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으니 보이는 것들

새로운 나와의 만남을 위한 용기

by 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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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마시는 술잔 속에서는 희로애락이 뒤엉켜 출렁거린다. 속상할 때도 즐거울 때도 빠지지 않는다. 상가에 가도 결혼식장에 가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조절이 잘 안 되는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취하면 취한 대로 의미가 있다. 평소에는 말이 없던 친구가 술이 조금 들어가면 겨울철 언 수도꼭지에서 수돗물이 찔끔찔끔 똑똑 떨어지듯 말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부딪히는 술잔 소리에 어느샌가 얼었던 수도가 녹아 물이 쏟아져 나오듯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노느매기한다.


내가 술을 안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무슨 사연이라도?... 혹시 건강이 안 좋으신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만큼 술이 건강에 안 좋다고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유들로 술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면 술을 적당히 하며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이들부터 술 때문에 사달이 났거나, 술을 조금만 마셔야 할 텐데 혹은 그놈의 술 때문에 하고 생각해 본 이들, 아예 입에도 못 대는 이까지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술은 안 지가 15년이 넘었으니 이제 못 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예전 글에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그 대신에 내가 보내는 시간들은 변해갔다. 친구들과의 모임은 줄었고 생각이 맞고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만을 가끔 만난다. 작년에 초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었다.

"여보세요? 이번에 너네 집 근처에서 모일 건데 나와라. 얼굴 보자. A도 나오고 그러니까 꼭 나와."

"그래. 갈게"


그 후 모임이 있기 이틀 전이었다. 친구 A에게 카톡이 왔다. A는 초등학교 때 친구로 일 년에 한두 번 만난다.

"모레 나올 거야?"

"너는?"

"나갈라고."

"그래. 나도 잠깐 들를게."

"그래. 그날 보자."


그리고 모임이 있는 날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얘들아. 오랜만이다."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술을 안 하는 줄 아는 친구가 "뭐 할래? 콜라? 사이다?"라고 물었다.

"응. 사이다."

이렇게 나는 사이다가 소주와 맥주를 대신한다.



다음은 아는 분의 이야기다. 그는 오래전 췌장암 선고를 받고 담당의사로부터 얼마 못 산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20년 넘는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잘 지낸다. 그는 물 마시듯 좋아했던 술을 끊었고 운동과 식이요법에 전념한 끝에 건강을 회복했으나 잃은 것도 있다고 했다. 연락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고 모임이 없다고 했다. 아내, 몇몇 친척, 그리고 지인들과 가끔 만나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얼마 전에 아내와 식사 중에 술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내가 술을 안 마시니 뭐가 가장 좋아?"

아내에게 물었다.

"집에 있는 것"

아내가 말했다.

"그리고 뭐가 있어?"

내가 다시 물었다.

"술 취하는 모습 안 보는 것하고 가족하고 같이 있는 것"

아내가 다시 말했다.


나도 건강을 잃은 후에 비로소 술을 끊었다. 그 덕에 딸,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의 소중함은 이전보다 더하다. 이제는 친구, 지인들과의 진한 술자리는 사이다와 같은 즐거움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술을 즐길 때는 가족에게 소홀했다. 아쉬웠던 시간들... 아이가 어렸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일, 아내와 즐거운 주말을 보내지 못한 일 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럼 술을 끊고 내게 어떤 변화가 왔을까. 술을 끊자 안 보이던 것이(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무관심했다고 할 수 있다.)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돈의 가치다. 술자리를 안 하니 돈 나갈 일이 줄었다. 한때는 '그 많은 돈을 술자리 대신 우량주식을 한 주씩 사는 데 썼더라면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 번째는 건강이 좋아졌다. 요즘 퇴근길에 역에서 집까지 1시간 가깝게 걷는데, 그전에는 이마저도 엄두를 못 냈었다. 술과 친할 때는 몸에 안 좋은 안주와 알코올이 늦은 시간까지 몸속으로 들어가 다음날에는 정상적인 몸의 상태를 유지하는 하는 것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매일 정신이 맑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시험에 도전하고 합격을 하기까지 만약 술을 계속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담배와의 이별이다. 그 독한 냄새와 이별하는 데는 술과 헤어질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은 알다시피 식후의 담배 한 모금은 꿀맛이다. 가족과 산책한 후에 항상 "먼저 들어 가"하고 골목길에 가서 담배를 피우고 집에 들어가서는 시치미를 다. 담배라는 놈은 술보다 끊기 힘든 녀석이었다.


담배를 끊기 위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말하자면 이랬다. 얼마 전에 지인이 어떻게 담배를 끊었냐고 물어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담배 한 갑을 사면 한 대를 피우고 나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그렇게 몇 달을 반복했더니 어느 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머지를 습관적으로 버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아니 이 연기를 마시는 데 쓰는 돈이 도대체 얼마야! 하루에 한 갑꼴이니 한 달이면... 와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다. 이 후로 나는 담배에 손을 안 댔고 가족과 산책하고 난 후에도 같이 집에 들어갔다.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어졌다. 거짓을 말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나의 모습도 후로는 볼 일이 없어졌다.



얼마 전 회사 동료가 한 말이다.

"제가 이제부터 회식이 있으면 술잔에 사이다를 따르고 마실 생각입니다. 그런데 담배는 아직입니다. 하하하..."

"잘하셨습니다. 술을 끊으면 그동안 안 보이던 소중한 것이 많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담배도 아마 끊게 될 겁니다. 하하하..."

내가 말했다.


술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만이라도 거리를 두면 어떨까 싶다. 그러면 안 보이던 것들, 그때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들, 그리고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간 안에는 새로운 자신도 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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