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작아지기도 한다

/ 조금만 더 무해하게 살아보기 /

by 밀품


22.01.27


나는 음식 앞에서 손이 큰 편이었다. 많이 만들었다. 그렇게 뇌와 손이 세팅된 것처럼 뭘 만들어도 두 식구가 아니라 네 식구인 것처럼 만들었다. 나물을 무칠 때는 나물이 버무리는 손안에 들어오는 양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음식은 많이 해야 맛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먹다 남는 건 당연했고 남기지 않으려니 억지로 먹을 수밖에.




4년 전에 단식을 한 적이 있는데 보식을 하면서 아주 적은 양의 식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어림없는 양이었는데 반찬 서너 가지를 거의 한 젓가락씩 담아 먹은 정도였다. 같은 식사를 하지 않으려면 반찬을 정말 조금씩 해야 했다. 나물반찬 같으면 마치 엄지, 검지, 중지로 꼬집 꼬집하며 무쳐내는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적은 양으로도 음식을 할 수 있구나’ 그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호기롭게 많은 양의 음식재료를 준비하고는 만들다 지쳐서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한 기억이 수두룩하다. 어쨌든 이때 이후로는 차츰 음식을 조금씩 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장을 볼 때도 많이 살 필요가 없어졌다. 적게 만들어 빨리 먹고 새로운 음식을 또 만드니 만드는 재미, 먹는 재미를 더했다. 지금도 좋아하거나 다시 만들기 번거로운 음식은 많이 만들어 냉동보관을 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할 때도 있지만 최대한 그럴 때마다 머리를 털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내일은 또 내일 맛있게 먹을 것이 있다고. 그리고 한번씩 냉동실을 열어본다. 여유 있던 냉동실이 어느덧 소화불량 걸린 듯 보이면 아차 싶어 진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습관은 이렇게 채우는 방향으로 날 잠식한다. 어제 열어본 냉동실이 그랬다. 냉동실 다이어트를 할 때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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