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일본의 한 방송에서 수백 년 이상 된 나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가 텔레비전 화면을 꽉 채우는 웅장한 모습에 보는 내내 감탄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화면 속의 경이로운 생명체와 대화하는 상상 속으로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당신은 어떻게 이리도 오랜 세월 살아왔나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뿌리들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온갖 풍파와 드잡이 할 때 그들의 헌신적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긴 인고의 세월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야."하고 그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상상 속에 대화에서 나오는 사이 어느덧 화면 속에는 수백 년 동안 자라온 뿌리들도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신화 속의 거대한 용들이 꿈틀대는 듯 웅장하고 신비한 모습이었다.
이 뿌리들이 오랜 세월 강한 생명력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소리 없는 이타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에게 요즘 스포츠계에서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손흥민선수라는 대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는 이타적 플레이어로도 유명하다. 박지성선수도 똑같은 모습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은 자신만의 욕심보다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팀을 먼저 생각했다.
다음은 인근에 사는 처이모부와 가끔 만나면 듣던 얘기다. 인생의 대선배와의 대화 속에는 늘 배움이 있어 소개한다.
"아이들을 감싸고돌면 안 돼요. 해 달라고 하더라도 다 해주면 안 되고 뭐든 본인이 선택해서 의지대로 하게끔 해야 해요. 부모가 아이들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개입하면 그들의 정체성이 무너져요. 부모는 조력자가 돼야지 그들을 지배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럼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가 돼요."
그렇다.
이기적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속에는 시간에 상관없이 24시간 내가 상상도 할 수 없고, 알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필요하면 다가오고 수명이 다하면 떠나는 이들, 아래 계단을 볼 줄 모르는 이들, 받기만 알고 내놓기를 모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시간의 소중함을 몰라서 가끔 '아, 그때 내가 그 사람에게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반면,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기다림에 인색하지 않으며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남에게 베풀 때 기대의 알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배려는 아름답다.
시대를 불문하고 오늘, 지금 만나거나 스치는 사람들이 누가 되든 지위, 부, 연령, 세대, 성별을 넘어 최선을 다하는 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그 선의 시간이 쌓여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간이 주는 힘이기도 하다.