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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Mar 29. 2024

나의 사색과 사유를 사랑하려고 해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를 읽고

F 성향이 매우 강한 나는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이 책의 제목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밀려온다. 제목만으로 모든 화살이 나한테로 오는 것 같은 느낌, 죄책감을 가지기 싫어서 회피로 숨고 싶었다. (혹 그것이 F 성향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딸', '엄마', 감정', '먹고', '자란다' 어떤 단어 하나 그저 지나치지 않고 다 나에게 와서 찌른다. 나만 그런가. 그래도 '성장 메이트'에서 이 달의 책으로 읽게 되어서 의지로 책장을 넘겨 본다. '제발 울지만 말자' 이런 맘으로 말이다. 



작가 박우란은 정신 분석사, 심리 상담 전공자이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영성과 심리를 수양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마음에 멈추지 않는 질문들로 답을 찾고자 환속하였다. 나는 수도자들의 깊은 영성의 시간을 존경하고 신과 나의 시간에 대한 사색을 동경한다. 한편으로 한 인간과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그 치열한 혼란들에 대한 질문과 답에도 궁금하다. 살다 보니 뭐 그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나에 대한 정의와 사색 없이 그저 사건들의 연속이 나인 것처럼 지나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날 서서 보면 지나간 시간 속에 곤고한 육체와 허한 마음에 울적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눈을 가까운 관계에 돌리게 되는 것인가. 남편, 아이들, 부모님... 특히 책임과 역할의 무게를 온갖 긍정으로 버텼던 육아 사건으로 나를 증명했었던가.  



책에서는 작가를 찾아온 많은 여성들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울지 않았다. 작가가 말하는 대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마음을 모르는 채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에 대해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 보았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켜켜이 쌓여온 것들이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하는지 그 지점이 맞는지 모르겠고 말 (혹은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 본다.

'이 감정은 무슨 감정이지?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나는 왜 내 생각과 달리 이렇게 아이에게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거지?'

우리는 자신에게 무수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아이나 배우자에게 던지며 그들이 그 답을 찾고 해결하길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멈추어서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73)
-엄마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나는 나의 욕망과 욕구, 결핍과 상처를 직면하지 않으려고 했다. 꿋꿋한 의지와 긍정적인 생각을 끌어와 버티면서 살았다. 나만 그렇게 살았던가. 원가족인 부모님과 동생들도 어려운 시절을 그렇게 이겨내며 살아냈다. 친정 엄마는 지금도 '너희들 키우려고 참고 살았다.' 입버릇처럼 말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알았다. 엄마는 아빠의 무심함이 당신의 노력으로 언젠가는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그 시간을 이기며 사셨지 딸들을 보고 살지 않으셨다는 걸. 언제나 엄마의 시선은 아빠에게 있었다는 걸. 지금까지도. 살펴보며 인정하니 평생을 들으면서 죄송했던 그 마음을 애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 말이다.  

무엇보다 사색하고 사유하는 엄마여야 합니다. 엄마 자신의 욕구와 욕망, 결핍과 상처를 인식하고 애도할 수 있을 때, 그동안 발화되지 않았던 뜨거운 모성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125)
- 내 엄마가 되는 법  



사춘기 기간에 접어든 딸이 대화 중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렇다고. 뭐 그렇게 진지하게 대해. 당황스럽게." '나 또 진지했던 건가. 그냥 그렇구나 했던 일이었던가. 또 과하게 반응했던 것인가.' 편안하게 인정하는 멘트를 10개 정도 써 놓고 외워서 공부해 놔야겠다. 툭치면 나오도록. 편안한 대화를 원하는 딸에게 설교하려 들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내 문제로 가득 차 있는 한, 내가 나의 결핍과 상처들로 사로 잡혀 있는 한, 결코 소중한 나의 사람들을 내 안으로 들일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는 것, 그것만 하면 됩니다. 딸들을 끝까지 믿고 끝까지 함께 견디어 주는 누군가가 엄마이기를 원합니다. 그것만 해 주면, 그다음은 스스로 충분히 일어설 수 있습니다. (178)
-함께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엄마는 어떤 평가나 판단을 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면, 아이는 안전감 안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찾아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믿어 주고 불안해하지만 않는다면, 상처를 받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상처를 잘 견뎌 내는 아이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244)
-사랑의 거리 두기 



딸에게 학교 생활에 시련이 왔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그때는 아이의 분노보다 나의 분노가 더 컸던 거 같다. 인생의 매운맛을 처음 느낀 딸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걱정했다. 딸이 이 시기를 넘어서면 한 단계 성장할 것이 분명했지만 혹여나 잘못될까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학교에 가서 어떻게 지낼지, 다녀온 딸의 표정을 살피는 게 힘들었다. 딸은 집에서 걱정하는 엄마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려고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딸은 학교, 집 이중으로 힘들어했고 그 가운데 내가 있었다. 나 자신도 감당 못하면서 아이의 감정까지 책임지려고 했다. 

엄마가 보기에 아이가 왜곡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생각하고 있다면, "네 생각과 감정은 그렇구나..."가 끝이어야 합니다. 그 생각에 가치와 평가가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워집니다. (103) 
-아이의 감정을 평가하지 않기 



나 자신의 역사를 관찰하고 언어화하고 기표하는 것들이 나를 회복하는 방법이 된다고 했다. 모르는 나 자신을 만나서 잘 지내는 시간을 글을 쓰면서 만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해소감을 느끼는 것이 이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인가. 지나는 일상을 잡아서 나를 부여하는 시간. 나를 만나는 게 제일 어려운 이 아이러니. 

첫째는 믿을 만한 분석가를 찾아 자신을 언어화하는 일입니다. 여러 실제적인 사건과 내 속에 있는 충동, 상상과 환상을 언어화하는 것은 나의 시간을 재구성하고 상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71) 

둘째는 자기 글쓰기를 하는 일입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내 안의 것들을 그저 써 내려가는 것이다..."책을 쓰는 것은 세상에 기표를 던지는 행위입니다."... 기표는 곧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글을 수정하는 일은 글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의 과정이지요.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글을 끊임없는 자기 정화의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274) 
-나를 찾아가는 두 가지 방법


선한 모성과 선을 선택하려면, 어떤 고정적인 모성과 인간성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집중하되 또 거리를 둘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 사색이고 사유입니다. 사유하고 사색하는 엄마를 따라 아이도 자신의  삶과 욕망에 대한 사색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276-7) 
-무의식은 지울 수 없다 

조금 더 나를 사랑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마음가짐.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함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 관계 안에서 수용하며 안전함 유지하려는 작은 유머.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내담자의 위치에서 몰입되어 나를 관찰하려고 애쓴 시간이 되었다. 참 사람 사는 것이 그렇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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