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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Jun 25. 2024

떡볶이는 추억을 싣고  

"어머. 원장님. 그러셨구나. 원장님 고향이 어딘지 물어봐도 되나요?"



모처럼 마음 편히 머리 새치 염색 할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1시간 정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어서 가게 된다. 자꾸 말 시키는 곳은 부담스러운데 차분하고 사근 하게  다가오는 원장님과 대화하다 고향까지 묻게 이르렀다. 남의 고향은 알아서 뭐 하러 물어보냔 말이다. 괜히 물어봤나 하는 순간... 



"저. 천호동이요. 영파여고 나왔어요."

"네!!!! 저는 상일여고 나왔어요."

"어머. 세상에 이런 곳에서 천호동을 듣다니... 너무 반가워요."

"그거 아세요. 하얀집, 코끼리분식 다 문 닫았어요."

"진짜요? 저 거기 엄청 좋아해서 자주 갔었는데 너무 슬프네요."



순간 원장님과 손님의 그 보이지 않는 벽은 허물어지고 여고 시절로 껑충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슬퍼졌다. 분식집이 그 많은 세월 동안 자리 잡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마는 뭐랄까. 뭔가 지우개로 지워진 기분이랄까. 우리 여고 앞에는 떡볶이집이 좀 빈약했다. 누가 그 오르막 학교까지 떡볶이를 먹으려 오겠는가. 하지만 영파여고는 달랐다. 번화한 대로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코끼리와 하얀집은 일종의 랜드 마크 분식집이 있었다. 우리 학교 애들과 가기도 하고 옆 학교 애들과 함께 가기도 했고 거기서 만나기도 하고... 원장님하고는 말할 수 없이 가까워졌고 추억하고는 말할 수 없이 멀어졌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자기야, 하얀집이 없어졌대."

"나는 교회 앞에 김가네가 없어졌을 때 아쉽더라. 라볶이에 밥 비벼 먹으면 맛있었는데." 

"자기야, 거기 말고 길 건너의 떡볶이집이 더 맛있었어. 김가네 생길 때 진즉에 없어졌지만."

"거기, 정류장 앞에 떡볶이집도 맛있는데. 천 원인데 엄청 많이 줬잖아. 튀김하고 순대도 시키면 배 터지지."

"길 건너 골목길에 있는데 거기도 괜찮았어. 사거리 2층 짜장분식도 급 당기네. 거기가 원조잖아."  



분식집 이름은 기억이 안나도 자리했던 위치와 함께 머릿속에 떡볶이집의 외관이 그려진다. 그곳에 바친 나의 용돈이 얼마던가. 함께 갔던 친구들도 몽글몽글 떠오른다. 떡볶이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들도 떠오른다. 남편과 마치 같이 간 것처럼 열심히 떠들어댔다. 물론 같이 간 곳도 많다. (남편이 같은 동네 사람인 것이 이럴 땐 좋다.) 서로 더 많은 분식집을 지지 않으려고 여기 가봤어, 저기 가봤어 유치하게 늘어놓는다. 분식집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수다 떨기 힘들어져서 그만둔다. 그때 그 맛이 그리워서 힘들어진 게 더 맞는 말이다. 기억하는 맛이라는 게 이렇게 힘이 있나 보다. 



신나게 수다 떨었던 에너지가 사그라들던 차에 다시 눈이 번뜩인다. 

"자기야, 마복림 떡볶이 알지." 

나는 이 대화를 이렇게 끝낼 수 없다. 먹어야겠다. 먹어야 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거 같다.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가 머리를 스친다. 택배 배송해 주며 아직 건재한 곳. 그곳이 있었다.     

"알겠는데 그냥 두끼 가자." 

"자기야 그건 대안이 아니라 찬물을 붓는 거라고. 두끼는 추억이 없잖아. 이 대화는 추억으로 마무리해야 해."

"추억은 추억으로 두고 두끼가 훨씬 맛있을걸." 

 "......" 



택배는 주문했고 두끼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고요가 흘렀다. 추억은 그리움 속에 있을 때 희소하고 빛난다.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일수록 더 영롱하게 빛난다. 잔뜩 차려입고 찍은 증명사진보다 우연히 찍은 스냅사진이 더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남겨진 추억은 미화된다. 그것이 나의 추억인지 영화 속 주인공의 추억인지 희미해지며 어떻게든 좋은 것만 남기고 싶은 바람으로 말이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말다툼했던 기억, 곧 철거될 판잣집에서 떡볶이를 팔았던 사장님을 본 기억, 돈이 없어서 늘 친구들이 내는 떡볶이를 먹어야 했던 그 친구와 그 친구가 맘 쓰지 않게 티 안 나게 사주려고 했던 친구들의 기억들조차도 그저 다 좋았던 시간이 된다. 추억은 추억으로 두는 게 맞는 말이다. 시간 속에 내가 이렇게 변했는데 맛은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있어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추억이 지금의 시간을 더 충만하게 해주는 것을 느끼며 그 시절 떡볶이를 지금의 맛으로 그저 즐기련다. 한바탕 추억놀이가 행복이 됐다. 



행복은 당신의 경험이 아닌 당신의 기억이다. -오스카 레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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