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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Aug 24. 2020

내 삶에 '미얀마'라는 타이틀을 단 순간

해외봉사단 국내 교육 우수 수료,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2016년 11월 18일, 봉사단 국내 교육 수료와 동시에 2주 후면 나는 미얀마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나중에 파견시기 지연으로 45일을 추가로 대기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교육원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 교육생들은 밤에 촛불을 켜고 모여 앉아 6개월 이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며 파견 전 다짐의 시간을 가졌다. 


6개월 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의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내 영혼은 하나이기에, 분명 이 깨어 있는 감각은 미래를 현재로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미래에 있을 나, 아니 ‘그 친구’에게 내가 과거에서부터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만약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게 있다면 곧 지나갈 거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가뜩이나 스스로에 대한 부담으로 살아가는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나를 편하게 해 주고, 잠시 잊어버린 목표를 상기시켜 주기 위해 몇 가지 약속을 하자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첫째, 스스로에게 요구 자제 하기. 

둘째, 나와 남을 미워하지 않기. 

셋째, 세계일주에 꼭 도전하기. 

넷째,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구분하기. 

마지막 다섯째는, 나와 데이트 자주 하기. 


내게 있어 봉사란, 밖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갈망을 내면으로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 자신을 편안하고 기쁘고 해 줄 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 미래의 은희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발단식 전 날 나에게 편지 쓰기. 이 편지는 6개월 후 미얀마에 도착해 힘들어 하던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교육원 입소 초반에 새마을 봉사단으로 나보다 먼저 미얀마로 떠난 한 지인이 발단식 날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도대체 뭘지, 과연 나는 울 것인지 궁금해하던 때가 4주 전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발단식 당일 가슴 벅찬 울음을 경험했다. 바로 우수 교육생 상장을 받으면 서다. 


나는 입소 당일부터 우수단원 표창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평가 점수와 동기들의 투표를 통해 1인을 선발하여 이사장님의 이름으로 상이 주어진다고 했다. 이왕 할 거면 더 열심히 해서 우수상까지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활동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동기부여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그 상장의 존재를 잊고 지내게 됐다. 나와 치열하게 갈등하고 타협하느라 정신 없던 걸로 기억한다.  오전 11시, 발단식이 시작되었고, 우수단원 표창의 순간이 왔다. 저 닫힌 상장 안에는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을까? 정말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이럴 때 쓰는 표현 같았다. 

“우수 단원은…” 이후의 정적 뒤에 “미얀마 연방의…”

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 내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미얀마 연방’이라는 이름을 앞에 단 사람은 나 빼고 우리 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수단원 상장을 받던 순간의 내 모습


나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이처럼 행복했던 순간은 최근에 없었다. 놀라서 앞으로 나가며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리허설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 신선하기만 했다. 부원장님 앞에 섰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나를 울린 그것이 무엇일지 알고 싶어서 순간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했다. 분명 행복의 눈물이었다. 


한꺼번에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찾아 왔는데, 제일 먼저 느낀 건 '감사함'이었다. 예상치 못한 지목과 칭찬으로 행복감을 안겨준 이 순간에 감사함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상을 받았는지 생각했을 때 미안함이 들었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가졌던 열등감에 집중하느라 무시했던 나의 노력들이 생각이 났다. 나는 누구보다 프로그램에 열심히 또 성실히 참여했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최고의 상을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인식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나름대로 잘하고 있었는데, 나 스스로 만족 못하고 비판했던 거였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나를 생각하며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묵묵하게 내 길을 가준 내게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느낀 감정은 '희망'이었다. 밖으로부터 받은 칭찬은 내 삶에 숨겨진 내 평생의 사명을 발견해 갈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다 주었다. 비록 막막하고 보이진 않아 답답하지만, 그 길목마다 늘 안내표지판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얼마 전 대학원 수료식에서 받은 교내봉사 표창장과 함께 내가 받은 칭찬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음을 자각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줌으로써 더 꿈에 대한 희망을 지속시켜 주는 것, 이것이 내 봉사 철학의 한 기둥으로 세워졌다. 이날을 계기로 나는 누군가가 삶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느라 보지 못하는 행복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갈 것이라 다짐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나를 포함한 17명의 동기들이 모두 수료를 마쳤다. 그 중 나는 막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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