도 놀란감독의 그 덧붙임이 없었어도 충분히 의도와 뜻에 동의했겠지만, 심채경박사는 놀란감독의 겸연쩍은 표정 뒤에 쏜살같이 그리고 그 선한 눈빛으로 말했다.

"Everybody~" 




모두가 그렇다고.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고. 나는 심채경박사를 통해 뱉어진 에브리바디와 동시에 자막이 둥글둥글한  굴림체가 되어 꿀렁꿀렁 살아 움직여 화면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쩜. 당신은 본인의 완벽하지 않음을 알고도 그럼에도 본인을 이미 매우 사랑하고 있었군요. 누구나 그러함으로 본인의 그것이 평범이며 별일 아님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군요. 그리고 나에게 메시지를 주는군요. (쓰다 보니 너무 덕질 같다.) 괜찮다, 어쨌거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안 괜찮구나 그 순간에는 알아졌고, 그렇게 자각하면 곧 매우 편했다. 그래서 내가 무결하지 않다는 데서 오는 불만족을 알아채려 오래전부터 연습 중이지만 그보다 더 오래 쌓아온 불만족하는 습관으로 이렇게 문득문득 자각하게 되는 순간은 고마울 뿐이다. 심채경박사의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고 있다. TV에서 보는 그녀 같은 책이다. 자꾸 프로필의 사진을 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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