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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Dec 17. 2024

클림트 좋아하시나요?

<명화의 발견-그때 그 사람>을 읽고

우연히 아크릴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림은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가장 많이 그렸던 인간으로서 살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미술관의 그림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 그런 느낌은 평생 모르고 살았다. 그런 내가 그림을 배웠던 것은 순전히 주변에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권유였다. 자발적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3개월가량 몰입했고 즐거웠다. 이번에도 내 손으로는 절대 고르지 않았을 그림을 함께 읽었다. 책모임 <쓰는 독서> 이번 분기 주제가 예술이어서 <명화의 발견 - 그때 그 사람>을 말이다.



정말이지 진부한 표현을 딱 한 번만 언급하자면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알려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읽는 사람을 배려했는지 나 같은 무관심의 독자도 끌어당겼다. 이 그림이 어느 사조에 들어가는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떠나서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시련, 아픔, 사랑, 상실 등의 삶을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마치 도슨트가 옆에 있는 것과 같이, 혹은 카페에서 수다 떨며 듣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읽고 있는데 듣는 느낌이다.) 그렇게 삶을 통과하고 녹아있는 결과물인 그림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다시 한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이 책은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로 시작한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본 적 있을 법한 작품이다. 블링블링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과는 달리 클림트는 화려한 삶은 아니었다. 가난하고 어릴 때부터 가족을 부양했으며, 나이가 들어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봐야 했다. 급진적인 그의 작품은 동료에게서도 비난을 받았다.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기존의 보수적인 전통 미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려 했던 그는 인생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빼어난 글과 그림, 음악을 즐기며 고통이라는 운명을 잠시나마 잊고 위대한 아름다움에 맡길 수 있다.'


금빛으로 표현했던 클림트가 <죽음과 삶>에서 금빛을 버리고 다채로움을 선택한 것이 보인다.  


클림트와 빠질 수 없는 관계인 에곤 실레도 등장한다. 방황하는 천재 실레가 마음속 아버지, 자신감의 근원인 클림트 만나면서 크게 성장한다. 방황하는 소년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서 화풍이 변해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외로운 반항,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의 얼굴에서 가족 안의 가장의 얼굴로 다른 외로움을 지닌 모습이 그림에 드러나 있다. 클림트의 후반 작업에는 이 실레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듯 금빛을 사용을 자제하고 색채로 강렬하고 섬세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또한 달리 보인다.


눈빛이 달라졌다. 애잔해진다.


선한 영향을 서로에게 허들 없이 전해졌다는 것이 감동이 더해졌다. 클림트와 실레 모두 스페인독감으로 생을 마쳤다. 특히 28살 짧은 생을 산 실레에겐 짠한 마음과 함께 그림에 눈과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마침 국립박관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비엔나 1900으로 클림트와 실레 작가들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하니 방학에 애들과 함께 가봐야겠다.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안 만날 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 천재들이 얼마나 우당탕탕 시기, 질투하며 '내가 최고야' 예술혼을 불태웠던지 웃음이 나왔다. 작품을 보면 입을 벌리며 인간으로 이게 가능한가 싶은 경탄을 불러일으키는데 인간은 너무 인간다웠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잘생기고, 언변이 좋고 재주와 야망은 높지만 일을 다 마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추저분하며 성격도 괴팍한 미켈란젤로는 무려 스물세 살에 <피에타>를 완성했다.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사람에게 라이벌 의식까지 더해지자 유치 찬란하게 싸운다. 이후에 미켈란젤로는 악덕 고용주(?) 교황으로 인해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역작을 완성한다. 그리고 나타난 꽃미남 외모의 성격 좋고 사랑받는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작품이 웅장하고 압도한다면 라파엘로는 우아하고 섬세하다. 미켈란젤로는 이 라파엘로와도 적극적으로 의식하며 경쟁하며 쉬지 않고 성장했다. 주어진 재능으로 뚝딱하면 예술 작품이 나올 줄 알았지 이렇게 치열하게 살 줄 알았나 말이다. 세상엔 알지 못한 오해가 너무 많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베레트 모리조, 니코 피로스마니, 조르주 쇠라 등 다양한 사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작가들도 작품들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덮고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떠오르는 그림이 뭐야?' 그 많은 그림 중에 이 그림이 떠올랐다.  

카미유 피사로가 베네수엘라에서 그린 그림 <농가와 야자수가 있는 풍경>과 <세인트토머스섬 바닷가에서 수다 떠는 두 여인>이다. 그는 매끄러움과 정확함은 좀 덜해도 그때그때 순간의 빛과 공기의 분위기를 전하고 싶었단다. 물론 당시 분위기는 이를 비난했지만 '인상주의'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개성 강하고 성격 괴팍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싸움을 뜯어말리고 달래는 것도 피사로였다고 한다. 그림에서도 그는 성격대로 여러 색을 부지런히 반복해서 색과 모양의 조화를 만들었다. 고흐, 고갱, 세잔, 쇠라 등 근대와 현대를 잇는 거장이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그림은 특색이 없지만 질리지 않고 편안하다. 온화하면서 따뜻하다. 딱 그처럼 말이다. 그런 것 같다. 그랬기에 이 책의 대단하고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고요히 휴식같이 남아 있었나 보다. 다시 봐도 참 별거 아니고 좋으니 말이다.



솔직히 지금도 여전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과물이 대단해서, 심오하고 난해해서 별나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시작은 흰 캔버스, 거대한 돌덩이로 평범한데 말이다. 그림을 통해서 공유하는 사람에 대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이나마 다가가는(다가오는) 친근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시대를 넘어선 창 너머의 세계를 보는 경험이 꽤 흥미롭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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