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두달홍천살이 Aug 23. 2020

코이카(KOICA) 봉사단으로 미얀마에 가게 되다!

대학 4년생의 좌절과 개발협력 석사 과정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결실 

내가 코이카 봉사단으로 1년 동안 미얀마에 가게 됐다고? 


때는 대학 4학년 말, 미국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2015년 2월이었다. 6개월 동안의 해외 생활(당시만 해도 최장기 해외생활 경험이었다)은 내 가슴에 부푼 꿈과 함께 부담을 주었다. 마지막 9학기를 등록하고 1개의 수업을 수강하며 남는 시간 동안 졸업 후 진로를 준비했다. 한국 국제협력단(코이카) 해외사무소 인턴십 (영 프로페셔널) 직종에 야심 차게 지원했는데 면접까지 보고 탈락을 했다. 당시 나에게 친숙했던 세 동남아 국가인 미얀마, 베트남, 네팔을 1,2,3순위로 지원했는데 솔직히 나 정도의 열정과 경험이라면 바로 붙을 줄 알았다. 확신과 기대가 컸던 만큼 불합격에 대한 상실감이 오래갔다. 마치 실연을 당한 것처럼 상실감과 억울함으로 매일 눈물을 흘렸다. 남들은 돼서 가는데 나는 왜 한 번에 안 되는 거냐고. 눈물이 다 마르고 깨달았다. 내가 너무 쉽게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만을 바랬다고. 지금은 때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음 계획을 실행했다. 

2015년, 전 세계에서 온 나의 대학원 친구들과 함께 했던 채육대회 날 행복한 내 모습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지속가능 개발’이라는 키워드로 국내에 대학원을 검색했는데 ‘KDI School이라는 곳이 나왔다. ‘개발정책’과 ‘공공정책’ 석 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개발정책 과정 내에 ‘지속가능 개발’ 이 세부 전공으로 있었다. 공공연구소 소속 교육기관으로 서울에 있다가 최근 세종시로 캠퍼스를 옮겼는데,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며 국제개발에 관한 다양한 수업들이 개설되어 있는 게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로 가득 차 해외에서 유학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 같았다. 마침 지원 기간이라 성심 성의껏 지원서를 준비했고, 면접을 거쳐 합격을 하게 되었다. 2015년 9월, 나는 나에게는 과분하게 느껴졌던 대학원의 ‘개발정책 과정’ 석사생이 되어 미얀마를 만날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첫 직장이자 제2의 모국이 미얀마가 될 줄 몰랐다. 


2016년 여름 대학원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개발도상국에서 온 여러 국제학생들과 함께 영어로 수업을 듣고, 다양한 교내 행사에 참여하면서 국제무대로 나갈 역량을 천천히 쌓아 나갔다. 국제 기숙사 관리 조교 대표도 맡고 있었다. 내 가슴속에는 해외 파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찾고 있었다. 당시 대학원에서 나 보다 한 기수 늦게 입학한 한 언니가 미얀마 왕 팬이었는데 이미 미얀마 해외 봉사도 경험하고 코이카 새마을봉사단에 합격하여 훈련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까 곧 국제개발 전문 봉사단 공모가 있을 거라 귀띔도 해 주고 자신 없다는 내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격려를 해 주었다. 해당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원할 수 있는 수요 요청서 리스트를 쭉 훑어보았는데 ‘석사과정 이상’, ‘경제학 전공’에 ‘무경력’ 조건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딱 한 곳 있었는데, 거기가 바로 미얀마였다! 


KDI는 전 세계와 네트워크를 갖고 개발 지식을 공유하는 연구소이며, KDI국제정책대학원을 부설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파견될 기관은 미얀마 개발연구원(MDI)이라는 곳이었는데, MDI는 Myanmar Development Institute의 약자로 경제, 사회과학, 공공행정 분야에서 정책을 연구하고, 연구원의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미얀마 발전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KOICA의 무상원조 사업으로 2012년부터 설립되고 있는 단계였다. 전쟁 후 한국의 경제 개발을 이끈 전문가들의 싱크탱크였던 한국 개발연구원(KDI)을 벤치마킹한 사업으로, KDI가 직접 기술 및 경험 전수를 하고 있었다. 훗날 MDI 설립 후 1기 연구원이 될 12명의 KOICA-MDI 장학생 친구들과 같은 시기 입학하여 함께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내게는 친숙한 기관이었다. 조건적으로 봤을 때 내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대학원에서는 시험 기간이 한창이었는데도 나는 주말 내내 꼬박 이틀을 매진하여 주어진 자기소개 질문들을 내 이야기로 채워갔다. 


감사하게도 7월 25일 오후 2시에 1차 합격 소식을 받았고, 7월 30일 대학원 수료식 바로 다음 날 면접을 보러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KOICA글로벌인재교육원으로 향했다. 1시간 동안 해외봉사단 적합도 조사(설문 형식)에 응시하고, 영어 면접과 일반 면접을 봤다. 얼마 후, 면접에서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 예! 신체검사를 마친 후에 최종 선발 결과가 떴다. 내 가슴은 이미 감격과 설렘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미얀마야, 내가 널 만나러 간다.  


2016년 7월 29일 대학원 수료식을 마친 다음 날 봉사단 면접을 봤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사진 속 나는 친구들과 함께 내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말 행복했


이전 01화 [강원도 소녀와 미얀마의 첫사랑]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