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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토랑 Aug 15. 2023

일상이 된 퇴사, 철학자가 된 사람들


"나 퇴사했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왜?"


"나를 돌아보면서 나다운 삶을 살아보려고"


어느덧 퇴사는 유행을 넘어 일상적인 일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퇴사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왜 퇴사했는지, 어떤 도전을 할 건SNS에 거리낌 없이 올릴 정도죠.


미디어에서는 주로 퇴사라는 단어에 주해 회사를 얼마나 다닌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하느냐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퇴사 후에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몰랐다며 나다운 삶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철학과 인문학이 경제 논리에 의해 뒤로 밀려난 지 한참 지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철학자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몰랐어요"

무지를 딛고 철학자가  사람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은 서로 완전히 다른 논의를 펼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흥미롭게도 동서양 철학의 시초라고 불리는 두 철학자는 철학을 같은 의미로 정의했습니다.


소크라테스(좌), 공자(우)


서양 철학의 시초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모른다는 걸 모른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지혜롭다"라고 말했니다.


동양 철학의 시초로 불리는 공자 역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라 말했.


두 사람 모두 철학은 "모르겠다"라는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해 그 무지를 메우는 지혜를 탐구하는 활동이라 봤습니다.


여기서 두 철학자가 말하는 무지는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할 때 입에서 튀어나오는 "아 모르겠다" 정도의 가벼운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무지는 어설프게 아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앎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면서 뒤따르는 좌절과 허무를 맞닥뜨리며 내뱉는 절박한 "모르겠다"이죠.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며 퇴사를 결심한 사람이 내뱉는,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인지 모르겠다"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좌절과 허무 속에서 퇴사를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위험한 도전이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철학이 무지에 대한 자각에서 새로운 앎을 추구하는 활이라면, 철학이 설 자리가 사라진 한국 사회에서 철학자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몰랐다"라는 고백이 가장 절절한 무지의 고백이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보다 더 깊은 철학적 성찰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어떤 이유로 회사를 떠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김대리는 어쩌다 퇴사하고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자가 됐을까?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성공이라 굳게 믿고 성장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고 쉴 틈 없이 공부하고 스펙을 쌓번듯한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회사를 다녀보니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면 어떨까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두가 이렇게 사는데 나도 참고 살아야지. 그래도 밥은 먹고살잖아"라는 위안에 의지해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자가 되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무지를 자각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과감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퇴사일상이 됐다는 건 후자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뜻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오늘날에는 회사 생활에 대한 폭넓은 앎으로부터 나 자신에 대한 무지를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업에 취업해서 직접 다녀봐야만 알 수 있던 정보를 밖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잡코리아', '인쿠르트', '사람인'과 같은 구인구직사이트에서는 회사의 주력 사업, 직급별 연봉, 복지 등에 관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부 정보를 얻고 싶다면 구독료를 내고 현직자들의 가감 없는 리뷰까지 볼 수 있는 '잡플래닛' 같은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죠.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회사 내부까지 점령했습니다.


'블라인드'라는 플랫폼에선 모두가 익명으로 활동하면서 필터링 없이 자신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올립니다.


또한 업종별 라운지를 통해서 동종 업계의 이슈를 알 수 있고, 타임라인을 통해서 다른 업계의 상황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과거 한 명의 직원은 자신의 업계, 그중에서도 자신의 부서, 그중에서도 자신의 직급에서 볼 수 있는 정보에만 접근이 가능지만 지금은 그러한 경계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죠.


어떤 회사에 가든 회사 생활이라는 건 안정적이나의 욕망을 뒤로하고 회사 체계에 충실히 따라야 하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여정이라는 사실을 이제 모두가 알게 됐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의 회사 생활을 쉽게 알 수 없었다면 퇴사 후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다는 건 유행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회사를 가도 큰 차이가 없",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회사 생활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어" 하는 자각은 다양한 규모와 분야의 회사에서 일하 사람들의 삶에 나를 대입해 보는 사고실험을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제대로 알아야만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지 알 수 있기에 무지를 깨닫는 건 무언가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점에서 취업을 돕기 위해 생긴 구인구직사이트들은 회사 생활에 대한 기대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이 회사 생활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성찰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기술과 정보 혁명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역설이 취업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무지'야 말로 메가트렌드다




2023년 메가트렌트는 사회 전반과 개인의 삶에서 평균, 표준, 기준과 개념들이 무너지는 '평균 실종'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메가트렌드는 20년, 30년, 40년 살았음에도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현상입니다.


평생 살아온 자신의 인생관도 기꺼이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표준과 정답을 들이밀며 정해진 길을 걸어가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경제·사회·정치·문화를 포함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평균이 사라지고 극단적인 양극화와 양극조차 가늠할 수 없는 N극화가 벌어지는 건, 나에 대한 무지의 깨달음으로부터 변화무쌍한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개개인을 대중으로 뭉뚱그려 쉽게 포섭하려고 하는 기업, 정부, 정당들은 이제부터 평생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마저 깨부수고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개인을 상대해야 합니다.


'무지'라는 메가트렌드 앞에서 어설픈 정책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며 지지를 요구하는 정부, 넝마처럼 갈기갈기 찢긴 대의명분으로 편을 가르고 표를 끌어모으려는 정치 집단들, 치밀한 마케팅 기법으로 소비자들을 속여 돈을 벌려고 하는 기업들은 이제부터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마저 의심하며 철학자로 거듭난 사람들은 앞으로 절대 쉽게 현혹되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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