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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03. 2021

꼭 혼자 먹어라

기프티콘

지난 내 생일 내 친구가 기프티콘으로 커피 두 잔과 케이크 세트를 보내줬다.


친구는 무덤덤하게 기프티콘을 던져주더니 꼭 혼자 가서 먹으라는 말을 덧붙였다. 커피도 두 잔, 케이크도 두 개인데 혼자 가서 힐링하고 오라는 친구의 말을 나는 찰떡같이 이해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누군가와의 릴레이하는 대화 같은 것 없이, 오롯이 혼자 주문을 하고 혼자 테이블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오라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데 그러기가 참 쉽지 않은 삶을 사는 못난 친구에게 선물과도 같은 홀가분한 시간을, 내 친구는 주고 싶었던 것이겠지.


당시에 나는 씩씩하게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는 그런 시간을, 꼭 보내겠노라고 친구와 나 스스로에게 엄지손가락을 꾹 찍어 누르듯 약속했다.


커피 두 잔에 야무지게 빨대를 꽂아 쭉쭉 빨아먹고 케이크를 포크로 얌전하고 우아하게 쪼개 먹는 나를, 남편에게 나 혼자 나갔다 올 테니 애들 좀 부탁해라고 말하며 집을 나서는 나를, 친구에게 찰떡같이 대답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상상하면서.


며칠 전 무지 더웠던 어느 오전 아이들이 여지없이 버글거리는 집을 정리했던 남편과 나는 아침부터 땀을 한 바가지 쏟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얼굴이 벌게진 우리 둘 다 차가운 커피가 간절했는지 이구동성으로 커피를 찾았다.


거기서 나는 친구가 줬던 기프티콘을 생각해버렸다. 지금 써도 될까. 친구에게 그리고 그것 좀 아껴뒀다가 정말 혼자 시간을 보내면 어떻길래 이러는가 싶은 내게 면목이 없어지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며 지금 쓰려는 이 기프티콘이 대관절 어떤 약속을 머금고 있었는지 남편에게 볼멘소리로 내뱉었다.


천국처럼 시원한 그곳에 당도해서 주문을 하려는데 점원이 기프티콘에 있는 내용 그대로 주문을 하겠냐 물었다. 왠지 메뉴만이라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이 내 친구가 내게 바랬던 장면의 한 조각이라도 덜 다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얄팍한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끝내고 기다리며 오전의 느긋함을 즐기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그 언저리에 앉아 있는 나를, 고물 노트북이라도 들고나가 두들겨보는 나를 상상해보았다.


복잡한 것들은 잠시 잊고 나는 거기서 여유로운 척을 하며 등을 펴고 커피와 케이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잘 포장된 그것들을 들고 천국과도 같은 그곳을 나섰다.


푹푹 찌는 날씨에 집까지 가는 멀지 않은 걸음 사이 커피가 다 녹아버릴까 봐 더 종종걸음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테이블에 커피와 케이크를 내려놓고 게임에 열중하던 아이들을 불러 포크 하나씩을 쥐어줬는데 초콜릿 케이크나 제일인 줄 아는 놈들은 시큰둥하다가 자리들을  떴다. 단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남편 또한 뒤로 하고 결국 나 혼자 테이블에 남았다.


생각보다 많이 녹지 않은 커피는 시원하기 그지없었고 케이크는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혼자 다리를 꼬고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케이크를 쪼개 먹는 모양새는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다른 건지 아닌지 생각할 필요는 굳이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은 맛있는 커피를 홀짝이고 맛있는 케이크를 쪼개 먹으며 희미해졌다. 그렇게 되었으니 친구야, 꽤나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으니 되었지 않니, 라고 멋쩍게 웃어버리게 되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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