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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May 23. 2022

부산행 버스

선인장의 꿈 - 06

선인장의 꿈 연재 -06

* 짧은 단편 소설 




    복잡했다. 

   주말 저녁 6시를 넘긴 고속버스터미널은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재우와 나는 각자 핸드폰에 뜬 무의미한 알람들을 확인하며 버스 시간을 기다렸다. 혼자 버스에 올라 쿰쿰한 냄새를 견디며 좌석을 찾아 앉았다. 재우는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한자리에 서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를 바라봤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자리에서 그의 얼굴을 오래도록 보는 건 편하지 않다고. 그는 어떤 마음일까. 10초 정도 손을 흔들다 팔을 내려놓고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그렇게 2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차는 서서히 출발한다. 재우가 보이지 않을 만큼 버스가 움직이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헤어지기 전 그와 포옹하지 않았다. 그리고 섹스도 하지 않았다. 


       2년 전, 부산으로 발령이 나면서 그와 나는 기약 없는 장거리 연애를 지속했다. 발령이 날 당시, 우리는 4년째 서울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내가 부산으로 가기 전 결혼을 하는 게 어떠냐고 하셨고, 친구들은 우선 지켜보라고 했다. 우리는 애초에 결혼 생각이 없었기에 누군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면 의례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발령받은 부산의 연구소는 생각보다 바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보자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쉽게 저버렸다. 3개월에 한 번, 1박 2일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고 ‘보고 싶다’는 말이 서로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말을 아꼈다. 그가 부산에 오는 날도 있었는데, 대부분 내가 서울로 올라갔다. 4년 동안 그와 살았던 집에 머물며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호텔을 잡았다. 그의 집에서 느껴지는 낯선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재우는 숙박료가 아깝다며 ‘우리’의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호텔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 거라 믿었다. 그의 집은 2년 동안 조금씩 바뀌었다. 내가 없는 채로.


   나의 물건은 조금씩 사라졌고, 그의 샴푸 취향이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던 식기구들이 낡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졌다. 갑자기 그는 식물을 키우는데 관심이 생겼다며 집 안을 온갖 식물들로 채웠으며, 그것이 나에게는 낯설었다. 재우는 식물들이 풍기는 상쾌함이 좋다며 나에게도 식물을 키워보라고 추천했다. 그의 집에 갔을 때 맡았던 냄새는 재우가 말하는 ‘상쾌함’이 아닐까. 호텔 침대에 누운 재우는 나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집으로 갈 줄 알고 창문을 안 닫고 나왔어”

“창문을 왜 열어두고 나왔어?”

“식물들한테 통풍이 중요해서 조금 열어두었는데, 아직 밤공기는 차잖아. 그래서 신경 쓰여” 

“그래. 집에 들어가” 

“같이 가자”


   재우는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호텔에 있겠다고 이상한 고집을 피웠다. 낯선 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살갗 깊숙한 곳에서 서서히 올라왔다. 그럴수록 나는 도망쳤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멈추어 섰다.  버스 기사는 15분 뒤에 출발한다고 말하고 담배 피우러 나갔다. 재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씻고 있는지, 아니면 저녁을 먹는지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가 평생토록 내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화가 올 것을 알면서도 짓궂은 상상을 하고야 만다. 2년 전, 도망치듯 부산으로 떠났었다. 연구실에서는 나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아이를 지웠다는 사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진실. 아니 사실은 나의 선택이라는 자책.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생명이 될 수 있는 무언가와 이별했다. 사실 우리는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불안과 심연은 우리 사이에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이 모든 것이 나로부터 기인한다는 착각이었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였고 불빛이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재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조용한 버스 안의 공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또한 나처럼 생각할까. 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그도 내가 평생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할까. 아니라면 새로 맞이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있을까. 재우를 떠나 부산으로 거처를 옮긴 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고, 몸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이별할 거라 생각했다. 재우는 나의 비겁한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가 서울로 올라가지 않으면 부산으로 내려왔고, 서울에 도착하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떠났냐고 다그치지도, 보고 싶은데 왜 오지 않느냐고 캐묻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 미안, 식물들 물을 주느라고 전화 온 걸 못 봤어. 잘 가고 있어? 


    재우에게 문자가 왔다. 세상은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고, 재우도 한자리에 존재하는데 많은 것을 상실한 나는 어둠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모든 문제는 나 때문이라는 착각, 그것이 불러오는 서글픔. 나도 견디지 못하는 예민을 바라보는 재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고속버스터미널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한다. 그에게 안겨 숨을 나눠야 했다. 지금이라도 버스를 돌려 재우에게 가고 싶다고, 그에게 안아달라 말하고 싶다. 


   수술을 마치고 허리를 붙잡으면서 탔던 그날을 기억한다. 아이를 지우며 ‘우리’도 지웠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얼음장같이 얼어있던 나의 손을 자신의 팔 안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를 미워하지 말자고 그 기억이 왜 부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생각난 지 모르겠다.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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