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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Nov 08. 2022

수다에서 시작된 여행

그러니까 두 사람의 여행은 그날의 수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멕시코 음식점의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니 여행은 소개팅의 단골 대화 소재이기도 하니까. 

두 사람에게 여행 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상대가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두 사람에게 여행은 그러하니까.     


여자는 조용한 듯 보이지만 아르바이트로 돈이 모일 때마다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깡이 있었다. 

남자는 수다스러웠지만,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해외는 나가본 적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전국으로 떠나는 남자에게 여행은 생활과도 같았다.     


그날은 두 사람이 소개팅하던 날이었다. 남자는 약속 시간에 늦었다. 추운 겨울 저녁, 지하철 역앞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여자에게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컬투쇼 베스트 사연 모음’을 보냈다. 여자는 보자마자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남자의 사과를 듣지 않고는 밤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이를 갈며 기다렸다. 

남자는 한 시간을 늦었고, 그동안 길바닥에서 기다린 여자에게 그럴싸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제주도 여행 중 기존 일정보다 하루를 앞당겨 올라왔으며, 지금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온 것이라고. 여자는 기대했던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둘의 여행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이미 짐작하셨으리라. 바로 나와 남편의 이야기다. 남편과의 소개팅 날, 우리는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행 이야기로 끝을 낼 만큼의 수다를 떨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서 본 푸른 새벽과 양 떼를 이야기하면, 남편은 지리산 종주 길에 만난 빗줄기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걸어냈던 제주 올레길을 얘기하다, 함께 올레길을 걷자는 약속을 하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여행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삶을 대하는 자세, 사람 간의 관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이야기했다.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을 이야기하다 정치 성향을 알게 되었고, 여행하며 생겨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 인생관을 엿보게 된 식이었다. 카톡 프사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한 사람의 진면목이 여행 이야기 안에 있었다. 

여행 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시간도, 주변도 잊혀졌다. 창밖은 깜깜했고, 테이블 위엔 타코와 퀘사디아들이 머물다간 접시와 칵테일 잔들이 늘어났다. 그날 우리의 수다의 무게를 가늠해본다면, 늘어난 잔들의 개수만큼 일까. 깊어진 밤만큼 일까.     


필시 그날 수다의 무게 때문이었을 거다. 일 년 후 우린 결혼에 이르렀고, 합법적으로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즉흥적이었다. 갑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 그리고 다시 일 년 후엔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즈음부터는 셋이서 함께 여행을 다녔다. 가까운 강원도, 충청도부터 시작했다. 아이가 있다고 해서 여행을 멈출 수는 없었으니까. 셋은 둘일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우리는 아이가 있는 상황을 장애로 보지 않고, 새로운 세계의 발견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모든 일을 처음 하는 것처럼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아이는 자랄수록 여행 메이트에 적합해졌고 여행은 다시 즐거워졌다. 우리는 둘일 때 그랬던 것처럼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수, 순천, 군산, 전주, 경주, 제주...


그리고 오 년이 지나, 지금은 네 명이 여행을 다닌다. 7살과 15개월이 함께하는 여행은 즐겁지만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왕좌왕 좌충우돌 우당탕탕 와장창창 사고가 가득, 에피소드가 가득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사고 투성의 이상한 여행 이야기를 이곳에 사부작 남겨볼까 한다. 아무도 관심 없고 알고 싶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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