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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Aug 24. 2020

밍글라바! 미얀마에 둥지를 틀다

양곤 생활, 한 달간의 적응 훈련 소감

2017년 1월 16일 밤, 약 7시간의 비행 끝에 미얀마 양곤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헤어짐을 고할 때 앞으로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할 생각에 두려움이 들었다. 마치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는 것처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떠나야 함을 인지했다. 여전히 뭔가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것 같은 이 순간과 함께 나는 떠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의 힘으로 새로운 곳에서 연결을 만들어 가리라 다짐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인천 공항에서의 나.  내 손에 쥐어진 붉은 색  외교 관용 여권과 미얀마행 항공권


양곤 공항 입국 수속을 하는데 바로 옆 유리창 너머로, 마중 나온 사람들이 승객들이 나오길 목 빠지게 기다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저 속에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짐수레를 끌고 입국장을 나와 낯선 사람들로 둘러 싸인 길을 걷는데 드디어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관리요원 두 분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다. 사무소 차를 타고 바로 숙소로 향했는데, 다시 만난 미얀마의 밤공기가 잊히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나만 새로운 그 기분, 바람을 타고 온 꽃씨가 앞으로 뿌리를 내릴 땅을 만났다. 


인천에서 미얀마 양곤으로의 여정  


다음 날 오전, 코이카 사무소에서 28일간의 현지 훈련 시간표를 받았다. 예상한 대로 약 80%가 현지어 수업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미얀마 전통문화와 역사를 체험과 견학 활동이 있었다. 교육을 마칠 때에는 현지어 실력을 점검하는 시험을 본다. ‘테테(Htet Htet)’라는 한국어에 능통한 미얀마 분이 현지어 교사이자 현지 적응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으셨다. 일반 봉사단이 아닌 소규모로 모집하는 전문 봉사단인 나는 혼자 왔기 때문에 1 대 1 과외를 받게 되었다. 외로울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보다 집중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미얀마에 오기 전까지는 오로지 간접적인 정보에만 의지하며 불확실함과 함께 앞으로 나의 업무에 대한 예측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날 코이카 사무소 담당자님들과의 면담을 통해 드디어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미얀마 개발연구소 프로젝트에 대한 코이카의 입장을 제대로 듣게 된 것이다. 나의 주 역할은 코이카 소속 파견 인력으로, 코이카의 입장을 대변하며 현지 기관에 파견되어 다양한 이해관계 속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 KDI에 치우쳐 업무 고민을 하던 내게 보다 균형 잡힌 역할 기준이 생겼다. 


한편, 기다림 끝에 만난 두 분의 부소장님께서 앞으로 나의 활동에 대한 두 가지 옵션을 제안했다. 하나는 기존의 미얀마 개발연구소 사업에의 참여이고, 다른 하다는 새마을사업 효과성 조사 연구 사업에의 참여다. 두 분께서는 내게 각 분야의 중요성과 의의를 경쟁적으로 소개해 주셨다. 미얀마개발연구소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개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며 프로젝트 개발자의 경력의 기초를 쌓아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업이 초기 단계라 업무 환경에서 실망을 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이 점은 나도 예상하는 바였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른 옵션의 장점은 코이카 최초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사업 효과성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현장 조사원이자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활동에 대한 큰 열의는 없었지만 석사생으로서 연구역량을 쌓아야 할 필요성은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파견될 기관과 업무를 생각하며 지원했고, 주어진 일들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내게 ‘이것도 해도 좋고, 저것도 해도 좋다.’는 자유를 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기존에 파견되기로 한 곳에 내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내가 이 곳에 와 있는 정당성을 흔들었다. 그렇다면 MDI 사업에 대해 코이카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주관과 의지가 무엇인가?라는 자문이 일었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아무리 파견 후 자잘한 업무를 맡을 지라도 나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답은 당분간 열어 두고, 하루하루 주어진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최대한 정보를 발견하면서 결정의 확신을 기다리기로 했다. 




2017년 2월 13일. 28일간의 현지 적응 훈련을 마무리하며 코이카 식구들에게 훈련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OJT를 다녀오자마자 마지막 현지어 테스트 준비, OJT보고서 및 현지 적응훈련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신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는 한계를 느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보고서에 더불어 영상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마지막 작업으로 진행키로 했다. 하지만 곧 할 일들에 대한 부담감에 압도되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수 없이 들었다. 대충 작성하고 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동안 배운 감동만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이끌었다. 또한 나의 가능성과 활동 계획에 대해 제대로 된 인상을 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수료식이라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한 번에 하나씩 완수해 나갔다. 완벽보다는 최선을 추구하자는 원칙을 세우자 작업이 훨씬 쉬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내 손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쥐어졌다. 


사무실에 도착해 먼저 다 같이 점심 식사 후 1시 반부터 수료식이 시작됐는데 회의실은 소장님, 부소장님, 봉사단 관리요원, 인턴들을 비롯해 소장님의 명령으로 현지 직원들까지 참석해서 북적거렸다. 나를 위한 수료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니,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제일 먼저 지난 며칠간 준비한 미얀마어 소감 발표를 했다. 작문을 쉽게 하기 위해 문장도 단순하게 적으려 노력했고, 교육의 성과를 공유하는 내용 위주로 작성했다. 하루에 7-8 문장씩 선생님이랑 같이 작문을 했는데, 그동안 배운 단어, 문법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기회였다. 주어진 문장을 외우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의 의미를 현지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 언어로 체화가 되는 것 같다. 매일 미얀마어로 일기를 쓰는 선배 단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도 미얀마어 작문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현지 직원들이 보고 있어서인지 더 신이 났다. 내가 전하는 뜻이 그들의 마음에 닿길 바랬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지난밤 고생해서 만든 영상을 상영했다. 내가 국내 교육 때 어떻게 활동했는지, 지금 여기서의 훈련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얼마나 그 모든 과정들을 즐겼는지 표현한 결과물이었다. 아래는 내가 직접 미얀마어로 발표한  현지적응교육 수료 소감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제개발 봉사단원, 한국 이름은 허은희, 미얀마 이름은 띠다 우입니다.

코이카 미얀마 사무소 가족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2017년 1월 16일 양곤에 도착했습니다. 

국내 교육을 마치고, 미얀마에 오기 위해 45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보다 이곳에서 미얀마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미얀마에서 잘 지내고, 미얀마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모든 미얀마 음식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달 동안의 현지 훈련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테테 선생님이 미얀마와 저를 이어 주는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유숙 소를 방문하는 봉사단원들에게 정보도 많이 얻었습니다.


이제 미얀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혼자 미얀마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택시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가격을 깎을 수 있습니다. 

혼자 은행에 갈 수 있습니다. 

저에 대해 미얀마어로 소개할 수 있습니다. 

제 기분을 미얀마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미얀마어를 읽고 쓸 수 있습니다. 

앞으로 네피도에 가서도 미얀마어를 계속 공부하고, 

미얀마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미얀마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활동 계획에 대한 발표 시간이 왔다. 국내 교육 이후로 오랜만의 발표라 약간 긴장도 됐지만, 전하고 싶은 바를 다 표현한 것 같다. 1년을 내 주체의식 없이 상황에 모두 맡긴 채 끌려가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를 보이고 싶었다. 솔직히 나를 처음 만나는 코이카 사무소에서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A4용지 10분의 1도 안 되는 페이지다. 거기에는 나의 사진, 파견 분야, 파견 기간, 대학 및 전공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를 알려야 할 책임감이 있는 것이다.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소장님의 조언 및 말씀이 있었다. 소장님께서는 내게  “허은희가 적기에 파견된 것 같다. MDI 사업은 코이카에서 가장 큰 사업 중 하나이지만 제일 진행이 더딘 사업이기도 하다. 네피도 현지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사무소에 나와서 그동안 MDI 사업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담당 부소장을 적극 돕는 역할을 하라.” 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수료식 당일 내 모습



모두들 내가 올 시기가 아니라고 했다. 나도 덩달아 그렇게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기의 적절함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이날 깨달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와 맞추는 게 필요한 듯하다. 활동 영상 마지막에서 내가 부른 미얀마 가수 니니 킨저(Ni Ni Khin Zaw)의 '소망 하나(묘린쳇뗏)'라는 노래 가사 소절이 그 뒤로 계속 입가에 아른거린다. 그 의미가 내현재와 앞으로의 상황에 꼭 와 닿기 때문이다.


‘몇 번을 지더라도, 믿음을 잃지 마세요. 

위험이 가득하고 가시밭길이라도, 

매 순간 힘들고 마음이 무너져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인생을 포기하지 마세요.’ 


이 메시지를 이곳이 있는 일 년 내내,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품고 살아가고 싶다.


현지 적응교육 수료 기념으로 당시 만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X2JMGx7-ck

    

내가 제일 처음 배웠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미얀마 노래.
니니 킨저(Ni Ni Khin Zaw)의 '소망 하나(묘린쳇뗏)'

https://www.youtube.com/watch?v=1Eg1uakhe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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