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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Aug 27. 2020

미얀마 입성 2개월, 미얀마어 인증시험에 도전하다

미얀마어 공부 동기부여에 정말 좋더라고요!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양곤 시내에서 나의 첫 미얀마어 시험(Myanmar Language Test, MLT)을 치렀다. 1달간의 1 대 1 현지 적응 교육 후 보름 만이었다. 내 생에 있어 제3의 언어로 미얀마 어를 배울 거라는 상상을 하지도 못했는데 공식 시험까지 보다니. 대학시절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도 시험 한 번 치르지 못했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게 즉각 행동으로 이루어졌다. 


접수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시험 접수를 했다. 선배 단원들을 통해 시험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내가 당장 시험을 치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시험 본다는 단원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실력을 시험으로 점검하고, 또 문서로도 기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요일에 카페에 앉아 MLT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보를 알아봤는데 다양한 시험 단계별로 필요한 수준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MB, M1, M2, M3 이렇게 네 단계의 시험이 있는데, 초보자인 나에게 알파벳을 포함한 기본 2-300 단어들 정도를 요구하는 MB(기초 단계)이 도전해 볼 만했다. 시험에 떨어지든 붙든 간에 미얀마어 공식 시험을 체험해 본다는데 시험비용 15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이트에서 제공해 주는 단어장을 시험 전까지 3회 정도 훑어봤다. 일요일 시험 전 날 유숙소를 방문한 지방 단원들을 보며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봤다. 온 지 2개월도 안 된 내가 시험을 치른다는 이야기를 듣자 모두 놀라는 것 같았다. 


시험 당일 다운타운에 있는 시험장을 찾아갔다.  MLT 사무소이자 시험장은 시내의 한 건물 꼭대기 층에 위치했는데,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사무소 같았다. 



MLT는 일본인들이 만든 시험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응시자는 일본인들이었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는 듯했다. 미얀마에서 일하면서 현지어까지 열심히 배우려는 이들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


시험 전 책상 위 놓인 답안지 

생각보다 체계적인 시험 문제에 놀랐다. 

듣기 30분/ 독해 55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험 유형들은 마치 토익시험을 연상케 하며 다양한 관점의 실력을 평가하고 있었다. 


듣기: 설명에 어울리는 그림 고르기/ 그림 보고 맞는 단어 고르기/ 화자의 말에 어울리는 답변 고르기/ 발음 소리에 맞는 단어 고르기/ 단어 보고 맞는 소리 고르기 

독해: 알파벳 및 주요 단어 세트 채우기/ 동일한 발음 찾기/ 단어-사진 (사진-단어) 매칭/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단어 찾기/ 반대어/ 단어(문장) 채우기 


새로운 언어의 시험문제에 나의 두뇌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귀도 쫑긋 세우고, 눈은 더 반짝였다. 시험 결과에 대한 걱정 하나 없이 순수하게 ‘시도한다’는 마음으로 시험을 보니까 집중도 더 잘 되고 즐겁게 배우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월 13일, 2주 만에 메일이 왔다. 결과는 평균 85%의 득점률로 합격! 너무 감격스러웠다. 9월 28일 앞으로 다가올 다음 시험에도 도전할 거다. 



내가 처음 취득한 미얀마어 능력시험 합격증! 
합경 통보 메일 

다른 단원들에게 전해 들을 때는 마치 일본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시험을 개발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험 창업자를 만나 이야기를 한 뒤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들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기꺼이 하고 있었다. '토모히로 아마우라'라는 시험관리자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MLT의 탄생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었다. MLT는 본래 미얀마어 원어민 교사를 미얀마의 외국인들에게 중개해 주는 사업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다 시험에 대한 외국인들의 수요를 발견해 시험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쿄 외국어 대학교수의 자문으로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창업 초기 단계이고 규모도 작기 때문에 시험 문제를 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다음 시험은 9월이라고 한다.  


내 또래로 보이는 그는 젊은 나이에 창업에 대한 도전 정신이 강해 보였다. 앞으로 미얀마가 세계에 존재를 알릴 때 공식 언어 시험이 반드시 필요할 거다. 이렇게 시장의 욕구를 발견해, 그것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며 탄탄하게 초기 단계를 갖춘 이들이 곧 정부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한국어 공인시험이 처음 생겨났을 때도 이렇게 작은 곳에서 시작했겠지 싶었다. 나도 미얀마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당장 시작하긴 어려운 것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개척자의 길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나는 9월 28일 M1 레벨을 취득하고,  2018년에 미얀마에 다시 파견되어 시험을 두 번 더 치르고 M2 레벨을 취득한다.) 


MLT 공식 홈페이지: http://www.mlt-myanm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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