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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따뜻해지는 세상, 황의록 관장님

by 바다기린

한국미술재단 황의록 관장님과의 첫 만남은 2023년 2월, 갤러리 카프에서였다. 임지영 선생님이 진행하는 예술감성수업이 끝난 후, 관장님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 있는 목소리로 지방 초등학교에 '작은 미술관'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좋은 취지의 교육사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얼마나 기뻐했고, 큰 변화가 있었는지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를 듣자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따뜻해졌다. "어린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나면 삶이 달라진다"는 관장님의 믿음이 내게도 스며들었다.

황의록 관장님_한국미술재단 아트버스카프

관장님은 경영학 교수로 강단에 서셨던 분으로 처음부터 예술 분야에 계셨던 건 아니다. 언젠가 젊은 작가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며 "작가들이 마음 놓고 전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하셨고 갤러리 카프를 만드셨다. 처음에는 어른들의 삶에 예술을 심으려 했지만, "어른들의 삶은 이미 굳어져 변하기 어렵다"고 느끼셨다고 한다. 작가들을 만나며 그들이 그림 그리고 살고 싶단 생각을 처음 한 게 초등학교 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방향을 바꿔 "초등학생들이 예술 속에서 성장하도록 작은 미술관을 만들어주자"고 결심하셨고 실행에 옮기셨다.

한국미술재단이 기증한 학교 안 작은 미술관

전국 600개 학교에 작은 미술관 만드는 꿈을 품은 관장님은 오늘도 열정적으로 나아가고 계신다. "예술이 삶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며 우리에게 함께 할 수 있다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이끄신다.


아직 직접 그 작은 미술관이 자리한 학교를 방문하지 못했지만, 갤러리 카프에서 전시를 볼 때마다 그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학교 복도에서 그림 앞에 멈춰 생각에 잠기고, 친구들과 그림을 두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이 그림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관장님의 믿음에 깊이 공감하며, 나 역시 언젠가 작은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 그 풍경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_송승호

황의록 관장님을 떠올릴 때면 송승호 작가의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나무를 생각하게 된다. 척박한 땅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관장님 역시 수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미술관 사업을 이끌어 오셨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 미술관을 만들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니 변화가 일어났다"는 관장님의 말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나무의 강인한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그림 한 점, 말 한마디,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삶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만든다. 관장님의 여정에 함께하며, 나 역시 그림 곁에서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한 걸음씩 하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 걸음 다가설 때, 예술은 그 마음들을 천천히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오늘도 나는 그림 곁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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