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토리 Mar 04. 2024

마흔 너머의 성장

무협 소설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사촌 오빠의 책장에 꽂혀 있던 영웅문 시리즈로 무협소설에 첫 입문을 했고, 그 뒤 여러 권을 찾아 읽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이 없어 접어놨었는데, 웹소설이라는 걸 알게 된 뒤 새로 접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는 한글로 된 책을 구하기 어려워 한국에 갈 때마다 여러 권 엄선해 가지고 와서 아껴두고 읽었는데, 요즘에는 앱으로 바로 볼 수 있으니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읽게 되는 글의 종류는 예전과 꽤 달라졌지만 말이다. 


잡다하게 여러 가지를 읽는데, 요즘 무협에도 존재하는 회귀, 환생, 빙의 등을 거쳐 쑥쑥 강해져서 다 때려 부수고 다니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보다는 과거든 타고난 자질이든 뭐 하나 부족했던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커가는 성장형 소설을 좋아한다. 


무협이 아니라도 대체로 성장형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이상하게 무협 소설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된다. 최근에 꽂히게 된 소설이 하나 있는데, 나는 그걸 카페인에 중독된 사람이 빈 커피잔을 잡아채는 것처럼 회의 사이 비는 2-3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수시로 손을 뻗어 읽어대곤 했다. 


성장형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른 소설이나 매체와 다르게 무협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가장 첫째를 꼽으라면 바로 주인공의 성장이 개인의 성취, 노력과 크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부에 형성된 기를 다루는 내공이라던가, 끊임없는 수련과 고난을 겪을 때 얻게 되는 깨달음으로 인한 무공증진. 죽을 고비를 거치면서도 결국 몸을 움직여 외부의 적을 가르고야 마는 일념. 고통이 기연이 되기도 하는 경험. 


이런 소설들의 마지막이 어떤 상황의 해결, 혹은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주인공의 삶에 대한 어떤 통찰, 깨달음이라면 화룡점정이다. 


특히 그들이 자신의 내부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다스리는 장면은 꽤 오랫동안 곱씹으며 읽어보는데, 무협 소설의 설정상 판타지처럼 경험치가 올랐다고 갑자기 몸에 힘이 솟거나 스킬을 쓸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서 주인공의 내부 갈등과 해결의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을 읽고 나면 나는 스스로를 문득 돌아보게 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곳저곳 아프고 쑤시는 몸, 들쑥날쑥하는 감정과 기분. 안개라도 낀 듯 희뿌연 하게 답답한 머릿속. 삶을 움직이게 했던 목표는 어느덧 흐릿해졌고, 관성처럼 흘러가기 시작하는 하루. 


예전에는 달리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했다. 매일이 치열했고, 닿고자 하는 목표가 하늘의 별처럼 멀어 보이긴 했지만 뚜렷하긴 했다. 


나를 자꾸만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우울함과 자기혐오를 떨쳐내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서 스스로를 증명해내려고 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세계가 너무도 거대해서 그 압력을 이겨내고자 어떻게든 더 알려고 배우려고 몸부림치기도 했다. 

한 달 치 생활비를 걱정하고, 입에 들어갈 끼니를 돈으로 매번 셈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한 몸 누울 공간 하나 구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웠다.  

무수히 만나고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내 편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도리어 배척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눈치를 보고, 잘못 손을 내밀었다가 후회한 적도 여러 번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나이만 먹는 게 아닐까 조급해져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건강보다는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정신력으로 버티는 게 일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흔을 넘겼다. 


내게는 이제 집이 생겼고, 매달 꾸준히 배를 불리는 통장 덕에 다음 달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은 늘었지만, 더 이상 그게 악몽처럼 나를 짓누르진 않았다. 

일이야 고되긴 해도, 내 일상을 좀먹을 수준은 아니다. 


현재의 내게는 딱히 어떤 문제가 없다. 


그런데 딱히 내가 더 여유로워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도 못했고, 나는 여전히 밤에 잠을 설치고, 그렇게 새벽에 깰 때면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어느 새벽에는 검색창에 무기력증이란 단어를 써넣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증세들이 연관되어 결과창에 나타나고, 번아웃 증후군이나 우울증이란 말이 덩달아 따라왔다. 사람마다 이겨내는 방법이 다르지만,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산책, 명상, 좋아하는 취미 찾기 등등을 제시하는 글들이 많았다. 


나는 일주일에 3-4번 운동을 하러 가고, 매일 아이들의 등하교를 위해 숲길을 걷는다. 하루 일정 때문에 식사 때를 놓치는 게 문제가 될 순 있지만, 딱히 식습관이 나쁜 편도 아니다. 

가만히 뭘 보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시간이 날 때 하는 취미들도 여러 개다. 아무래도 명상을 해야 하나? 

아니면 가끔 사람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이 직장 생활이 문제인가? 

당장 내일 돈 걱정 없이 은퇴를 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까. 


이제 살만해지니 뇌에 기름이 끼기 시작하는 건지, 아니면 마흔 너머 찾아온 사춘기 혹은 중년의 위기인지. 


딱히 과거를 떠올리며 그때가 좋았다,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과거의 어느 순간을 돌아봐도 돌아가고 싶은 때는 전혀 없거니와,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내가 딱히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능숙하게 인생 2회 차를 살아낼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지금과 내 앞에 남아있는 시간들이 고민된다. 

매일 같은 것만 반복해서 그런지 도리어 백치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중에 내가 이렇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지 고민했다는 사실마저 잊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방향성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거 하나만은 이루겠다, 지키겠다,라는 어떤 목표 혹은 신념.  

그것도 아니라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수련. 


그래서 무협 소설의 주인공을 힐끔거리게 되나 보다. 

죽음과 생의 경계를 수시로 들락날락 거리는 그 이야기 선에서 너는 어떻게 주회 입마를 극복하고 또 한차례 성장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아니, 불현듯 찾아오는 영감을 찾을 게 아니라 매일 현실에서의 수련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성 (姓:surname)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