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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an 15. 2021

엄마

엄마와 시청역에서 볼일이 있었다.

운전을 못하는 우리는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침에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화장을 조금 하려다가 어차피 마스크 쓸 거니까 세수만 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얼핏 보일락 말락 하는 눈썹을 그렸다.


나름 잰걸음으로 움직였는데도 지하철을 타려고 보니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겠다 싶었다. 지하철에 타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냐는 물음에 10여분 늦겠다 대답을 하니 엄마도 늦을 것 같다는 대답에 다행스러워져 슬몃 웃음이 났다.


바깥에 나와 이렇게 지하철 일이 많지 않아 그런지 북적대는 사람도 낯설고 자칫 내릴 곳을 놓칠 것만 같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환승하러 가는 길은 또 왜 그렇게 헷갈리고 어지러운지 정신 놓다가는 영 딴 곳으로 가겠다 싶었다.


10년 전 아니 그보다 더 훨씬 전에도 걸어 다녔던 곳을 혼자서 이어폰을 꽂고 걷는 걸음걸음이 순간순간 그 시절의 나를 생각나게 했다.


시청역에 도착해서 출구를 더듬거리며 찾아가는데 그 옛날에도 이미 오래 묵었던 시청역은 온몸에 파스를 덕지덕지 바른 이 마냥 여기저기가 낡았다. 곧 바스러질 것만 같아 왠지 서글펐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제 곧 내리신단다. 어디로 나오실까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쩌어기서 엄마만 한 체구의 꽤 나이 들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 걸어온다.


비슷하지도 않은데 나는 고연히 가슴이 저릿하며 저렇게 늙은 사람은 우리 엄마 일리 없어, 엄마이면 안돼 라고 되뇌며 도리질을 했다. 나를 슥 지나가는 여성을 뒤로하고 다시 엄마를 기다렸다.


그제야 멀리서도 고개를 빼어 나를 찾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다. 한 달 여전에 봐놓고 무척이나 오랜만인 것만 같은 느낌이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장갑을 왜 안 꼈냐며 타박을 한다. 별로 춥지도 않은걸 뭐 하며 둘러대며 우리는 행선지로 향했다. 근처에 20대의 첫 직장이 있었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서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걸었다.


엄마와 나는 걸으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 말이 끊이질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가 듣기 좋아하는 것들만 추려서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엄마 앞에서 마냥 조잘조잘 대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볼일을 보다 보니 점심때가 됐다. 식당 앞에 회사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줄까지 서서 먹냐는 엄마의 말에 나도 여기서 회사 다닐 적에는 저렇게 줄 서서 먹었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웃으며 너 한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고 싶으냐 물었다. 아유 엄마, 우리 큰 애 태어날 정도인 10년 전으로 돌아가서는 될 일이 아니유, 20년 전으로는 돌아가야 지금 이렇게 폭폭하게 사는 모양이 달라질 기미라도 보이지, 하며 나는 더 크게 웃어 보였다.


볼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는 슬슬 배가 고파졌지만 친정인 의정부에서 여기까지 나오기 쉽지 않은 엄마와 아이들 놔두고 나오기도 쉽지 않은 내가 또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라 볼일을 대강 마무리지어놓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볼일을 끝내고 회사에 들어가서 처리할 급한 일이 있던 엄마를 위해 바로 앞의 덮밥집에 갔다. 허기지고 왠지 시간적인 여유도 없어진 우리는 대충 메뉴를 보고 오징어덮밥을 시켰다.


된장국물을 홀짝이고 있자니  뜨끈한 오징어덮밥이 나왔다. 슥슥 비벼 한 입 먹었더니 시장이 반찬인지 꽤 맛있다. 엄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를 보던 엄마는 엄마 밥을 몇 숟가락 떠서 내 그릇에 얹었다. 그리고는 안 그래도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이 평소보다  더 빨리 먹었다. 엄마는 한 그릇을 고새 비우고 일어나 냉수와 온수를 섞어 뜨뜻하게 내 몫을 떠 왔다.


나는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엄마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일어날 채비를 한다. 계산은 내가 할 테니 엄마 어서 가시라는 내 말에 엄마는 엄마가 사줘야지 하며 찡긋해 보인다. 계산을 하고 금세 옷을 입은 엄마는 먼저 갈 테니 너는 천천히 다 먹고 오라며 일어났다.


이미 배가 불러왔지만 엄마 말대로 해야 할 것 같아 알았다고 말하고 엄마와 인사를 했다. 엄마가 가고 혼자 앉아 밥을 끝까지 다 먹었다. 그리고 엄마가 테이블 위에 놓고 간 껌을 씹었다.


식당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밥 다 먹었냐고 묻는다. 한 톨도 안 남기고 다 먹고 나왔다고 말하며 엄마도 웃고 나도 웃었다.


그렇게 집에 오는 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사 가지고 집에 들어가니 빵만 반길 줄 알았던 아이들이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들러붙는다.


엄마엄마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방금 전까지 같이 있던 우리 엄마가 계속 생각이 난다. 엄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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