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4
홍대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를 찾아 나가야 하는데, 2호선과 공항철도가 동시에 지나가고 그냥 홍대니만큼 출구도 많아 이정표를 유심히 따라가 본다. 저쪽이라고 나는 본 것 같아 따라가보는데 환승플랫폼이 나오고 이 길이 아닌듯한 느낌이 온다. 이쪽길이라고 봤는데... 의심하면서도 그렇게 쭉 막다른 길까지 걸어가 본다. 저 끝에 뭐가 있겠지 하며. 막상 다다른 길 끝에는 어떤 구멍도 없고 기다리던 이정표도 없이 1번 출구를 나가려면 돌아가라는 표지판만 우뚝 서있다. 나 같은 사람 또 있나 보다. 그렇게 뒤를 돌아보니 이런. 천정에서 떨어지는 이정표에 오던 방향에서는 출구표시가 없더니 되돌아가는 방향에는 출구표시가 있는 게 아닌가. 1번 출구와 화살표.
찾던 이정표를 보자마자 '뒤를 볼걸' 했다. 한치 머리 위도 모른 것.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300미터쯤 쓸데없는 걸음이 무슨 대수야' 했다. 뭐뭐 할걸... 이 정도면 이제는 웬만하고 괜찮다. '바보야'하며 내 머리통을 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일보전진한 나의 나에 대한 사랑표현인지 모른다. 뭘 그렇게 작은 실수와 헛수고도 큰 일 치르듯 몰아붙이고 실수하지 말기를, 쓸데없지 말기를, 허점 갖지 말기를, 바보 갖지 말기를 요구했는지 모르겠다. 나를 사랑하는 일보전진은 비단 내 안에서의 소리만이 아니라 타인의 소리에도 나를 영향받지 않는 사람으로 튼튼히 해주었다. 으이그, 뭐뭐 하지 그랬어, 괜한 짓 했다와 같은 나를 향해 혀차는 소리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평가도 물론 모든 상황에서 괜찮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괜찮다. '나는 괜찮은데' 그럼 남이 뭐라건 나는 이제 괜찮다.
별일이 일상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찰나들의 합이 오늘의 내 것임을 안다. 그 아주 소소한 일순간을 잡고 멈추지 않으면 당연해버린 생각과 말과 행동의 습관은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머무른다. 어떤 상황에서는 나를 스스로 야단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찰나찰나 어떤 나여도 상관없고 괜찮다는 것은 어떤 나이기를 원하는 그 참 콘크리트같이 두껍고 단단한 것을 깨부수는 것이므로 한 줄 글처럼 짧거나 간단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 방향으로 일보일보전진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갖게 되는 평화를 나는 지속해서 늘려나갈 작정을 오늘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