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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영 Jun 23. 2023

감정은 존재의 집, 지금 기분은 어때?


느꼈던 감정을 소개할 일이 있었다. 언제의 감정을 이야기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니, 가장 먼저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출산 직후, 느꼈던 불편한 감정 종합세트.


그때의 감정을 몸과 마음, 머리에서 꺼내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눈에 보이게 놓으니 그 시절, 그 공간에 있던 나와 마주 앉은 느낌이었다. 감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종이에 집을 짓고 감정을 넣었다. 감정에 색이 있다 하여 색도 입혔다. 갑자기 먹먹해졌다.


‘내가 이런 감정 안에서 살았구나!’


나의 집에는 희망과 생기 넘치는 초록, 노랑이 아닌 파랗고 빨간 감정으로 가득했다. 활력과 쾌적함이 낮은 감정이다.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왜 하루하루가 그리도 버거웠는지 보였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생명의 삶이 나에게 달려있다는 부담감에 짓눌렸다. 모유 수유는 아이와 나의 관계가 생존과 직결된 관계라고 두 시간마다 알려주는 부담스러운 알람이었다. 그 알람을 끄고 자유롭고 싶었다. 어렵게 재운 아이가 내려만 놓으면 깨서 세상의 모든 소리에 예민해졌고 신경이 곤두섰으며 피곤에 찌들었다. 이런 나와 남편의 생활차이를 느끼자 억울했다.

동시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실망스러웠으며 창피했고 아이에게 한 없이 미안했다. 내가 알던 나가 아니었기에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쏟아져 내렸던 날들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대로 맞고 서 있었다. 예보 없이 내리는 소나기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처럼.

맑은 눈, 보드라운 살갗, 아기만의 평온하고 부드러운 향기,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움씰거리는 입술 그리고 숨결....

꼬물꼬물 새 생명이 주는 기쁨을 감정의 장막에 가로막혀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빨라 아깝다고 했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막막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운 아침을 몇 번쯤 맞이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까 머리셈 하다가 더 깊은 절망에 빠지곤 했다.

하는 수 없이, ‘터널을 나갈 때까지 숨을 참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어린아이처럼 턱턱 막히는 숨을 참고 참으며 버텨냈다.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꼈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답할 수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누군가의 나, 역할로서의 나만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그것이 두려웠다고.

나라는 존재를 빨래 짜듯 짜고, 남은 물기마저 탁탁 털어버린 느낌이었다. 빨랫줄에 걸린 나는 점점 더 말라 바스러질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때 나에게 “너 지금 막막하구나, 걱정되는구나, 두렵구나!”, “힘들지? 너무 애쓰고 있어.”,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니? 그럴 수 있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 “잘하고 있어. 걱정 마”라고 위로해 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꾹꾹 참지만 말고 내가 나의 등을 토닥여주고 꼬옥 안아주며 “애쓴다”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감정을 표현하고 수용할 수 있었다면, 오래 헤매지 않고 빛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꼈을 것이다. 모성애가 부족한 내가 아니라 엄마 역할을 잘하고 싶은 내가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참고 말없이 묵묵히 견디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던 나는 표현할 줄 몰랐다.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바라봐 준 적이 없기에 감정이 몰려왔을 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비난하고 감정을 꾹꾹 누르기에 바빴다. 더 이상 나오지 말라고 밟았다.


하지만 감정은 누르는 것을 가장 싫어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일은 가장 좋아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그냥 가는 법은 없다. 돌봐주고 수용해 줄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봐줄 때까지 마음 안에 있다. 그리고 불쑥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감정이 존재로 들어가는 핵심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를 알게 된다. 특히 다루기 힘든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잘 돌보지 못한 내가 거기에 서 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이제는 돌봐준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을 공감, 수용해 주고 이해와 인정의 말을 해주고 돌아온다.

그럼 그 감정은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감정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감정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감정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웠다. 여전히 감정을 묻고 표현하는 일에 서툴지만 계속 연습한다.


 “지금 기분은 어때?”


감정은 존재의 집이고 감정을 묻는 것은 존재의 집에 노크하는 일이다. 자주 기분을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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