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로 Jan 11. 2021

메르비안의 법칙

삶 속에 만연하지 않은 듯 만연한

1.

 처음에는 그 일이 이렇게 대수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는 추호만큼도 상상하지 아니하였다. 시작은 그저 열심히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뿐이다. 사람 구실을 하고, 무엇보다도 어른스러운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에 따른 행동이 바른 결과로 그리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머리가 컸다면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현실성 인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삶은 단지 그 한 행동으로 인해서 완전히 변화되고 말았다.

 내가 외적인 측면에서 매력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일련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과 더불어 가끔 찾아오는 칭찬도 있었다. ‘너는 긍정적인 모습 그리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다’라는 말이 그중 하나였고, 나는 이것을 나만의 전가의 보도로 삼기로 결심했다. 외적인 측면에서의 아쉬움을 압구정역 인근에 즐비한 성형외과가 아닌, 스스로의 내면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효율적인 마음가짐이었다. 그리고 이는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한 개인의 자존감 측면에서도 중요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를 통해 성공하게 될 것이라 늘 강하게 믿곤 했다. 이 부분에서는 규민이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니,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다 – 그. 때. 까지는‘ 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젠장.


2.
  만약 어떤 외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허무하고 단출하게 마무리되는 졸업식을 찾고자 한다면, 나는 한국에 와서 ‘비(非) 명문대’의 졸업식을 찾아와 보시라고 강력히 권유해보고 싶다. 그리고 혹시 어떤 곳이 비명문대인지 궁금하시면, 그냥 우리 학교 졸업식에 오시면 될 것 같다고 첨언할 것이다. 내가 새내기 때부터 지켜보았던 같은 과 선배들의 2월이 그러하였고,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일단 대학교 시절 나와 친하게 지냈었던 동기들 중에서 단 한 명도 나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한때는 매일 같이 수업을 듣고 술을 마시곤 하던 3명 정도의 친구가 있었는데, 현재는 술은커녕 연락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선주는 두 차례 휴학을 진행했었던 나와 다르게,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실행했었고, 그에 따라 이제는 보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난번 공채 시즌 중에는 어찌어찌 한 번 봤었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예전에도 유달리 말랐었지만, 그때는 사람 몰골이 아닌 수준이었다. 애초에 몸무게도 별로 안 나가는 얘가 스트레스로 살이 더 빠져서 걷는 모습 자체가 위태위태해 보였다. ‘너 이러다가 내 반절 크기로 줄어들겠다.’라는 농담에 힘 빠진 채로 간신히 웃음을 내뱉던 그녀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모습을 기억한다. 저렴한 가격에 양껏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뷔페인 세슐라에서 단지 샐러드 한 그릇, 새우볶음밥 두 숟갈에 커피 두 잔을 곁들여서 먹던 너의 기묘한 식단 또한 기억한다. 나는 너와는 다르게 그곳에서 유명한 지방과 단백질이 가득한 요리들로 세 그릇 정도를 가볍게 비워냈었던 것 또한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나는 마지막 코스로 아이스크림 와플과 함께 커피를 가져와 너의 카페인 농도를 따라가려 애썼었던 것 또한 기억한다. 그때 당시 선주는 1, 2 지망으로 지원했던 ‘모든’ 회사에서 탈락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하루에 5곳에서 동시에 탈락 통보를 받는 일을 몇 번이나 겪다 보니 입맛이라는 것이 완전히 소멸했다고 한다. 3 지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넣었던 회사에서는 면접을 볼 기회를 얻었었으나, 사는 곳과 3시간 거리에 있는 회사에는 차마 갈 수가 없었었다고 한다. 선-후가 바뀌었다면 면접을 봤을지도 모르겠다며, 선주는 나에게 슬픈 웃음을 가득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날 또한 한 회사에서 탈락 통보를 드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울먹임으로 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선주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와중에 계산까지 하고 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더욱 슬퍼졌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선주에게 차마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최대한 빠른 시기에 기쁜 소식을 전달해오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반면, 선주와는 달리 후회하는 일 자체를 스킵했던 친구도 있다. 우리 사이에서 가장 높은 학점과 그에 따른 장학금들로 과 내에서는 이미 유명했던 택환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군대라는 강제 휴식기간이 있었지만, 그 기간은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만을 위해 휴학을 진행했던 나와는 달리, 택환이는 군대에서도 어느 정도 경력이 찬 후 토익공부를 매일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택환이는 나보다 빠르게 성공이라는 길로 향해가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대학교의 네임벨류였다. 그의 여러 스펙은 최상위 기업에 입사를 도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어쩔 수 없는 다른 요소들이 문제였다. 결국 너무나 똑똑했던 그는, 도전하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아마, 한 번에 취업을 꿈꾸었던 집안 사정 또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행히도, 전지적‘어른’ 시점에서는 지극히 현명한 그의 판단에, 많은 교수님들은 끝없는 칭찬과 박수를 보냈다. 다만 그 칭찬이 택환이에게 보내는 건지, 본인이 학생 취업실적으로 인해 받게 될 인센티브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교수님이 추천해준 적당한 회사에 적당한 과정을 거쳐서 들어가게 되었다. 당연히 평소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회사는커녕, 직무조차도 무관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을 할 수 있는 사실과 돈을 벌며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한때는 야망에 가득 찼었던 그였으나, 현실이 그를 쪼그라트린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는 나의 졸업식 날, 같은 팀 부장님을 집까지 픽업하러 간 후 같이 강원도 출장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회사의 역학관계를 딱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안타까운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나에게 미안함과 축하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한창 같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들을 수 없었던 톤(Tone)이었다.

 아, 오늘 못 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한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 이제는 에이미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은 선영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선주와 같이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했었으나, 취업시장이 아닌 해외로 시선을 돌렸었다. 그렇게 그녀가 택했던 길은 ‘호주 워킹홀리데이’였고, 어쩌면 우리 중에는 에이미(아직 입에 잘 붙지 않는다)가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 들었던 그녀의 생활은 처참함 그 자체였었다. 농장에서 일하면서 각종 가축들의 배설물들을 치우면서 보내기도 한다 했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헷갈리는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뭐 빠지게 고생하던 에이미는 끝없을 것 같았던 고생 끝에 결국 시드니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때의 통화에서도 그녀는 ‘그냥 평범한 카페일이며, 노동 강도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며 푸념했지만 확실히 이전보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행복하게 들렸었다. 그리고 전화 도중 옆에서 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던 미지의 동료와 건네는 그녀의 ‘낯선 호주식 영어’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대화를 마쳐야만 했다. 그리고 최근 도착한 에이미의 택배 속에는 각종 영양제와 과자들과 함께 졸업을 축하한다는 예쁜 카드가 담겨있었다. 굳이 졸업한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었는데, 알아서 챙겨주는 에이미가 꽤나 ‘Thank you‘ 했다.

 이렇게 나랑 가장 친한 동기들은 전원 불참하게 되면서,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나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전 학창 시절에 겪었던 졸업식들의 피날레에서는 우리 모녀가 알 수 없는 시원섭섭함에 눈물지으며 서로를 쳐다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번에는 그런 감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곤충을 해부하면 ‘머리-가슴-배’의 3단계로 해부되는 것과 같이, 이번 졸업식 또한 3단계로 손쉽게 요약할 수 있었다. 1. 졸업장을 받는다. 2. 졸업식 가운과 학사모를 빌린다. 3. 사진을 찍는다. ‘졸업식 끝’. 짝짝짝. 졸업식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빌린 물품들을 반납하고 근처에서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밥 챙겨 드시고, 당장 취업시장으로 진입하시오. 그래, 그렇게 손쉽게 나도 한 마리의 곤충 아니, 한 명의 취업준비생이 되어버릴 수 있었다.


3.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제는 ‘사(死) 비유’와 같이 느껴지는 말이 있다. ‘취업시장은 바늘구멍과 같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취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며, 어느 정도 운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의 함의한 문장이다. 다만 내 자체는 여기서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바늘구멍을 통과하기에는 나라는 실이 너무 통통했던 것이다. 바늘구멍보다 커다란 실은 절대로 그 구멍을 통과할 수 없다. 굳이 해내고자 한다면 다른 구멍을 찾아보거나, 스스로가 얇아지거나 하는 방법뿐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택한 방법은 후자였었다.

 전공 수업시간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로, 메르비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심리학 관점에서, 사람을 설득할 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시각적인 요소가 55%, 목소리의 억양이나 속도 등 청각적인 요소가 38%, 내용이나 인격 등 언어적인 요소가 7%라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수업시간 중 발표를 할 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취업시장에서도 뼈저리게 적용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면접 과정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도 45%(38%+7%)는 이미 갖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55%로 이를 완성시키는 것이 절실했다. 아무리 스펙을 쌓고, 자기소개서를 잘 써봤자 다음 과정에서 떨어진다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토익공부와 함께 식단관리 그리고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워낙에 운동을 즐겨하지 않았었기에, 약간의 관리만으로도 몸무게에는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내 외적인 모습과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선언해왔던 규민 이조차, 태도가 달라진 것이 눈에 띄게 느껴졌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이 또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자 정체기로 접어들었다. 비만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과체중인 상태였다. 마른 체형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55%를 위해서는 보통 체중까지는 만들어야만 했다. 무엇인가 다른 변곡점이 필요했다.

 첫 토익시험을 가볍게 망치고 온 어느 일요일, 현관문 앞에 낯선 전단지가 한 장 붙어있었다. ‘P스쿼시 센터 개관 기념 2+1 이벤트 진행, 다이어트에 극단적인 효과 보장’ 짧은 문장이었지만 매력적인 두 가지 요소가 버무려진 잘 만든 전단지였다. 1개월 서비스 그리고 극단적인 효과라는 점에 자석처럼 이끌렸던 나는, 그날 부로 바로 그 센터에 등록을 완료하였다. 당시 규민이는 작년에 나처럼 4학년을 막 앞두고 있는 시기였다. 한층 더 긴장한 모습이 매번 눈에 띄었으나, 그와는 무관하게 나에게만은 무조건적인 응원을 건네곤 했다. 그리고 스쿼시를 해서 살을 더 확실하게 빼보겠다는 나의 계획에 그는 스쿼시 라켓을 손수 선물하는 정성까지 보여주곤 했다. 400일 선물이라는 명분으로 준 그의 선물에, 나는 큰 힘을 얻었고 빨리 살을 빼고, 빨리 취업에 성공하자는 의지를 더욱 불태울 수 있었다.


4.

 이제는 만난 지 1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규민이가 왜 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규민이 말로는 복스럽게 안주를 먹는 모습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데, 이전까지 겪어왔던 남자애들은 그 모습을 기반으로 나를 비난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심리학 기초 II’라는 과목에서의 골치 아픈 조별과제가 만남의 시작이었다. 교수님께서 성적을 짜게 주고 재수강은 기본인 것으로 유명한 과목이었으나, 필수과목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재수강이었고, 규민이는 그의 학년에 맞게 이 지옥을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 과목의 가장 큰 특징은 ‘인복’에 성적이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재작년에 공사를 통해 신축된 고급스러운 강의실에서 수업은 진행된다. 다른 강의실에서는 수업을 듣다 이곳에 오면 다른 학교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첫 수업 날의 풍경 또한 강의실처럼 생경하다. 출석부 파일을 가볍게 들고 있는 교수님과 그의 뒤를 따라 누가 봐도 무거워 보이는 철제 박스를 들고 오는 두 명의 조교들을 볼 수 있다. 조교들은 낑낑거리며 연단 중앙에 큰 통을 위치시키는데, 이때 교수님께서는 ‘조금 더 오른쪽, 아니 조금 더 왼쪽’등의 지시를 하시며 정확한 위치에 그 물체를 주차시키신다. 그 과정이 마무리되면 조교들은 퇴장, 드디어 수업이 시작된다. 교수님의 첫 멘트는 다음과 같다. ‘첫 출석은 제비뽑기로 대체하겠습니다.’

 원래는 강의용 PPT가 띄워져야 할 화면에 엑셀 시트가 띄어진다. 그리고 한 1로 시작하는 한 셀에 이어서 순차적으로 숫자를 촤르르 내리면서 기본 세팅이 완료된다. 이후에는 같은 숫자를 뽑은 두 명의 학생들의 이름을 오름차순으로 적어가면서 출석과 짝짓기(?)를 진행한다. 워낙에 수강인원이 많은 데다 전공과 무관하게 인기가 많은 과목인지라, 대부분은 이름부터 낯선 사람과 짝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낯섦은 하루빨리 극복해야만 했다. 첫 주차 수업부터 마지막까지 매주, 도저히 혼자서는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양과 질’을 가진 과제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본인의 짝이 수강을 중간에 취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 짝이 없는 상태로 모든 과제를 완료해내야만 한다. 왜 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으나, 교수님은 이러한 불상사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놓으지 않으셨다. 애초에 2.5인분은 족히 될법한 과제를 줘놓고, 1인이 이를 겪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애초에 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심리학계에서는 이미 천재로 불리시던 교수님이셨으나, 이런 불쌍한 학생의 심리까지는 고려하지 못하는 점이 참으로 유감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그 불상사의 대상이 나였었고, 자연스럽게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일을 겪을 수는 없었다. 일단 규민이가 도망치진 않았기 때문에, 그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과제들을 수행했었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내가 1.5인분, 규민이가 0.5인분을 해내는 느낌으로 말이다.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래도 같은 과 선배라는 점을 반영해보면 나쁘지 않은 비율이다. 내 입장에서는 큰 불만도 없었고 말이다. ‘늘 고마워요 누나, 이거 먹어요.‘하면서 서글서글하게 구는 그의 모습에 불평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 12월 중순이 되었다. 어느새 마지막 과제와 기말고사 또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이맘때쯤 지긋지긋한 과제와 지옥 같은 난이도의 시험들을 돌파했다는 성취감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대학생답게,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몇 잔의 술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그렇게 한 겨울밤의 술자리는 몇 잔으로 시작해 몇 병으로 마무리되게 되었고, 취함의 정도처럼 우리의 애정의 정도도 자연스럽게 깊어져 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시나브로 취해갔고, 연인이 되었다.



5.

 새롭게 오픈한 센터답게, 관장님의 부인이셨던 스쿼시 담당 선생님의 의지가 엄청났다. 나를 개조시켜 주겠다는 무시무시한 선언으로 시작하셨고, 그 각오에 걸맞게도 스쿼시는 생각보다 더 힘든 운동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취업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나를 바꿔놓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아니 적응해야만 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처음에는 라켓을 잡는 법과 각종 자세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했고, 두 달가량의 시간을 거치며 포핸드 스윙이라든지 보스트-샷 이라든지 하는 기술들까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힘들게 배운 만큼, 빠른 학습 진도였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의 수강 능력에 감탄한 듯 ‘개조가 잘 진척되고 있군요.’라는 말을 매번 강의시간 말미에 덧붙이곤 하셨다. ‘저는 기계가 아니에요 선생님’이라고 슬며시 반박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변하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그맘때쯤 만족할만한 토익 성적을 취득했고, 오픽 시험 응시를 시작하기도 했다. 단순히 몸무게보다 체지방 지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또한 그때였다. 아직은 어설펐지만, 여러 측면에서 조금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순조로운 다이어트와 늘어가는 스쿼시 실력을 지켜보던 선생님께서는 이제 반년 정도만 더 지속하면 흔히 말하는 ‘몸매 좋은 여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 있게 말씀하셨다. ‘이대로 계속하는 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라는 말은 역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맘때쯤 첫 공채시즌이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원서를 써서 제출해보기 시작했다. 첫 시즌부터 합격한다면 물론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번째 취업시즌을 위한 체험이 그 자기소개서의 주된 목적이었다. 인터넷이나, 각종 취업 서적을 참고해가며, 스스로의 삶의 궤도를 거슬러 올라가며 ‘성장과정’나 ‘지원동기’ 따위의 항목들을 채워가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취준생치곤 운이 매우 좋은 편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일이 생겼다.


5.

 스팸메일 아니면 각종 취업사이트에서 보내온 메일만 가득했던 내 이메일 함에 익숙한 발신자명을 가진 기업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 1 지망이었던 A그룹에서의 면접 통보 메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원래는 탈락 통보를 받았었던 곳이었지만, 알 수 없는 사내 사정에 의해  추가적인 기회를 우수 지원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 그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첫 시즌에 바로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과 더불어 ‘우수 지원자’라는 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우수하다는 칭호를 주었던 적은 없었는데, 그 작은 형용사 하나로 온 세상이 들떠 보이는 기분이었다.

 이제 면접까지는 2주가량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각종 취업카페를 통해 급하게 A그룹 면접스터디에 참석하고, 인터넷에 올라온 모든 면접 후기를 정독하였으며, 외모 또한 최선을 다해 가꾸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보다 운동량을 늘리거나, 식사량을 줄이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후자를 선택했다. 시간적 여유 따위는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간신히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외적으로는 확실하게 더욱 나아지고 있었다. 늘 공장 속 기계 같던 스쿼시 선생님조차도 이때는 나에게 걱정의 한마디를 건네주시곤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면접 D-2일’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어쩐지 마음은 더욱 복잡해지고 불안감은 커져가기만 했다. 그리고 이 날,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장소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향했던 스쿼시 센터에서였다.


6.

 평범하게 배운 대로만 진행하면 되는 포핸드 스윙이었다. 오른발은 대각선 방향으로 뒤로 뺀 상태에서 두 발을 모두 일자로 만들어 주며, 무릎은 90도가 살짝 안 되게 구부려준다. 라켓은 어깨위치에 둔 다음 뒤로 빼주는데, 이때 라켓을 휘두를 때 어깨가 같이 돌아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어깨는 고정한 채 라켓만 뒤로 뺀다는 느낌을 가지면 좋다. 그리고 그대로 쭉 내려서 무릎과 공이 일자가 된 상태로 공을 맞히면 되는 것이 포핸드 스윙이다. 처음에는 낯설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기만 하면 즐겨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스윙법이기도 하다. 내가 설명한 딱 그대로만 진행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따라 유달리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였고, 그에 따라 스쿼시에서 흔히 발생하는 실수가 일어났다. 다만, 그에 따른 결과는 결코 흔하지 않았을 뿐이다.

 머릿속에 검은 안개처럼 가득 차오른 스트레스를 분출하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온 힘을 다해 라켓을 휘두르고 코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차례 발리를 진행했다. 한 시간 가량 혼자서 스쿼시를 진행하고 있을 때, 비로소 면접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한 기분 좋은 힘듦이 살짝 느껴졌던 그때였다. 나는 라켓으로 내 무릎을 그대로 내리치고 말았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소리들이 이어졌다. 라켓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관장님께서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 괜찮냐고 수차례 물어보는 소리, 누군가가 119에 전화하는 소리, 그러한 생경한 소리들과 함께 눈이 감겼다.

 눈을 떴을 때 나의 위치는 이름 모를 병원의 응급실 침대 위였다. 그리고, 어머니와 선생님께서는 의사 선생님의 침대 한편에 서서 경청하고 있었다. 두 분의 표정이 심각했던 것으로 보아, 뭔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잠이 너무 쏟아졌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7.

 근 1년 만에 최고로 과식을 했던 날은, 병실에서 맞이해야만 했던 A그룹의 면접날이었다. 족발과 보쌈 세트 그리고 곱창을 동시에 시켰고, 끊임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허무해졌기 때문에, 음식으로나마 공허함을 채워야만 했다. 규민이가 내가 먹는 것을 처음으로 막는 것을 본 것이 그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몇 차례 음식을 더 섭취하였다. 그리고, 침대 옆 쓰레기통을 향해서 그 날 먹었던 음식물들을 모두 토해버리고 말았다. 규민이는 이런 나의 모습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등을 두들겨 줬지만, 나는 그 온정의 손길조차 뿌리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다 ‘는 말과 함께 그를 병실에서 멀리 내쫓아버렸다.

 그러나, 내 진짜 문제는 과식증의 재발이 아니었다. 걸음걸이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단순 골절 정도로 여겨져 일반적인 외과적 진료 및 치료과정에 따라 몇 달 후 나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골절은 치료가 된 듯했지만, 나는 여전히 걸음을 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의 삶은 하강으로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8.

 정확히는 다리가 다 나았고,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서 다리를 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겁도 없이 평소대로 나가서 산책로를 걸어보았으나,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많은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유달리 부담스럽고 짜증 났다. 어쩔 수 없이 목발을 짚고 밖으로 나와야 했고, 그제야 시선은 다시 원래대로 무심 경한 상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떤 상태이든, 제대로 걷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자연스럽게 나는 걷기를 포함한 모든 운동을 포기했고, 폭식과 금식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와 분노가 들끓는 날에는 폭식을, 죄책감과 취업에 대한 미련이 떠오르는 날에는 금식을 진행했다. 어떤 방향이든 미련한 선택이었고, 불운할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꾸준히 지속된 나의 기행동과 폭언을 간신히 참아내던 규민이 조차도, 어느새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그가 좋아했던 나의 긍정성과 복스러운 먹는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웃음보다는 욕설을 더 자주 내뱉었었기 때문에 그의 결정에 결코 반발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받아들였고, 진심으로 그를 저주했다. 2년 가까이 이어져온 인연은 그렇게 가볍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가 현명한 선택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그게 차라리 맞다.

 일상생활과 나의 상황이 예전과 확실히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취업에 대한 끈은 결코 놓을 수 없었다. 다치기 전과 동일한 강도로 각종 서류들을 준비하고 다양한 회사들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이한 두 번째 공채시즌에서, 지난번에 부득이하게 불참해야만 했던 A기업에서의 면접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추가 합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른 취업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목발을 짚고 면접스터디에 나갔고, 품이 여유로운 여성 정장을 대여했다. 목발만 있다면, 그저 취업시즌에 불운하게도 골절상을 당해 목발을 집게 된 취준생일 뿐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목발에 대한 변명만 잘한다면 면접 자체도 문제없이 치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의자에만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 질문 및 답변 들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암기했다.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면접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나갔다. 돌발 상황, 압박 질문 등에 대한 위트 있는 답변들 또한 미리미리 준비를 완료했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일이 되었다.


9.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에서 직진 후 좌회전 바로 앞 K빌딩. 면접 순번은 두 번째, 시작 시간은 10시. 대기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예상. 3인 그룹면접으로 진행. 혹시 모를 가산점이 주어질 수도 있으니, 면접 장소에는 최대한 일찍 가는 것이 좋다. 또한 나는 몸이 불편한 상태이니 더더욱 일찍 가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전날 밤 머릿속으로 암송하며 잠들었던 내용이다. 계획대로라면 5시쯤 새벽같이 일어나 깔끔하게 준비를 마치고, 7시쯤 지하철을 타고 8시쯤 회사에 도착해서 혹시 모를 일찍 오는 면접관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과는 달리 회사에 도착해야 할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 입에서는 ‘굿모닝’ 대신 ‘망했다’라는 말이 아침인사로 나오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속도로 준비를 마무리하고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도 일찍 들어가는 것은 글렀지만 시간에 맞춰 들어갈 수는 있는 정도의 시간이었다. 광화문역에서 목발을 짚고 회사까지 가는 시간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20분 이상 걸릴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5호선에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광화문역에서 내려야 하는 직장인들이었다. 그리고 그 직장인들 중 일부는 유달리 몸집이 큰 남성들이었다. 그리고 그 몸집이 큰 남성들 중 일부는 내 목발을 굳이 밀치고 나서 지하철을 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예의 없는 사람들 중 어떤 한 아저씨 덕분에 나의 목발은 지하철과 역사 플랫폼 사이 좁은 공간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무뢰한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 혼자 ‘낀’ 목발과 함께 광화문역 7-3번 출구 앞에 서있게 되었다. 순간 열차 안에서 이 기이한 풍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느껴졌고, 이 출구를 통해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의 눈초리 또한 느껴졌다. 이들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빠르게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멀쩡한 왼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세게 힘을 주어 낀 목발을 잡아당겼다. 온 힘을 써서 목발을 당기고 나서 문득 옆을 보았다. 나로 인해 발생한 돌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역무원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제의 그 사이 공간이 아닌, 허공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바로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공의 어느 지점에 띄어져 있던 내 목발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해 보였던 그 목발은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3등분으로 쪼개져 버리고 말았다. 이때 다시 고개를 돌려 역무원이 차고 있던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침과 분침이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면접 30분 전이었다.


10.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목발을 짚고 걸었을 때보다 더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직진을 하려고 해도 걸음이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만 향해갔다. 긴장을 한 탓에 전신에서 땀이 쏟아졌다. 하지만, 걸음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었다. 한쪽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기이한 모습으로 불균형적인 서두름을 지속했다. 그리고 면접 5분 전에 간신히 면접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달리 커 보였던 목재로 이루어진 큰 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섰다. 나보다 앞서 온 면접자들과 인사팀 직원들 모두가 나를, 특히 나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들 중 일부는 한 인사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면접 진행을 위해 줄을 서있는 상태였다. 아마, 나와 같이 면접을 보게 된 그룹인 듯했기에, 자연스럽게 그 그룹으로 다가갔다. 신분증을 직원 분에게 보여주자, 마지막에 서라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면접시간이 되었고, 안내에 따라 면접 장소로 입장했다.

 면접관들은 예상과는 달리 내 걸음걸이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들 사이에 약간의 소곤거림이 있었지만 이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면접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운 좋게도 예상 범주에 있던 질문들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를 잘했던 탓인지 답변들을 거침없이 해낼 수 있었다. 다른 면접자들이 당황해 흘낏 바라볼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의 면접은 이내 막바지로 이르렀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연히 예상했던 마무리였기에, 준비한 답변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두 명의 면접자들의 행동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었다.

 첫 번째로 순서가 주어진 면접자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웅변을 하는듯한 큰 목소리로 본인의 입사 후 포부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음 순번의 면접자 또한 곧바로 일어나 아나운서 같은 정갈한 목소리로 본인의 의지를 불태우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일어서서 말을 하지 않으면 뭔가 이상해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목발은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의자의 등 부분을 집고 간신히 일어섰다. 하지만, 한참 동안이나 긴장하며 앉아있었던 탓인지 이내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일어섰으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말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 버리게 되었다. 당황한 듯 한 면접관 중 한 분이 급하게 면접 종료를 공표했다. 나는 다른 면접자들과 인사팀 직원이 간신히 부축해주어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인사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앞 순번 면접자에 어깨에 손을 대고 다시 줄을 서서 면접 장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피함이 전신에서 차오르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와중, 면접관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는 왜 일반인 면접에 와서 저런대, 우리 기업 장애인 전형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히 답변을 잘해가지고 더 헷갈리게만 만들고 말이야, 마지막에 저건 또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어.’ 그들은 작은 소리로 속삭였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유달리 그 소리가 크게 들렸었다. 다리를 절게 되면서 청력이 상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A그룹 면접 전형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원인을 명백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그 그룹의 원서를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탈락 원인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래 ‘메르비안의 법칙’ 말이다. 내가 그날따라 유달리 헤매고 면접 장소에 도착한 탓에, 옷매무새도 정돈이 안 되어 있었고, 화장도 살짝 번졌고, 머리도 흐트러졌으며, 땀도 이곳저곳에 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그것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절대 아니다. 절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이 글이 실제가 아니었으면 해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