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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열렬한 사랑을 할 수는 없을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건 로맨틱한 일입니다. 누구나 첫눈에 반해 앞뒤 가리지 않는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꿈꾸죠.


동시에 우리 모두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연인을 구속하고 소유하려는 집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집착은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할수록 그 사람을 내 곁에만 두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랑은 바람직하고 집착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더 사랑할수록 더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사랑의 딜레마, 이 지독한 딜레마는 우리에게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킵니다.


과연 우리는 사랑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그런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집착은 사랑에 빠진 이가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일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찾은 '집착하지 않는 사랑의 기술'에 대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사랑에 관한 치명적인 오해 3가지




집착하지 않는 사랑의 기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먼저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에 관한 오해를 3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독일어: Erich Seligmann Fromm, 1900년 3월 23일 ~ 1980년 3월 18일)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프롬이 말하는 사랑에 관한 첫 번째 오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프롬은 사람들의 사랑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질까?"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하는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주)문예출판사, 2022 p.14



이렇게 사랑을 철저히 '받는' 문제로 여길수록 자신이 더 좋은 조건을 갖추면 사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실 오늘날 연애 문제에 있어 널리 퍼져있는 사고방식이기도 한데요.


이 시대의 사랑 공식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돈을 모으고, 외모를 가꾸는 것으로 축약됩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죠.


다음으로 프롬이 말하는 두 번째 사랑에 관한 오해는 사랑의 제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라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주)문예출판사, 2022 p.14



"연애는 하고 싶지만 연애할 사람이 없다"라는 말은 연애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운명적인 사랑이나 첫눈에 반하는 만남을 기대하는 것은 사랑을 '대상을 찾는 문제'로 여길 때 갖는 생각이죠.


마지막, 프롬이 말하는 사랑과 관한 세 번째 오해는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과정을 동일시한다는 것입니다.



(...)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 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주)문예출판사, 2022 p.17



많은 커플들이 자신의 연인이 처음과 같지 않아서 고민하거나 또 자신의 마음이 변할까 봐 고민합니다.


이 고민은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의 마음과 사랑을 유지하는 단계의 마음이 다르지 않으며, 비슷한 온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우려입니다.


여기까지 소개한 사랑에 관한 3가지 오해는 한 가지 문제로 모아지는데요.


그건 바로 사랑을 배우고 연마해야 할 기술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문제로만 생각하면 오로지 더 매력적인 연애 시장의 상품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 사랑을 주는 방법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을 "좋아할 만한 사람이 없다"라는 대상의 문제로 여기면 적절한 대상을 찾는데만 열중하죠.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사랑을 유지하는 단계를 혼동하는 것 역시 사랑에 빠지는 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랑을 유지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 역시 사랑을 배우고 연마해야 하는 기술로 여기지 않는 사고를 더 강화시키죠.


따라서 이와 같은 사랑에 관한 이 3가지 오해를 모두 걷어내야만 사랑은 불쑥 느끼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갈고닦아야 하는 하나의 기술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집착하지 않는 연애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논할 가능성이 열리죠.


이제부터는 사랑이 기술이라는 전제 위에서 집착하는 연애의 원인과 집착하지 않는 연애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보겠습니다.





집착하는 연애의 원인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의 논의 중 제가 가장 주목한 지점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같은 능력이라는 점, 즉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를 사랑하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고, 타인을 사랑하면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프롬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칼뱅이나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한 쪽에 사랑을 주면 다른 쪽에 줄 수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인류애를 발휘해 타인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때 말하는 '인간으로서'에는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인간 개념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나 자신을 제외한 인간 개념을 뜬금없이 만들어서 '나를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을 구분해, 어느 쪽에 사랑을 줄지 고민하는 사고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프롬이 '나를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하는 논리적인 이유이죠.


이때 말하는 사랑은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을 바라는 능동적 감정을 뜻하는데요. 이 능동적인 감정은 타인에게 향하기 전에 이미 나를 향해 있습니다.


나 스스로를 지키고, 존중하고, 책임지고, 알아가는 방식으로요.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지켜주고 싶고, 존중해 주고 싶고, 책임져주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로부터 그 사람에게 한 명에게 집중됨을 의미합니다.


즉, 사랑은 그동안 가지고 있지 않았던 마음이 한 사람에 의해 기적처럼 생겨나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마음이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어 극대화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프롬은 어떤 사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고,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1


여기까지 프롬의 논의를 통해서 이제 우리는 집착하는 연애의 원인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의 부재를 오직 옆에 있는 사람의 애정을 확인함으로써만 벗어 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랑을 공급해 줄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직면하게 될 사랑의 부재를 언제나 두려워합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별은 곧 자신의 사랑 전체의 종말을 뜻하기에 연인의 사랑이 충만할 때조차 조바심을 느끼며 불안해합니다.


그는 연인의 사랑이 식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떠난 연인의 마음마저 부여잡으려고 합니다.


사랑에서의 배수의 진을 친 그 사람에게는 집착이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것이죠.


반면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연인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일 힘이 있습니다.


그는 연인에게로 향했던 사랑을 다시 자신에게로 거둬들이며, 나를 보살피는 방식으로 여전히 자신의 삶에서 사랑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이별은 사랑의 종말을 뜻하지 않고, 그저 고통스러운 변화만을 뜻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나와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지 않고도 이별의 고통을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죠.






집착하지 않는 연애를 위한 사랑의 기술




여기까지의 논의에서 우리는 연인에게 집착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방법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질문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든, 물건을 고치는 방법이든, 요리를 하는 방법이든 어떤 기술을 익히려고 할 때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무리 간절하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해도 그 마음으로 곧장 자전거를 탈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균형을 잡는 방법을 배우고,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머리로 익혀야 합니다.


이런 의식적인 노력을 반복해서 익숙해져야만 그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 있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 역시 동일합니다. "나를 꼭 사랑해 주겠어"라는 결심이나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만 반복해선 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익힐 때도 이성적 사고를 통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처에 깔려 있는 일시적 쾌락을 뒤로하고 나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일을 추구하는 것, 사회에서 만들어진 행복의 틀 강요하는 외부의 개입을 이겨내고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 이러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기술을 터득한다면 이제 나에게 사랑을 줄 사람이 없이도 스스로를 보듬으며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이별을 미리 걱정하며 집착하는 사랑에서 벗어나,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을 냉철한 이성으로 식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랑의 온도를 맞추는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사랑을 잘 '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잘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죠.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 역시 나에 대한 사랑의 기술을 숙달한 두 사람의 만남이었습니다.


프롬은 두 사람이 각자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으면서도 서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래서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 보았습니다.)2


이렇게 오늘은 에리히 프롬의 책 <사랑의 기술>을 통해서 집착하지 않는 연애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대해 말씀드려보았습니다.


프롬의 견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랑의 속성을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으로 단정 지어 구분한다는 문제가 있고, 사랑에 대한 그의 심리학적 분석은 논증 가능한 답이라기보단 사랑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만을 제공한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사랑은 불쑥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라 배우고 연마해야 하는 하나의 기술이라는 사실 그리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집착을 이겨내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에 동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로부터 집착하지 않는 사랑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받기 위해 산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라고 말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글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각주

1) 여기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끊고 나만을 사랑하는 '이기심'과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프롬은 이기심과 자기애는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기심은 스스로를 보살피는 데 실패한 사람이 그것을 은폐하고 보상받기 위해서 미움을 무릅쓰고도 모든 사랑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려고 하기 욕망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히려 자기 배려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행위이기에 자신을 충만하게 만들기보다 더 결핍하게 만듭니다. "이기심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라는 프롬의 심리학적 분석은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확인할 있습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자부심이나 자존감이 보다 결핍과 강박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2)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주)문예출판사, 2022 p.147~148

                    



참고 문헌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주)문예출판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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