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만하면 아직 입을 만하네.’
얼마 전 입고 출근했던 갈색 외투는 원래 버리려고 했던 옷이다. 20대 초반에 샀던 옷이라 거의 10년이 된 옷. 오래돼서 그런가 밑단이 살짝 내려오기도 했고, 30대가 된 지금 입기엔 좀 안 어울리나 싶기도 해서 이제 그만 입고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체 물건을 잘 버리는 성격이 아니라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은 원룸에서 살다 보니 잘 쓰지 않는 물건이나 입지 않는 옷들을 정말 큰 맘 먹고 과감히 버리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 옷은 버리지 못했다. 의류함에 내놔야지 하는 생각으로 집어 들기까지 했는데 끝내 문 밖으로 들고나가지 못했다.
엄마는 자기 옷은 몇 년째 산 적도 없으면서 나한테 예쁜 옷 사 주는 걸 참 좋아했다. 둘이서 외출하다 옷가게가 보이면 이리저리 구경도 하고 인터넷 서핑하다 저렴하고 예쁜 옷이 보이면 나한테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는지 묻기도 했다. 없는 형편에 엄마 자신을 위해서는 뭘 산 적 없으면서. 그 옷은 집어 들 때마다 ‘이거 둘이서 강남역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샀던 옷인데’ 하는 기억을 자동으로 불러일으켰다. 엄마는 본인이 젊었을 때도 워낙 멋쟁이였고 센스가 좋아서 예쁜 옷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 옷이 워낙 맘에 들어서 대학생 땐 참 열심히 입고 다녔고, 엄마도 참 흡족해했던 그런 옷이었다. 그렇게 선명하게 엄마의 기억을 소환하는 옷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버리지 않고 뒀더니 결국 입게 된다. 그래도 막상 입으니까 또 마음에 든다. 대학생 때 같은 생기 넘치는 그런 느낌은 이제 내게 없지만, 그래도 옷 자체가 유행타지 않는 심플한 스타일이라 한동안은 계속 입을 수 있을 거 같다.
신세 졌던 외갓집에서 독립해 나올 때 정말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짐을 되도록 줄이려고. 엄마와의 추억이 잔뜩 묻은 물건들도 참 많이 버려야 했다. 사실은 그 어느 것도 버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차마 버릴 수 없었던 물건들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챙겨 왔다. 아예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다. 엄마가 어느 날 파란색 얇은 겉옷을 사 왔다며 입어보라고 했다. 외할머니랑 둘이 외출을 나가서 내 옷을 사 온 모양이었다. 사실 별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엄마한테 왜 사 왔냐고 꿍얼대서 엄마가 좀 서운해했던 거 같다. 그게 엄마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사준 옷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좀 덜 맘에 들어도 너무 예쁘다고 고맙다고 열심히 입고 다닐 걸. 그 아픈 사람이 돈은 또 어딨다고 어떤 마음으로 그걸 나한테 사 왔겠어.
이제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중에 엄마 손때가 그대로 남아 있는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옷장 깊숙이 있던 바지들을 정리할 때 엄마가 손수 개 놓은 모양이 흐트러지는 게 그렇게도 아쉬웠다. 이거 이렇게 내가 건드려놓으면 엄마 손길 없어지는데. 이사 준비를 할 때도 엄마가 엄마 방식으로 정리했던 것들을 다 꺼내야 하는 게 너무 속상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정리를 잘하려면 물건을 과감히 버리라고 하는데, 이미 많은 물건을 버린 나는 이 이상 더 버릴 수가 없다. 어떻게 버려. 나는 못 하겠어. 그런데 물건이란 게 영원히 보존되기가 참 어렵지 않나. 엄마 흔적 남은 물건들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보기만 해도 엄마와의 추억을 자동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들을 언제까지고 보관할 수 있을까? 모두 버려야 하는 때가 혹시라도 온다면, 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