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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May 13. 2022

양말에 구멍

선인장의 꿈

선인장의 꿈 연재 -05

* 짧은 단편 소설 



    양말에 구멍


    시원한 공기가 발가락 사이에 스며들어 고개를 숙이니 양말에 구멍이 나 있었다. 애당초 구멍이 생길 낡은 양말이었는지, 날카롭게 깎은 발톱 때문에 구멍이 난 건지 그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엄지발톱 쪽에 생긴 구멍이 눈에 띄어 그는 양말을 바꿔 신어봤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양말을 좌우 바꿔 신어도 구멍은 여전히 엄지발톱을 드러낸다. 그는 몰랐다. 양말을 좌우 바꿔 신어도 구멍은 절대 새끼발가락 쪽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잘린 엄지발톱을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당혹스럽고 신기했다. 그는 구멍 난 양말을 옮겨 신으며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그에게는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는 인기 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 팀으로  2년간 함께 일한 여자가 있었다. 매번 머리를 기르겠다고 말하는 그녀는 두 달에 한 번꼴로 미용실에 갔는데, 다녀올 때마다 머리카락이 반 뼘씩 짧아져 있었다.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를 때면 모두의 의견을 골고루 받은 다음, 그녀가 가고 싶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줏대가 없다고 말했고, 그녀는 출근길부터 골라뒀던 음식을 먹으며 ‘저는 원래 줏대 같은 거 없어요. 하하’라고 답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무례하게 굴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그는 봤다. 웃음기도 없는 그녀의 눈을 그는 봤다. 감독이 그녀 앞에서 얕은 지식을 뽐낼 때면 ‘아, 정말요. 나는 전혀 몰랐네.’라고 말했다. 분명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였는데 말이다.


       그런 그녀도 두 달에 한 번꼴로 화를 냈다. 누군가 그녀가 들고 있던 장비를 호의로 들어주거나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캐물을 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어떨 땐 화가 난 이유를 영 알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예상하기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가 ‘최하위 피식자’를 연기하는 ‘최상위 포식자’ 같다고 느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고, 모두가 그녀를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만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잇속을 챙길 줄 알았다. 


      얼마 전, 그의 양말에 구멍이 났을 때 그녀는 촬영용 테이프를 건네며 구멍을 막으라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양말을 바꿔 신었는데도 구멍은 여전히 엄지발가락 위에 있다고, 신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녀는 양말은 원래 그렇다고 간단하게 답했다. 구멍이 엄지발톱에 있든 새끼발톱에 있든 무슨 상관이냐고. 어차피 이미 뚫린 구멍이라면 어디에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그녀는 그의 발톱이 강철이라며 그의 구멍 난 양말과 발톱을 농담거리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테이프로 기워 신으라고 말하며 또 웃었다. 


      그는 늦은 새벽 집에 돌아와 어디에 있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구멍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렸을 적,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하며 그의 인생에서 사라진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이혼 후 그의 엄마는 2주에 한 번꼴로 그를 보러 왔다. 함께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10살이었던 그는 엄마와 휴게소 튀김 우동을 먹으며 엄마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구나 생각했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지워야 하는 것이다. 상대를 지우지 못하면 본인을 미워하게 된다. 그런 일을 하게 된다. 하고 싶지 않아도. 그는 구멍이 날 때가 된 양말을 신어놓고서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발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2년을 매일같이 바왔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떨 땐 참 수다스러워서 그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게 하다가 실은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건 편협한 짓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머리를 기르겠다는 그녀가 왜 미용실에 다녀오기만 하면 짧은 머리로 나타나는지 같은 것. 인생에서 사라진 엄마라던가, 옮겨 신어도 옮겨지지 않는 양말의 구멍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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