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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May 06. 2022

건강하세요. 언제나

선인장의 꿈

선인장의 꿈 연재 -04

* 짧은 단편 소설 



    - 관리자 아이디 : DOCU_P_0521!!##!! 

    회사 마지막 날, 후임자에게 넘겨줄 인수인계 자료를 만든다. 다행히 일이 많진 않다. 전임자가 남겨 놓은 자료에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하면 그만이다. 전임자의 전임자, 얼굴을 모르는 전임자들이 남겨놓은 자료들을 정리한다. 나 또한 후임자의 얼굴을 모르는 채 그를 위한 주요 사항들을 정리한다. 이 회사의 누구도 나를 모른다. 입사 날 안내해 주었던 인사부 직원 또한 얼마 전 퇴사했기 때문에 누구도 나를 알지 못 할것이다. 그저 2019.12.18-2021.05.21 약 1년 반 동안 근무했던 계약직 직원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누군지 모른 채, 숫자와 이름을 통해서 말이다. 


    2019.12.18 겨울이 시작되던 날, J 회사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J 회사는 콘텐츠 회사였는데, 회사 운영비 조달을 위해 포털사이트 DB(데이터베이스) 관리를 맡고 있었다. J 회사에 입사한 나는 포털사이트 하청업무를 해야 했다. 단순 작업이었다. 그러니 이 업무는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엔진에 걸릴 수 있도록 인물들의 정보(데이터)를 관리자 프로그램에 정리 및 저장을 하면 되었다. 포털사이트에 요청이 오기도 하고, 뉴스를 통해 취합된 정보로 정리하기도 했다. 정치인부터 가수, 작가, 배우 등 다양한 인물들의 정보를 신규등록하거나 업데이트해주면 되었다. 단순했다. 업무의 매력은 누구도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유명하지 않은 극단에서 연출을 맡고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부업 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다른 책상에 비해 복도로 튀어나온 나의 것은 출입구에 가까웠고 사람들이 오 갈때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발을 시리게 만들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짝지어 식당으로 향하는데, 누구도 나에게 함께 밥을 먹겠느냐고 제안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와 업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은 포털사이트 직원뿐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했다. 답장을 받는 포털사이트 직원 또한 나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저 메일의 머리말 - “안녕하세요 J 회사 DB 담당자입니다” - 처럼 난 DB 담당자일 뿐이었다. 얼굴을 알지 못하는 전임자들과 나의 얼굴이 하나로 겹쳐지는 끔찍한 상상을 하곤 했다. 


    빠른 시일 내 업무에 익숙해졌다. 전임자가 남겨놓은 문서들을 보며 어려움을 해결했다. 문제에 대응해야 하는 메일 템플릿, 데이터 요류 시 대처 방법, 중복 데이터 처리 사항 등등 전임자가 정리해놓은 상황을 제외한 어떠한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어려운 것이 없었다. 나의 인생도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쉽게 흘러갔다. 글 쓸 동력을 잃었고 지친 몸을 애써 이끌었던 뜨거움도 식어갔다.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듯 미래가 없는 일에 현재를 갈아 넣고 있었다. 함께 꿈을 꿨던 친구들도 점차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극단을 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무대감독은 돈을 많이 준다는 건축회사에 들어갔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으나 그 또한 풍요로운 생활을 놓지 않았으며 이상과 멀어진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었다. 우리 모두 조소 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닌 채 헤어졌다 만났다는 반복했다. 누구도 먼저 행동하지 않았다.


    전임자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전임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입구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바탕화면 한 쪽에 전임자가 남겨놓은 ‘회사 주위 맛집 리스트’가 있었다. 홀로 점심시간을 보낸 덕에 상대방의 취향 걱정 없이 리스트를 정복했다. 리스트 중에는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 대기해야 하는 음식점도 있었고, 어떤 이유인지 문을 닫은 가게도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리스트 덕분에 외롭지 않게 점심시간을 보냈다. 엑셀의 작성자 ‘안범진’, 전임자의 이름과 마주했다. 안범진이구나. 그의 업무일지를 봤다. 비슷한 양의 데이터를 생성했고, 똑같은 방식으로 메일에 답변을 보냈다. 안범진의 시간과 현재의 나의 시간은 비슷하게 흘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포털사이트에서 인물등록 요청 메일이 왔다. [안범진 작가 등록],[안범진 작가 - ‘건강하세요, 언제나’ 출간] 메일함을 열어 안범진 작가의 생년월일, 성별, 사진을 보았다. 혹시 전임자인가. 옆모습으로 찍힌 안범진 작가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만약에 이 사람이 전임자라면 흥미로운 사실과 마주했다. 그동안 이름만 보고 남성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라는 점,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줄 알았는데 비슷한 나이대라는 점, 나와 비슷한 상황인 줄 알았는데 글을 썼다는 점. 그날 나는 근처 대형서점에 가서 ‘건강하세요, 언제나’를 샀다. 250페이지가량의 단편집에는 무명인의 삶, 정처 없이 떠도는 인간의 군상, 정체성이 없는 누군가가 담겨 있었다. 전임자는 무명인이었을까, 그의 꿈은 작가였을까. 나는 오랫동안 그 책을 읽으며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 궁금해졌다. 나의 전임자의 미래가. 


    인수인계 자료집을 완성하고 후임자 폴더에 담아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업무일지를 열었다. 업무일지 마지막에는 코멘트를 작성하는 칸이 비어있다. 특이사항을 적는 칸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공란으로 남겨왔다. 수고했다는 말을 남겨야 할까. 그런 문구가 필요할까. 누구도 우리를 모를 텐데 말이다. 나는 전임자들의 마지막 업무일지를 열어보았다. 대부분의 전임자는 공란으로 남겨놓고 마지막을 정리한 듯 싶었다. 나의 직전 전임자의 마지막 업무일지를 열어보았다. 안범진, 그녀의 코멘트 칸에는 짤막한 두 문장이 적혀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강하세요. 언제나.” 


    늘 그랬듯,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자리를 정리한 채 회사를 빠져나왔다. 나의 자리가 아니었던 복도  끝 책상 위를 깨끗하게 치우고 나왔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그러나 나의 후임자는 나를 알 것이다. 나 또한 마지막 업무일지에 짤막한 두 문장을 적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강하세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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