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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Aug 27. 2020

미얀마 민주주의 정치 과도기 속, 나의 운명은...?

2015년 미얀마를 뒤바꾼 민주주의 총선 & 미얀마개발연구원(MDI)은?

기존 단원 수요 요청서에 따르면, MDI(미얀마개발연구원) 임시 사무소에 파견되어 현지 연구원들의 연구 활동을 돕는 게 나의 본 업무다. 그러나 현재 아직 연구소 조직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사무소에서는 MDI가 조직을 갖추고 정식 개소할 때까지 내게 코이카 사무소에서 대기 근무를 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MDI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겠다.)


덕분에, 나는 약 2개월간 코이카 미얀마 사무소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에서도 한 달 보름을 대기하다 왔는데 여기서도 더 기다려야 한다고? 처음에는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기회라 생각하기로 했다. 봉사단원이 코이카 사무소에서 출근하는 건 흔하지 않다. 


본래 양곤에서 1,2개월의 현지 적응교육을 마친 봉사단은 바로 자신이 활동할 현지 기관이 있는 임지로 나가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교육 기간에는 코이카가 양곤에 운영하는 ‘유숙소(신규 파견 봉사단의 적응 활동을 위한 둥지, 지방 활동 단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에서 지내고, 이후에는 자신만의 독립된 주거공간을 임대해 그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나는 유숙소에 머물며 지방에서 오고 가는 선배 단원들을 만나며 미얀마 생활에 대한 유용한 팁을 얻는 특혜도 누렸다. 


소장님은 나를 MDI와 코이카 사무소 사이 경색된 관계를 개선하고 사업이 진행되는데 필요한 원활한 정보 공유 및 각종 업무 지원 임무를 맡기셨다. 나는 MDI 시작부터 현재, 그리고 향후 계획에 대해 공부하며 스스로를 ‘MDI의, MDI에 의한, MDI를 위한’ 사람으로 무장시켜 나갔다. MDI사업을 맡고 계신 ‘ㅈ’ 부소장님은 코이카의 원칙상 모든 일들을 절차에 따라 공문서로 남겨야 향후 국회 감사를 받는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맡은 임무는 3주간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와 공문서 및 국내외 언론 보도기사를 모두 모아 연도별 파일을 제작하는 거였다. 봉사단으로서 현지에 파견되어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내 앞에 새로운 차원의 정보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 검색으로만 얻은 제한적 자료를 보며 쌓아 온 사업에 대한 ‘호기심’을 하나씩 해소해 나갈 수 있었다. MDI 설립 사업의 개발 과정, 구체적인 시행 계획, 한국과 미얀마 측의 업무 분담, 사업 용역의 구체적인 범위 등 모든 세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던 코이카 미얀마 사무소의 책상 
3주간 내가 만든, MDI만을 위한 역사책!  (뿌듯) 




계획대로라면 현재까지 완료되었어야 할 일들이 수두룩한데 미얀마 측에서는 그리 협조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음을 인지했다. 그 이유는 내가 파견된 시점에 미얀마가 겪은 큰 정치적 변화 때문이다. 


미얀마는 2010년 11월 7일 역사상 첫 민주주의 총선 이후 2015년 11월 8일 제2차 총선을 치렀다.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딸이자, 미얀마 민주주의 지도자인 아웅 산 수치(Aung San Suu Kyi) 여사가 이끄는 (NDL,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정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국민들의 지속적인 민주주의 운동 및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적 조치로 군부 권력체제 유지에 위협을 겪은 군부는 해결책으로 2008년 신(新) 헌법을 발표하고 수십 년간 사라졌던 대통령제도를 부활시킨다. 그리고 통합 단결 발전당(USDP, 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이라는 군부 인사 중심의 정당을 설립해 군부 출신 인사인 테인 세인을 후보로 내보내 압도적인 투표율(총선서 USDP 정당이 330개 선거구의 상〮하원〮지역 의회 의원 등 총 1천154개 좌석 중 76.5% 의석률 확보)로 당선시킨다. 


2008년 헌법에 따르면, 미얀마 대통령제도 선출은 간접선거 방식으로, 총선 이후 상원, 하원, 군부 의원이 각각 1명씩 대통령 후보를 선택한 뒤 의회 멤버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 2명의 후보는 자동으로 부통령직에 임명된다. 어찌 됐든 군부는 무조건 정치에 진출하는 구조다. 또한 2008년 헌법은 미얀마 내무부, 국경부, 국방부 장관 임명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내외 안보와 경찰력을 포함한 치안에 관한 부처는 아직도 군부의 영향력 하에 있다. 휴,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마음이 먹먹해 진다. 


2010년  미얀마 총선 결과 관련 정보 

https://www.yna.co.kr/view/AKR20101118053600076



당시 처음으로 NLD를 포함한 40여 개의 정당이 최초로 선거관리위원회의 정당 인정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아웅 산 수치 등 야당 주요 인사들의 출마를 원천 봉쇄하는 등 선거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국내 및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문제제기에도 아랑곳 않고, 테인 세인 대통령은 이후 5년간 군부와 민족주의적 불교단체를 주요 지지자로 등에 업고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문호를 개방하고 시장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사회주의 체제라는 미얀마의 타이틀을 벗기 위해 노력한다. 그동안 50여 년간 미얀마 국민들의 삶을 통제해 온 군부가 아닌, 국민이 직접 참여한 선거를 통해 최초로 민간 정당이 정부를 이끌어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2015년 총선은 미얀마 민주주의의 진정한 시작을 의미했다. 지난 1990년 총선에서 이겼으나 군부의 선거 결과 불복으로 물러나야 했던 NLD와 수치 여사로서는 25년 만에 승리를 되찾는 셈이다. 소수민족을 포함한 미얀마 전체는 독재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흥분에 젖었다. 당시 나는 대학원에 있었는데, 미얀마 친구들이 무척이나 행복해했던 걸로 기억한다. 


NLD 정당 깃발을 흔들며 아웅 산 수치 정당의 총선 승리에 열광하는 미얀마 국민들 
2015년 미얀마 총선 결과. 2008년 헌법은 미얀마 군부의 25% 의석 차지를 자동으로 보장하고 있어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주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015년  미얀마 총선 결과 관련 정보 

https://www.yna.co.kr/view/AKR20151113118052009


2015년 미얀마 총선 결과가 끼칠 변화 

http://www.ovice.or.kr/viewDtlForConTtlTch.do;jsessionid=C6A4397D4C15F3491138F1E11B541F4F?pMetaCode=OVKC16000135


2020년 11월 8일 시행될 세 번째 미얀마 총선 관련 정보 

https://www.yna.co.kr/view/AKR20200702084500076





2017년 중순 만들어진 미얀마개발연구원  공식 로고 


내가 파견될 미얀마 개발연구원(MDI, Myanmar Development Institute)은 2012년 당시 한국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미얀마 테인 세인 전 대통령 사이 정상회담 때  새마을농촌개발 및 무역진흥원 설립 사업과 함께 약속된 사업으로, 사전 타당성 조사 및 지식공유 표제 사업을 거쳐 2014년 공식 착수된 무상원조 사업이다. 외교부 산하 한국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맡아 운영 및 관리하고 있다. 


 ‘미얀마식 한국개발연구원(KDI, Korea Development Institute) 설립'을 목표로 2019년까지 2천만 불(약 237억 원)을 투자하여 MDI 마스터플랜 수립, 본원 건축 및 기자재 제공, 공동연구 및 현지 공무원 및 연구원 역량 강화가 사업의 주요 골자다. 1971년 USAID의 지원 및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로 설립되어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등 한국경제 근대화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바가 있는 KDI가 직접 사업을 진행하는 용역을 맡았다. 테인 세인 대통령의 한국식 경제 개발 모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열정이 MDI의 설립 추진의 주요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 탄생 이후 모든 상황이 뒤 바뀌어 버렸다. 


2012년 한국에서 열린 한국-미얀마 정상회담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319457

 2014년 12월 2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개최된 MDI 설립 착수 포럼 

https://www.yna.co.kr/view/AKR20141202150800371?input=1195m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294


2016년 4월 공식적인 대통령 취임식 이후 약 7개월간 아무 진척 없이 사업이 정체되었고, MDI 현지 담당 부서가 교육부에서 기획재정부로 바뀌는 등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새로 바뀐 정부 관계자에게 MDI 사업의 필요성과 내용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내가 현지 교육을 마쳤을 2월 중순경에서야 마침내 미얀마 신정부의 새로운 MDI 운영 임원 및 위원회가 공식 승인되어 사업이 다시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아무리 우리 측이 주는 입장이라도, 공동 프로젝트로서 파트너십을 맺은 이상 상대측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반응과 결과가 오지 않으니 힘이 빠질 법도 하다. 결국 이 사업은 미얀마의 발전을 위해 해 주는 것인데 말이다. 원조를 받는 국가의 정치적 안정성이 사업의 지속가능성과 효과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교훈을 제대로 얻었다. 


세계의 빈곤 종식 및  범분야의 개발을 위해 전 인류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달성해야 할, 17개의  지속가능 개발목표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86%8D%EA%B0%80%EB%8A%A5_%EA%B0%9C%EB%B0%9C_%EB%AA%A9%ED%91%9C


정부와 민간영역이 협력하여 국가의 경제사회의 개발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MDI 설립 원조 사업은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SDGs)의 17번째 목표인 ‘목표를 위한 동반자 관계 구축 (Partnership for Goals)’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MDI 사업은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처럼 미얀마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 기여 방법은 미얀마를 직접 운영하고 관리하는 정책 결정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을 자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는 미얀마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자유를 누리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MDI의 원조 효과는 바로 볼 수는 없는 장기적인 마라톤임을 인지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내가 떠난 뒤로 MDI는 보다 자리를 잡아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 및 공무원 대상 정책개발 역량강화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연구원들도 훨씬 많아졌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네피도에서 연구원 건물이 착공되고 있다.) 


2019년 1월 24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MDI 착공식 

https://www.yna.co.kr/view/AKR20190124176200503?input=1195m


MDI에 대한 더 많은 정보 (공식 홈페이지 & SNS) 

http://www.mdi.org.mm/


https://www.facebook.com/mdimyanmar/





어떻게든 프로젝트 참가자로서 이 힘든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나 혼자 머리를 쥐어 싸맸다. 

‘만약 사업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침울해졌다. 나는 평소 내가 계획하거나 예상했던 대로 일이 되거나 상황이 따라 주지 않으면 불안하고 답답해하는 성질이 있음을 이곳에 와서 새삼 다시 깨달았다. 생각의 전환을 했다. 사업이 잘 되고 안 되고가 내 행복을 결정하는 걸까? 아니다. 난 이 사업을 만나게 됐고, 봉사자로서 능력껏, 자발적으로 과정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나의 운명을 걸진 말자고 다짐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하며 아이처럼 아침마다 해맑게 인사라는 내게 소장님은


 “너는 왜 맨날 그렇게 생글생글 웃냐? 그렇게 웃으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잖아. 앞으로 활동하는 1년간 꼭 계속 그렇게 웃고 다녀야 한다.” 


하셨다. 그 말을 듣는 내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칭찬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나의 에너지를 믿고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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