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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아닌 것

by 밀품

24.12.15


나는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기질의 사람이다. 오래전에는 아주 당연히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해서 일상적으로 흔들렸다. "네가 이러는데 내가 이런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러면 '너 때문이잖아'가 당연해진다. 기질인지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는 건 글쎄, 기약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숫해 많이 연습했다.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렇다는 걸 바로 보는 연습. 나와의 비폭력대화와 비슷한 것도 같다. "저 사람이 이렇게 했을 때 내 마음이 이렇더라고" 영향을 받았다는 증명은 일의 가시적 결과일 수도 있지만 사실 직격타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다. 상당히는 기분이 나쁜 그런 감정. 너에게도 좋지 않고 나에게도 좋을 리 없는 그런 감정쓰레기말이다. 너 때문이야가 되는 순간 그 감정은 수습이 안된다.




내가 원인이 아니므로 무로 돌리기엔 이미 때를 놓쳤고, 나의 감정은 일어나길 당연하므로 계속해서 스스로 화를 합리화하는데 골똘하다 보면 뭐만 남을까. 그렇다. 깊이 파인 나쁜 감정의 골뿐이다. 감정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상대는 온데간데없고 나와 나빠진 감정만 남고 마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스스로 늪 한가운데 서서히 걸어 들어가면서 자각이 안된 채 그렇게 밖에서 건져 올려주길 기다렸는지 모른다. '나를 기분 좋게 해 줘' 누가 손 잡아 주기를. 그래서 내가 걸어 빠져나오기로 했다. 아니 늪으로 밀어 넣지 않기로 했다. 내 것이 아닌 걸 구분해냄으로 해서다.




유형의 것뿐 아니라 말도 내 것이 아닌 게 참 많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느끼는 어떤 것들이 그것이다. 그건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보며 드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말들이 내가 들어 좋거나 싫을 수는 있지만, 그 마음에 오래 머무를 일이 아니라는 것이 나를 구제하는 방편이라는 걸 오래 연습해 왔다.




어느 날 밥집의 손님이 그러셨다. 날 보며 내년의 목표가 생겼는데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손님에게 어떤 좋은 에너지가 되었구나'하는 실제에 앞서 듣는 순간 칭찬이라 해석해 버렸기에 늘 하던 버릇이 발동하려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렇지 않으니 손님의 말을 부정하고 싶기도, 의례적인 겸손이 발동하여 아니라는 손사래를 치려고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되돌아보면 정말로 이 반응은 상황에 맞지가 않는 게 더 여실해진다. 손님이 그런 목표가 생겼다는 본인이야기에 나는 동문서답이지 않는가. 사실 질문이 아니었으므로 이렇게 엉뚱한 반응이 있을까. 하지만 이날 다행히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이루는 숱한 경험과 이야기와 말, 행동, 생각들이 나를 만나 화학반응처럼 발현된 빛나는 생각과 마음들은 내가 어떤 불쏘시개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실은 내 것이 아니고 내 이야기도 아니다. 오롯이 그 누군가의 것이다. '내년에는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보겠다'는 손님의 목표이고 이야기인 것이다. 나와 무관한 손님의 것,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다만 그 순간 손님의 말은 나에게 닿아 나를 이루는 것들과 만나 어떤 작용으로 칭찬으로 들린 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단지 나의 감정임을 직시한다. '아침에 이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구나'

내 것과 상대의 것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인 상태에서 나는 바람 든 호객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왔다. 때론 좋아서 들뜨고 때론 싫어서 화가 나고.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다행히 삼켜버려 사그라든 말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별말씀을요"와 같이 손님의 말을 마치 내 것처럼 거절하거나 돌려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기분이 좋다는 '내 것'을 내보일 뿐이다.

“아침에 칭찬을 들으니 기분 좋아요”

그렇담 상대의 말도 마음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만 좋은 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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