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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현 Apr 16. 2021

시간은 거꾸로 가지 않고

시간은 동화 속처럼 뒤엉켜 있단다,


꾸준히 몸무게를 체크해왔다. 2년 동안 몸무게가 5킬로 줄었다. 일부러 다이어트를 한 적이 두 번 정도 있었지만 그때 감량은 거의 못했었다. 애초에 내 몸무게는 보통이었다. 굳이 살을 뺄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는 더 예쁘고 멋진 몸매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고, 이십 대 내내 여자는 마르고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을 계속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바디 프로필을 찍고 싶거나 삐쩍 마른 몸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근육이 튼튼한 사람이 되려는 의욕도 없다. 지금의 몸무게를 보면 허탈하기도 하다.


식사량이 점점 줄어든다.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점점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허기질 만큼 배가 고플 때, 체력을 위해 할 일을 위해 챙겨 먹을 뿐이다. 먹는 즐거움이나 소소한 기쁨에 무뎌진 것도 같다. 사는 방식과 생활이 그대로 몸에 드러나는 것 같다. 운동도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별생각 없이 중도를 유지할 때, 너무 애를 썼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


아랫배가 당기는 느낌, 벨트를 매야만 하는 헐렁한 바지,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딱히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없어 집에 있는 것으로 때운다. 거울에 보이는 내 몸이 낯설기도 하다. 예전 같았으면 날씬하다고 기뻐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가는구나' 정도. 담담하다 못해 무심하게.



보이지 않는 건강이 걱정되기도 한다. 이러다 갑자기 어딘가 아프고 체력이 딸려 일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다시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시작했고 전후로 한 시간을 걷는다. 이틀 정도는 달리기를 한다. 몇 년 만에 수영 강습을 다녀온 날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을 고르는 데 한참 걸려서, 다른 사람들이 네 바퀴를 돌 동안 나는 두 바퀴밖에 돌 수 없었다. 몇 년 전 나는 맨 앞에서 가장 빠르게 수영하던 우등생이었으나, 지금은 영법만 대충 몸으로 기억할 뿐, 체력도 의욕도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50분 수영을 하고 이틀 동안 근육통에 시달렸다. 접영을 하면서 안 쓰던 어깨 아래 근육이 자극되어 계속 스트레칭을 해줘야만 했다. 결국 하루를 빼먹었고 더욱 몸이 늘어지면서 무기력이 왔다. 밖으로 나가 달렸다. 아무도 없는 밤의 홍제천을 왕복한다. 그때의 기분에 맞는 노래를 들으며 힘차게 달리기도 하고 천천히 달리기도 한다. 가로등 불빛이 물 위로 반짝이는 모습이나 고가도로 위로 달리는 차들의 흐름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건너편에서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스쳐가는 것을 곁눈질로 느끼며, 앞만 바라보며 달린다.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있었는지, 죽은 듯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한다.


시간.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야라고 나를 다그쳤던 적도 있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순간에 완벽하게 심취하고 싶어 시간이 흐르는 것을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김창완 선생님의 노랫말을 떠올린다.



'시간은 동화 속처럼 뒤엉켜 있단다,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 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있기도 한단다. 네가 머뭇거리면 시간도 멈추지. 후회할 때 시간은 거꾸로 가는 거야.' / 김창완, 시간



나는 그동안 후회할 일들을 시간에게 떠넘겼었고 소중한 것도 한순간일 뿐이라며 홀대했었다.

아마도 무서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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