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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Nov 06. 2023

목요일을 기다리는 아이

목요일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목요일은 엄마와 단둘이 보낼 수 있는 두 시간이 주어지는 일주일 중 유일한 날이다. 이 시간만큼은 윤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내려 노력한다. 우린 공원이나 도서관에 간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정문 앞에서 기다린다. 두 가지 선택지를 손에 들고.


“윤아, 오늘 공원 갈래? 도서관 갈래?”

“공원! 공원 갈래.”

이번 주 목요일은 공원으로 정해졌다.     


보통은 도서관이 공원을 앞선다. 아이가 도서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공원에 갈 수 없어서다. 보통 사람들에겐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이는 날씨도, 아이와 함께 가려니 까다로워진다. 비가 와도 안 되고, 기온이 너무 낮아도 안 되고, 미세먼지가 많아도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공원보다 도서관에 가는 날이 월등히 많아진다.     


도서관에 갈 때와 달리, 공원에 갈 때는 준비물이 필요하다. 잠시 집에 들러 준비물을 챙겨온다. 킥보드와 간식거리, 물, 각자 읽을 책을 챙긴 후 공원으로 출발한다. 공원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서 쉽게 갈 수 있다. 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10m쯤 앞서간다. 눈앞의 윤이를 바라보며 터벅터벅 따라 걷는다. 따라가느라 종종거리지도, 너무 뒤처져 걷지도 않는다. 일정 거리를 둔 채, 각자의 속도에 맞춰 편안하게 걷는다. 새삼 우리의 거리가 이제야 맞아졌다는 실감이 든다. 걸음이 늦던 어린 시절에는 아이의 걸음에 맞춰 느리게 걸어야 했고, 손을 꼭 잡아야만 걸을 수 있었다. 이제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간다.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며 걸어간다.     


공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벤치를 찾는 것이었다. 키가 낮은 나무와 화단이 감싸고 있는 오솔길 중간에 있는 벤치에 앉기로 했다. 가방 안에 챙겨온 몽쉘 두 개와 젤리, 과자, 물을 꺼냈다. 윤이는 점심을 많이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다며, 몽쉘 한 개를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나머지 하나의 봉지를 뜯어서 먹으려 하니, 그것마저 자기를 달라고 했다.


“윤아, 이건 엄마 건데? 넌 네 거 하나 먹었잖아.”

“엄마, 나 점심 조금 먹어서 배고프단 말이야. 나 하나 더 먹을래.”

“안 돼. 엄마도 먹고 싶어서 챙겨 온 거야. 그렇지만, 반 줄게.”

“아~ 그래? 그럼 알았어. 딱 반 맞게 잘라서 줘.”


예전 같으면 달라는 대로 다 줬을 나였지만, 이젠 내 몫을 챙긴다. 아이에게 당장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일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식을 다 먹은 후, 광장에 가서 킥보드를 타자고 권했다. 아이는 그대로 책을 읽겠단다. 공원까지 와서 책이라니,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진정 책을 즐기는 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책 읽기 가장 좋은 환경인 공기 좋고, 눈이 푸른 이곳에 와서 책 생각이 안 날 리가 만무하다. 미리 챙겨온 책 두 권을 꺼내 들었다.


“엄마, 책 읽어줘.”

“엄마는 엄마 책 읽고 싶어. 네가 책 읽을래? 조금 있다가 엄마 책 읽고 나서 네 책도 읽어줄게.”

“흠, 알았어.”


사실 조금 미안했는데, 의외로 쉽게 수긍해 주었다. 엄마 역시, 책을 읽고 싶어 하리라는 마음을 공감해 주었을까. 그리고 잠깐 하려던 독서는 윤이의 집중과 함께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우린 하나의 벤치에 앉아 각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 세상을 존중해 주는 아이는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혼자만의 일방적인 사랑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서일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아이 덕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엄마라고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기로 했다. 각자의 것을 한 후엔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마지막은 윤이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 놀이를 하며 마무리한다. 산책하다 좋아하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놀이를 시작한다. 오늘은 경찰과 도둑 놀이와 공주 놀이였고, 열심히 도둑이 되어주고, 왕비가 되어주었다. 언제까지나 역할 놀이를 할 수 없을 것이란 걸 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학원과 숙제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학교, 학원 시간 관리에 숙제 감독까지, 엄마라기보다는 선생님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충실하게 경찰과 도둑이 되어, 공주와 왕비가 되어 놀기만 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다. 일주일에 하루뿐인 목요일의 특권이니까.     


특별한 걸 하진 않았지만, 이쯤 되면 우리 둘은 체력이 바닥난다. 두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아이는 킥보드를 탈 기운도 없다며, 다리가 아프다고 종알댄다. 킥보드에 두 다리를 모두 태운 채로 아이를 끌어준다. 오르막은 힘들고, 내리막은 편안하다. 엄마가 끌어주는 킥보드를 마치 유모차에 탄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타고 간다. 키는 컸지만, 여전히 마음은 어린아이 같은 우리 아이. 아기처럼 대해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집이 저만치 보인다. 이로서 목요일의 나들이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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