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입니다. 지인이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퇴직하면 불러주는 데가 없어.”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저는 쉽게 웃을 수 없었습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상 치르게 되면 올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아. 어머니 돌아가시면 가장 작은 빈소로 하려고 해.”
그날 이후,
저는 ‘사람이 머문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직장 후배의 결혼을 축하하던 자리였습니다.
“만난 지 얼마나 됐어요?”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내년에 퇴직하셔서, 현직에 계실 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요.”
가볍게 오간 대화였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쉽게 말하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이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
누군가는 웃으며 넘겼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때 한 상사가 낮게 말했습니다.
“나도 내년이면 퇴직인데…
조금 신경이 가긴 하네.”
순간, 그 자리의 공기가 잠시 멈춘 듯했습니다.
올해 3월, 아내와 함께 강릉을 찾았습니다.
오래전부터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던 아내의 바람이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강문 해변은 고요했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파도는 규칙적으로 밀려왔다가 물러갔습니다.
마치 “잘 왔다”라고 제게 인사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그날 저녁, 다시 찾은 해변에서 저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파도가 운다.”
아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그러게… 아까는 조용했는데.”
파도는 그렇게 모래를 두드리며 우리의 삶을 닮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 사이의 인연도 밀물과 썰물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것이라고.
곁에 있을 때는 당연하고 멀어지고 나서야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들.
그 시간을 더듬어 보는 오늘, 이번 묵상 말씀 중에 마음에 들어온 구절이 있습니다.
“파수꾼이 말한다. 아침이 왔다. 그러나 또 밤이 온다.”(이사 21, 12 참조)
이제 예순의 고개를 넘어서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남기며 살아가야 할까.
소설을 쓸까, 에세이를 쓸까.
아니면 잃어버린 시간 속 온기를 찾아 떠나볼까.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오듯 지금 나는 인생의 어느 즈음에 서 있는 걸까.
저녁이 깊어가자 노을이 내일을 약속하듯 인사를 건넸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일출을 보기 위해 저는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기 전에 하늘은 이미 빛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 장관 앞에서 저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이는 누구인가.
그저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시간을 주심에
이 자리에 저를 불러주심에.
희로애락이 담긴 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끝이 아니라는 것.
지금도 여전히 무언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
저는 그 자리에서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소리 없는 위로의 목소리에.
괜찮다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사진: 김곤
성서백주간 37주 차: 이사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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