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급한 일,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로 분류할 수 있다. 시간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게는 급하지 않은 일부터 하는 버릇이 있다. 이성의 뇌가 '아니야, 지금은 먼저 할 일이 있어'라고 말하지만, 몸은 그 말을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그런 일을 '삽질'이라고 부른다.
내가 하는 삽질은 정리 욕구와 관련돼 있다. 특히 어떻게 하면 독서 노트를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한다. 독서 고수들은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까? 그것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고 검색한다. 그리고 독서 노트를 만든다. 워드나 엑셀로 만들면 그나마 금방 하지만 어떤 도구를 배워야 하면 며칠은 끝장이다.
얼마 전 그런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노션'을 배우는 일이었다. 노션은 계획, 정리, 협업의 도구다. 독서기록, 메모, 수집, 일정 관리, 모임 페이지 등을 관리할 수 있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딱이었다. 그런데 나만의 노트를 만들려면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고 기능을 배워야 한다. 시간이 훅훅 간다. 금세 아이들을 픽업할 시간이 되고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된다. 멈추어야 하는데 멈추지 못한다. 계속한다. '오늘은 시켜 먹어야겠구나.' 인심 좋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주문한다. 이런 집중력과 열정이 우선순위에 따라 나오면 좋을 텐데 매번 그렇지 못하다. 난 삽질에 능하다.
김민식 작가의<매일, 아침 써 봤니?>에서 내 삽질을 설명해 주는 문장을 만났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라는 영화를 보면, 톰 크루즈가 계속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하면서 미션을 수행합니다. 가만 보면 삽질도 그런 삽질이 없어요. 게임이란 기본적으로 삽질의 반복입니다. 삽질을 통해 '아, 저 길로 가면 죽는구나', '보스를 만나기 전에 폭탄 3개는 모아야 하는구나', '이번 판에서는 방어력을 꼭 업그레이드해야 하는군.' 이런 걸 배웁니다. 특히 롤플레잉 게임의 즐거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게임을 통해 배웁니다." 책에서는 이것을 놀이의 영역이라고 했다. 놀이를 통해 실패를 경험하고 우연한 성공의 즐거움을 맛보라고 한다. 꾸준한 실패와 우연한 성공. '그래! 나의 삽질은 놀이이자 배움이야.'
나의 독서 노트는 여러 번 바뀌었다. 스프링 노트에서 워드, 엑셀, 다시 바인더로. 그리고 마침내 노션이라는 도구에 이르렀다. 도구가 바뀌는 만큼이나 노트 구성도 업그레이드됐다. 단순히 인상 깊은 구절과 생각 정리를 넘어, 독서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단계별로 필요한 기록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독서 노트가 책 읽는 지도 역할을 해준다. 삽질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얼마나 괜찮은 일인가?
시간 낭비라고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난 삽질을 도구를 만드는 일이고 도약을 위한 투자라고 인정키로 했다. 이제 당당하게 말한다. "저 이만 삽질하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