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남 Mar 03. 2020

못다 한 프러포즈 V

내 아내

못다  프러포즈 


Scene #5

아직도 햇살이 따가운 어느 가을날 마침내 여의도의 한 교회에서 우아하고 기품 있고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부와 결혼을 했다. 우리 결혼의 모든 과정은 너무 순조로웠다. 양쪽 모친 간에도 이견 조율이 잘되어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 특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녀를 너무 흡족해하셨다. 부친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의 며느리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결혼의 모든 준비과정을 스스로 다 했다는 만족감과 우리가 살 집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벅찬 기분, 그리고 신혼여행을 하고 온 후 소소한 살림살이를 사기 위해 함께 장을 보러 갔을 때의 행복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혼여행을 하고 오면서 우리는 처가에 들러 식구의 환대를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친가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드디어 우리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내 집에서의 첫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인 양 서로를 도와가며 짐도 정리하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평소처럼 이른 아침에 눈을 뜨니 내 옆에 아내가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믿기 어려웠지만 현실이었다. 나는 곤히 자는 아내에게 방해될까 봐 방에서 나와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 있었다. 아침을 지나 오전이라 할 만큼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내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몹시 허기가 몰려와 함께 밥을 짓자 하려고 방으로 들어가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던 아내는 시선을 나에게 주며 잘 잤느냐 물어보았다. 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몹시 피곤했을 텐데 잠은 잘 잤니?” 하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배가 몹시 고픈데 밥은 안 하냐?”라고 물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아내는 곧 침착하고 단호한 어조로 “앞으로 우리의 식사는 배고픈 사람이 알아서 해결하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녀의 너무 당당한 태도와 생각지 못한 제안 때문에 처음에는 좀 더듬거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억울하긴 해도 틀린 말도 아니라 말없이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갔다. 주방을 살펴보니 양가에서 싸준 음식이 있어서 양푼에 밥과 몇 종류의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볐다. 음식이 좀 볼품은 없어도 허기진 나에게는 꽤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식탁에 앉아 막 먹으려는데 아내가 나오면서 “뭐해?” 하며 숟가락을 들고 내 맞은편의 식탁에 앉았다. 유치하긴 하지만, 좀 얄밉기도 하고 장난기도 발동해서 비빔밥을 먹으려 시도하는 아내의 숟가락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이내 아내는 숟가락으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손가락을 양푼에 넣어 비빔밥을 먹었다. 그런 예기치 못한 상황 때문에 우리는 웃음보가 터졌고 금세 화해하고 내가 만든 비빔밥으로 사이좋게 우리 집에서의 첫날 아침 식사를 했다. 


훗날 두 딸에게 그날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약간의 과장을 더하여 이야기해주었더니 두 아이가 깔깔 웃어대며 몹시 즐거워했다. 종종 아이들은 그날의 이야기를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아내는 그때마다 유치하게 아직도 그 얘기를 하느냐고 혀를 끌끌 차며 싫어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놀리고 싶어 져서 더욱더 새로운 이야기인 양 즐겁게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은 힐금힐금 제 엄마 눈치를 보며 머리를 맞대고 킬킬 웃었다. 


이렇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도 아내와 결혼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 이러한 상상을 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결혼 전에 그녀를 만나면서 내 안에 존재하는 양면성 때문에 가끔은 힘들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그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감정과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녀가 나보다 더 나은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상충된 마음이었다. 


훗날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남자의 우유부단은 큰 죄악이라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못다 한 프러포즈 IV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