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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Mar 09. 2020

두 번째 선물

나의 귀여운 채리 피커

 번째 선물        

 

1993년 7월 30일 예쁜 둘째 딸이 태어났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세 명의 간호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마친 아내를 온돌방에 눕혔다. 간호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 후 바쁘게 나갔다. 아내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수술한 곳이 아픈지 이따금 이마를 찡그리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몸에는 링거와 소변 주머니 같은 호스가 몇 개 달려 있었다. 첫아이 때 이미 겪은 일이지만 혼자 이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다른 간호사가 갓 태어난 우리 아기를 데려와 나에게 안겨 주었다. 방금 목욕을 시켰는지 아가는 몸이 발그스름했고 따뜻했고 조그맣고 귀여웠다. 그 작은 아이가 제 손가락을 입에 넣고 작은 소리를 내며 빨다가는 울고 또 빨다가는 울고 했다. 물끄러미 아기를 보고 있자니 잠시 나는 내가 처해 있는 심각한 상황을 잊은 채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경이롭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간호사는 두 시간마다 우유를 먹이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한다고 알려주고 다시 급히 나가 버렸다. 7월 한여름 뜨끈뜨끈 불을 지핀 산부인과 온돌방에 아내가 의식 없이 누워있고 갓 태어나 울고 있는 아기가 그 옆에 누워있었다. 


둘째 딸이 태어난 곳은 아내 친구의 남편이 대학병원을 나와 새로 개업한 조그만 산부인과였다. 아직 병원 운영이 여러모로 미흡하여 가족이 직접 산모와 아기를 돌봐야 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암 수술 후에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고 장모님은 피치 못하게 친구분들과 여행 중이셨다. 결국 내가 휴가를 내고 수술한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돌봐야 했다. 작은 병원에 웬 환자가 그리 많은지 그곳은 모든 의료진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의사와 간호사들로부터 그 흔한 ‘축하합니다. 예쁜 공주님입니다.’라는 인사말도 듣지 못하고 아내의 간호와 고단한 육아를 시작해야 했다. 


의식이 돌아온 아내는 아기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아내 옆에 눕혔다. 아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기를 보기 위해 몸을 아기 쪽으로 살짝 돌렸다. 이내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모든 고통을 다 가지고 간 모양이었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나도 따라서 웃음이 나왔다. 


아기가 울면 부지런히 우유를 타야 했다. 조심스레 아기를 안고 우유병을 입에 가져다 대면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아기가 힘껏 우유를 빨아먹곤 곧 잠이 들었다. 우유를 먹일 때 아기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젖꼭지를 빨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기의 눈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속삭여 주었다. 

“내가 네 아빠 란다. 네 엄마는 옆에 누워있구나, 너를 낳느라 수술을 해서 저렇게 힘없이 누워 있는 거란다…….”

옆에 누워 있던 아내는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수술을 해서 웃으면 배가 아프니 그만 좀 떠들라고 주의를 주었다. 


사실 거동이 어려워서 누워있는 아내를 돌보며 시간 맞춰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 나에게는 무척 고됐다. 밤에도 우유 먹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울어대고 기저귀가 축축하면 울어대고……. 어찌 갓 태어난 아이가 배고픔을 알고 엉덩이의 불편함을 아는지 모든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아내의 간호와 아이의 육아가 밤낮으로 이어지고 하루 이틀 지나자 수면 부족으로 몸도 지쳐가고 수염도 자라 몰골도 보기에 그리 좋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병원 밥을 매끼 먹는 것이 큰 고역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나흘째가 되던 날, 우유를 먹이고 입원실 방 문턱에 걸터앉아 병원 내부를 바라보며 잠시 쉬고 있는데 장모님이 들어오시는 것이 보였다. 


나는 너무 반가워 뛰어나가 “어머니, 오셨어요? 여행은 잘 다녀오셨고요?”라며 아내와 아기가 있는 방으로 안내를 했다. 장모님은 방으로 들어오셔서 누워있는 아내와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자네 정신이 있는 건가? 아이를 낳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문을 열어 놓았나?” 하시며 나를 몹시 꾸짖으셨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방 안의 분위기는 매우 어색해졌다. 무더운 한여름에 실내와 연결하는 방문을 열어 놓은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일단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누워있던 아내는 통증 때문에 다소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이 무더운 복날에 방문을 열어놓은 것이 무슨 대수냐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장모님은 딸의 항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며 방안의 아기용품들을 정리하시고 아기의 기저귀를 열어 살펴보신 후 기저귀를 가시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아내는 나에게 나가서 밥도 먹고 목욕도 좀 하고 오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장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왔다. 


8월 초 서울의 한낮 날씨는 매우 무더웠고 햇빛은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며칠 만에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하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그제야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게 좋았다. 병원 근처에 있던 사우나에 가서 샤워와 면도를 한 후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니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사우나를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눈에 띄는 일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여종업원이 가져다준 물 한 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메뉴를 살피다 우럭 매운탕을 주문했다. 느긋하게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장모님께 구박받은 생각이 떠올랐다. 동시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흘러내렸다. 종업원이 우럭 매운탕을 가지고 왔을 때 눈물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종업원은 내 앞에 음식을 놓고 조용히 카운터 쪽으로 갔다. 뚝배기 안에서 우럭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가끔 아내에게 이때 일을 이야기하면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엄마가 자기한테 미안하니까 괜히 트집 잡은 거지 뭐.”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는 장모님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개의 경우 산후조리는 친정에서 한다고 하던데 아내는 내 집이 편하고 좋다며 우리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했다. 나 역시 선영이를 돌보며 홀로 지내는 것보다 아내가 집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아내가 퇴원하고 며칠 후부터 아기에게 우유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자 집안에 활기가 돌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내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선영이도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반겨주는 엄마가 있어서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우리는 아기를 두고 둘러앉아 ‘까꿍, 까꿍’ 하며 즐겁게 지냈다. 


아기의 탄생으로 인해 아내는 두 달간의 출산휴가를 얻을 수 있었고 그동안 우리는 여느 가족 부럽지 않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늘 직장 일로 동동거리던 아내가 온전히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의 탄생은 그 존재만으로도 귀한 선물이지만 두 달이란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커다란 선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 순간이 아름다웠고 모든 일이 꿈과 같이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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